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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작가초아 Mar 12. 2024

초등학교 교사들의 흔한 대화

교무실 티 타임

# 교무실 티 타임


  나는 올해 담임이 아닌 전담 교사라 내 교실이 없다.

내 자리는 교무실. 교감선생님과 전담선생님들, 업무부장님, 교무행정사님들이 교무실에서 함께 생활한다.

담임교사들은 대부분 교실이나 학년 별로 교수학습 자료를 준비하거나 티 타임을 할 수 있는 학년 별 연구실을 이용한다.


  우리 학교는 신설 학교인 만큼 교무실이 굉장히 넓고 쾌적하며, 카페처럼 예쁜 조명과 테이블이 꽤나 널찍하게 자리하고 있다. 

게다가 내려 마실 수 있는 커피머신까지. 하루 한 번은 꼭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오늘은 특별히 커피 머신 옆에 수제 약과와 떡이 놓여있다. 새로 부임하신 교감선생님이 선물로 받은 걸 우리에게 풀어 주셨다. 달달한 약과를 먹으니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 느낌이다. 역시 당 충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 이따금씩 업무나 회의, 컬러복사 등을 이유로 담임 선생님들도 교무실을 찾는다. 먹을게 놓여 있으니 자연스레 모여 앉았다. 


  3년 전 동학년이었던 올해 4년 차 선생님, 작년에 5학년 담임이었다가 올 해는 1학년 담임을 맡은 동갑내기 선생님도 보인다.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는 생활부장님과 17년 차 베테랑 2학년 담임 선생님도 합류했다. 커피 한 잔과 다과를 나누며 두런두런 대화가 오간다.


# 선생님들의 대화


영어전담교사(교직경력 15년) : 나
1학년 담임교사(동갑내기) : 희영쌤
1학년 담임교사(교직경력 4년)  : 진아쌤
생활부장교사(학교폭력 담당): 우진쌤
2학년 학년부장교사(교직경력 17년) : 시현쌤


나 : 선생님들, 약과 맛있더라고요. 얼른 드셔보세요. 이 시간 되면 다들 당 떨어지지 않아요?

희영쌤 : 맞아요. 올해 1학년 아이들 힘들긴 해도 너무 귀엽네요. 작년 5학년 정말 너어어어무 힘들었었는데. 아무래도 반편성이 고르게 안 됐던 것 같아요. 인물들이 다 울 반에 몰리는 바람에. 원래 저 진짜 밝고 에너지 넘쳐서 웬만해선 아이들한테 휘둘리지 않는데, 작년엔 도저히 안 되겠어서 병가를 낼 수밖에 없었어요. 원래 고학년이랑 잘 맞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진짜. 제 한계까지 갔던 것 같아요. 진아선생님은 1학년 괜찮아요?

진아쌤 : 전 2학년이랑 5학년 맡아보고 1학년은 처음인데 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봐주고 챙기려니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을 수가 없네요. 오늘 급식시간에 밥도 못 먹었어요. 아이들 먹는 거 봐주고 먹다가 싸우고 음식물 남은 거 처리하는 것도 아직 서투르니까. 손이 진짜 많이 가요. 아이들은 많고. 강제 다이어트 중이에요. 하하. 우진선생님은 3년째 전담인데 어때요?

우진쌤 : 아, 지난주에 학교폭력 신고 들어와서 지금 진행 중인데요. 가해 관련 학부모님께서 많이 예민해지셔서 애들 말만 듣고 못 믿겠다고 CCTV 확인하시겠다고 해요. 휴. 학교장 종결로 안 끝나고 이번엔 교육청으로 올라갈 것 같아요. 작년엔 첫 사건이 5월에 터졌는데 올해는 개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나 :  우진선생님이랑 저랑 돌아가면서 한 건씩 맡으니 다음은 저네요. 하아. 학교폭력 업무는 처음이다 보니까 벌써부터 긴장되네요. 올해 학생 자치회랑 중창단 활동할 때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 제대로 해야겠어요. 후후. 시현선생님 옆반에 신규 선생님 오셨다면서요?

시현쌤 : 아, 안 그래도 오늘 한 시간 동안 하나부터 열까지 다 설명해 주느라 진땀 좀 뺐어. 신규 선생님 되게 착하시고 다 좋은데 음... 기본적인 것들이 너무 안돼... 주간학습안내 짜는데 워드 기본적인 편집도 못하더라고. 아이들 떠들고 수업시간에 돌아다니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당연히 첨부터 잘할 수는 없긴 한데 좀 너무... 하아.




개학한 지 일주일.


아직 아물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이제 괜찮노라고 애써 웃어 보이는 희영쌤,
오늘도 급식은 한 숟가락도 못 먹었다는 유난히 살이 빠져 보이던 진아쌤,  
학기 초부터 학교폭력 사건을 접수하고 학부모님과 수시로 연락 중인 우진쌤,
옆 반 신규 초보 선생님 하나부터 열까지 도와주느라 바쁘신 시현쌤.


경력도 맡은 역할도 성향도 제각각이지만,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 만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들의 땀과 노력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저 멀리서 "선생님!" 하고 활짝 웃는 얼굴로 나에게 달려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제자들이 있어 오늘도 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따금씩 "선생님, 정말 고생 많으시죠. 우리 아이 잘 지도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마디에 또다시 힘을 내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곁에서 "선생님, 오늘도 파이팅 하자고. 그래도 아이들은 참 이쁘잖아."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 교사가 있음에 위로받는다.


  우리는 1년 동안 아이들을 키워낸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또 매일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일들과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키만큼 마음도 훌쩍 자라 있는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음에 행복하다.


  나는 생각한다.

아이들이 있기에 교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도 아이들과 함께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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