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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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삶 속의
오래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 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 사랑법, 강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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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장판 아래 모아놓은 헌혈증을 가지고 가던 날이었다.차창으로 보이던 바깥의 풍경이 어느 때 버스 안의 분주함과 겹쳐져 어둠이 되고,퇴근시간 사람들은 낮에 오른 버스에서 저녁을 맞고 있었다. 일상이었다.
그 일상에 섞여 나는 이 낯선 경험이라는 게 도통 실감이 나질 않았다.도착한 병원 입구엔 엄마가 있어야 했지만 나는 선뜻 엄마를 찾을 수 없었다.
입구에 다 달아서야 서성이는 사람들 속에 엄마가 있었다.파마기가 다 빠져 빗어도 빗어도 가라앉지 않을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두 손을 부여잡은 모습이었다. 색이 바랜듯한 엄마의 눈동자가 내게 왔냐는 듯 흔들렸다.
오빠는 알고 있었다고 했다. 쓰러지기 전날 눈이 내렸고, 집 앞 언덕을 걸어내려 가다가 눈길에 미끄러지듯 쓰러졌다고 했다. 혈관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고무튜브가 연결되어 있었다.병원 로고가 선명한 환자복이 오빠의 가슴팍에서 아무렇게나 구겨져 펼쳐져 있었다. 온몸에 달고 있는 바늘을 의식한 탓인지, 오빠는 그것도 겨우 눈동자만 굴리며 말을 받고 있었다. 스무 살 무렵 밤낮으로 흐르는 코피 때문에 들른 병원에서 알았다고 했다. 이제 가슴을 열면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다고도 했다.
분주히 움직이던 오빠의 눈동자가 순간 멈췄고, 소리도 없이 굵은 눈물이 방울져 내렸다.
아이고 이놈아.
6인실, 다닥다닥 붙여진 침대만큼이나 좁아진 숨소리로 엄마가 흐느꼈다.
의사는 엄마만 부르거나 때론 큰오빠를 함께 부르곤 했다. 엄마는 우는 일이 잦아졌고 등을 보이며 다 뱉지 못하는 숨을 쉬곤 했다. 엄마의 그런 모습은 내겐 낮에 오르는 버스만큼 낯선 것이어서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었다. 중간중간 소변이 고여있는 튜브를 따라 아직 다 차지 않은 소변 팩을 쳐다보다 나는, 이제 갈아야 할까 하며 손톱을 물어뜯곤 했다. 그런 것이었다. 나에겐 단지 생소한 불안감 같은 것이었다. 나는 오빠의 심장에 있다는 그 바늘귀만 한 구멍을 본 적도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 구멍이라는 게 왜 엄마와 가족들 가슴에서 시도 때도 없이 펑펑 터지는지 알 수 없었다. 건너 건너 침대 옆 검정 새시 창으론 틀에 꼭 맞춰진 틈 없는 4월이 지나고 있었다. 여러모로 그때와는 어울리지 않는 계절이었다. 꽃을 먼저 피우는 봄 나무처럼 슬프지 않아도 때때로 나는 울 수도 있었다. 외래진료실 앞에서 당황하는 간호사를 앞에 두고 엄마가 예의 그 등을 보이며 앉아있을 때, 벽으로 이어지는 의자들이 하나같이 비어있는데도 바닥에 앉아 좀처럼 일어서지 못하는 엄마를 보았을 때, 나는 분명 채 슬프기 전에 울고 있었다.
벚꽃이 지고 바람의 냄새가 달라져 있을 즈음이었을 것이다. 병원 앞, 벤치에서 나는 이 시를 수첩에 적었다. 시 속의 단어들이 각각 따로 떼어져 들어오던 시절이었다.무덤이랄지 떠나는 자랄지, 특히 누워 있는 누워 있는 이 구절에서 나는 울었던 것 같다.
딱히 투병이라고 할 수 없는 오빠의 병원 생활이 수술에 수술로 이어지던 날들이었고, 오빠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흉터들도 차례로 선연한 붉은빛을 띠고 가슴 위 살을 돋우었다. 긴 외바퀴 기찻길처럼 명치께에서 시작되는 상처가 늑골을 지나 턱 밑으로 바짝 올라서 있었다. 수술 후 한 무리의 의사들이 아침저녁으로 찾아와 들춰보던 그것들이 아물 만큼 아물어 더 이상 희미해지지 않을 무렵까지, 오빠는 작은 손거울을 쥐고 그것들을 이리저리 비춰보곤 했다. 나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 시절 오빠의 얼굴이 그려낸 그 다양하고도 끈질긴 절망감들이 떠올라 잠깐씩 몸서리가 쳐지곤 한다.만져보지 않은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 것. 그것은 각인처럼 촉감으로 느껴지는 상처였다.친구들에게 받은 헌혈증을 하나씩 장판 밑으로 모으며 오빠가 기다렸던 그 수술이란왼쪽 겨드랑이 밑을 살짝만 절개해 심장을 드러내는 것이라 했다. 그것을 기다리며 오빠는 밤낮으로 흐르는 웬만한 수건으로도 벅찼을 그 많은 양의 코피를 견뎌왔던 것이다.
물론, 지금 오빠는 무대에 서지 않는다.
시간이 걸렸지만 단념해야 하는 것들은 어쨌든 정리가 되었다고 쓰이는 것이다. 방 안에 가득 널브러져 있는 소주병들이 산이 되어 쌓이더라도 바뀔 수 없는 현실이었다.빨갛고 하얀 알약들을 매일 평생을, 삼키며 살아가야 할 생때같은 나날들이 그의 앞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우리는 그 시절을 견딘 걸까. 아직 같은 계절이 우리를 찾아올 때면, 몸속 어딘가에 기억의 테를 두르고 있던 그것이 이렇듯 선명하게 그려지는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앞에 너무나 확실해 보이는 두려움을 두고 등 뒤에 있다는 그 큰 하늘을 확인하려 무수히도 뒤를 돌아보던 시절이었다. 그것이 우리 뒤에 있기나 한 건지, 아니 우리를 돌볼 만큼 크긴 큰 건지. 무엇보다도 그것이 우리 편인지 알 수 없었다.
침묵하는 법을 배웠었고 때론 실눈만 뜨고 바라봐도괜찮다고 다독임을 받았던 시였다.
수첩의 결이 누렇게 뜨도록, 찾아보고 펴보았었다.
복도에서, 식당에서, 오빠의 오르내리는 숨소리 아래서.
이만하면 괜찮다고 오빠의 상처를 쓰다듬던 주치의의 마지막 회진처럼 그만하면 다 괜찮은 거였다.
다만 그것이 정말 괜찮은 것인지 그때의 우리는 알 수 없었고 돌아보면 사라지는 그 큰 하늘은 말마따나 그저 등 뒤에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등 뒤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