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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field Jul 06. 2024

독립심이 강한 사람

사람들이 나한테 ‘독립심이 강한 얘’래요. 나도 독립심이 내 무기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단점이 될 때가 있어요. 연애할 때. 적당한 독립심은 건강한 연애관계를 유지시켜 주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은데, 독립심이 너무 강하면 결국엔 상대방이 연인이라기보단 타인이라는 감정을 느끼더라고요.



참 이상해. 연인한테는 힘든 일이 있으면 도와달라고 할 법도 하고, 그냥 마냥 얘처럼 칭얼거릴 법도 한데 난 그게 참 어려워요. ‘내가 과거의 연인들을 신뢰하지 못했나?’ 생각해 보면 그러진 않았어요. 그럼 ‘과거의 연인들을 사랑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면 사랑이라는 단어가 어렵긴 해도, 그들이 그때의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었던 건 확실해요. 그런데 왜 기대지는 못했을까?



그래서 생각해 봤어요.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한테 선을 긋고 있는 건가? 아니면 내가 사람이랑 관계를 맺을 때 상처받기가 무서운 건가? 나도 모르는 트라우마 같은 게 있는 건가?’.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냥 사람이 좋아요. 그것도 아주 많이.



난 내 주변에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믿어요. 오늘 처음으로 만났어도 말만 잘 통하면 그 사람은 그날부터 내 친구예요.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던지는 상관없어요. 만약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한테 피해를 줬다고 가정해도, 그게 그 친구가 고의로 한 일이 아니면 괜찮아요. 심지어 친구가 갑자기 나를 손절해도 분명 나는 걔를 좋아할 거예요. 난 이만큼 사람을 좋아해요.



아무튼 유럽투어 마치고 토론토로 돌아온 후로 이 문제에 대해 계속 고민했어요. 왜 못 기대는 걸까, 뭐가 문제일까? 한국 가서 심리 상담을 받아볼까? 어쩌면 혹시 아주 어릴 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이 있는 걸까? 그럼 최면치료를 받아봐야 하나?



그러다 하루는 스튜디오에서 혼자 일하는데 뜬금없이 외로운 거예요. ‘외롭다.’ 이거 정말 나한테는 너무 생소한 감정이거든요. 생소하다 못해 들뜨더라고요. ‘뭐야,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하고. 난 가끔 생소한 감정이 느껴지면 꼭 숨겨놓은 보물을 찾은 것 마냥 너무 신나고 소중해요. 그래서 이 느낌을 생생하게 기억하려고 정말 소중하게 마음에 꼭꼭 잡아뒀어요. ‘내일 친구들 만나서 이 감정을 공유해야지’ 하고.



다음날 친구들을 보자마자 ‘나 어제 진짜 외로웠다. 나 외로움 진짜 안 타는데, 혼자 작업하는 거 제일 좋아하는데, 요 며칠 너희랑 북적북적 있었다고 고새 그게 적응됐나 봐. 진짜 웃겨. 위험하다 위험해 빨리 토론토 떠야겠어.’라고 말했어요.



그러고 친구가 어떤 대답을 한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 안 나요. 바로 ‘내가 왜 방금 위험하다고 말한 거지?’라는 생각에 빠졌거든요. 그리고 찾았어요. 내가 타인에게 기대지 못하는 이유.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내가 어릴 때 엄마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뭐였지?’. 난 어릴 때 참 겁이 많았어요. 밤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귀신이 보여서 아침까지 잠을 못 잤거든요. 한여름에도 너무 무서우니까 이불 속에 들어가서 눈도 못 뜨고 귀 막고 아침까지 있다 보니 아토피도 정말 심했어요. 이런 어린 내가 엄마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 뭐였을까 생각해 보니 ‘엄마가 같이 있어줄까?’였더라고요.



그래서인가 나는 다른 사람한테 의지하거나 기대면 그 사람과 항상 함께 있고 싶어 져요. 내가 의지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랑 항상 함께하는 게 나의 가장 큰 목표이자 삶의 의미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내가 아는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그 사람과 함께하는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쓸게 분명해요. 그래서 내가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의지하는 걸 거부했나 봐요. 내가 너무나도 의존적인 사람인 걸 알아서.



분명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의지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게 엄청 행복할 거라는 거 알아요. 그리고 그렇게 살면서도 나는 또 그 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최선을 다해서 해 내겠죠. 근데 그렇게 행복하게 살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편에 걸리는 게 있을 거라는 것 도 알아요.



나는 나로서 하고 싶은 일들이 있어요. 이건 약간 사회적인 개념의 성공이라는 거랑은 거리가 먼 일이에요. 이 일을 하기 위해선 아직도 배워야 할게 많아요. 더 많은 경험이랑 혼자만의 시간들이 필요한 거죠. 결국 이 말은 나는 아직은 더 많은 곳에 가봐야 하고, 더 많은 도전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나는 그걸 너무 잘 알고 있고요.



친구들도, 지난 연인들도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기대지는 못했던 이유가 내가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아요. 내가 아무리 저 사람들이 좋아도 저 사람들이랑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이 다르다는 걸. 내가 저 사람들한테 기대 버리면 나는 내가 가는 길을 포기하면서까지 저 사람들이랑 함께 지내고 싶어 할 거라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도 내가 원하는 거지만, 내가 나로서 하고 싶은 하는 일을 해내는 것도 내가 원하는 거라는 걸.



친구들은 항상 함께 있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마음먹으면 만날 수 있어요. 나랑 그들이 서로 보고 싶다는 마음만 남아있다면요. 하지만 연인은 다른 것 같아요. 아무래도 난 내 연인상대로 나랑 같이 원피스를 찾아 떠날 선원을 찾고 있었나 봐요.



내가 참 병신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도대체 나 새끼는 얼마나 병신인 걸까요? 매번 내가 나에 대해서 알 때마다 내가 알고 있는 내 찌질함 게이지가 갱신당하는 느낌이에요. 제발 나 새끼야 어디까지 찌질할래. 그냥 그저 너무 의존적인 인간이라 불리불안이 심해서 사람한테 기대지 못한 주제에 무의식적 방어기제니, 트라우마니 라는 생각을 한 내가 가소로운 거 있죠? 난 아직도 내가 약간은 특별하다는 착각에 사나 봐요. 참으로 낫띵 스페셜입니다. 그러다 보면 ‘이 병신이 어떻게 밥은 벌어먹고 사네’ 싶어서 스스로가 대견해져요. 늘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더 병신입니다. 이 병신도 먹고살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음에 다시 한번 감사하네요.



그러고 보니 내가 토론토 친구들을 정말 많이 많이 좋아하나 봐요. 하마터면 이 친구들한테 의지하면서 함께 살고 싶어서 토론토에 자리 잡을 뻔했네요. 독립심 없고 의존적인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내기 위해서 그만 떠나야겠어요. 내가 떠나더라도 이 친구들을 잊지 않는 한, 그들은 항상 나랑 같이 있는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요. 친구들한테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해줘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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