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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레오in절머니 Jun 11. 2024

독일 회사 입사 100일, 번아웃이 왔다.

그동안 글쓰기를 멈춘 이유

두 달 전, 마지막 글을 쓰고 글쓰기를 멈췄다. 번아웃이 왔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니 그 당시에는 열정이 넘쳤던 것 같은데..

https://brunch.co.kr/@368557627ac647b/9

고작 두 달 만에 번아웃이 왔다고..? 코웃음 칠 일이다.


번아웃의 정의는 어떤 직무를 맡는 도중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직무에서 오는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증상이라고 한다. 내겐 육체적 피로는 전혀 없었다(워라밸은 최고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다. 그 이유는 내가 상상했던 독일 회사생활이 아니기 때문이다.


1. 업무에 대한 불만

나는 기업 고객의 IT 교육을 도와주는 IT 교육 기업에서 Operations Manager(운영관리자)로 일을 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은 간단히 말해 기업 고객이 어떠어떠한 IT기술(클라우드, 프로그래밍, 엑셀, 또 요즘 핫한 Chat GPT 등등)을 직원들에게 가르치고 싶다면 우리 회사에 IT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이 온다. 그러면 나는 그 요청을 받아서 해당 기술을 가르칠 수 있는 강사를 찾아서 매칭시켜준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하는 일이 강사를 알선하는 업무인 것 같기도 하다. 나도 그런 것 같아 한 번은 팀 동료에게 우리가 하는 일이 헤드헌트가 하는 일이랑 뭐가 다르냐며 살짝 불만을 표출한 적이 있는데, 그 동료는 우리가 하는 일이 헤드헌팅이 맞다며, 그중에서도 프리랜서 헤드헌팅이라며 확인사살을 해주더라(헤드헌터 비하발언 아닙니다..ㅠㅠ). 나는 이 회사에서 헤드헌팅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고 해 본 적도, 할 줄도 모르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이 헤드헌팅이라는 말을 듣자 온몸에 힘이 쫙 빠지면서 업무에 대한 회의가 밀물 쏟아지듯 몰려왔다.

 

2. 성취감 없음

내가 보기엔 내가 속한 Operations 부서가 이 회사에 핵심이다(지극히 개인적인 의견). 가장 바쁘고 가장 많은 일을 처리하며 회사제품(애플의 제품은 아이폰이듯, 우리 회사의 제품은 IT교육 커리큘럼과 강사들이다)에 대해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부서이기 때문이다. Operations부서가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지만, 다른 부서에게 찬밥 취급을 받는다. 계약을 따오는 영업부서는 우리에게 타이트한 일정을 제시하고도 납기를 못 지킨다며 까지, 경영진들은 우리가 납기를 철저히 지키고 바쁘게 일해도 이게 당연한 일인 양 성과에 대한 보상은 없지.. 어느 부서나 스트레스를 받기야 하겠지만, 스트레스를 남인 고객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 '가족' 같은 같은 회사의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받으니 성취감은커녕 스트레스가 배가 되는 느낌이다.


3. 회사에 대한 애정이 없음

나는 지인을 통한 소개로 운이 좋게 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 회사를 너무 좋아해서 또는 이 회사에서 꼭 일을 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열심히 준비하고 이 회사를 지원한 게 아니란 말이다. 따라서 회사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다. 변방의 외노자인 나를 뽑아줘서 회사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긴 하지만, 전 직장에 비해 낮은 연봉, 턱없이 적은 복지, 업무에 대한 불만 등 K직장인으로서 불만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다. 한국의 대기업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으니, 다른 독일의 평범한 회사와 비교를 해봐도, 적은 복지, 적은 휴가일수 등 좋은 구석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나마 정말 다행인 건 같이 일하는 Operations 부서의 팀 동료들이 너무 좋은 분들이라 회사에 대한 불만을 잘 상쇄시키고 있는 중이지, 동료에 대한 애정도 없었으면 음,, 상상하기도 싫다.


4. 진로에 대한 고민

나는 한국 대학에서 IT관련 전공을 했고 회사에서도 개발자로 일을 했다. 개발에 엄청난 흥미가 있는 편이 아니라 이 기회에 커리어 전환을 꿈꾸고 독일에 온 나지만, 막상 와보니 다시 개발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생각에 독일은 개발자가 할 일이 정말 많은 국가인 것 같다. 한국의 앱, 웹사이트 등 IT서비스를 보다가 독일의 IT서비스를 보면 개선하고 싶은 욕망이 셈 솟는다. 또 뛰어난 개발자가 독일에 온다면 창업의 기회가 무궁무진할 것 같은 느낌이다. 창업을 해볼까..?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이 위에 대한 고민도 없이 독일에 왔냐고 내게 물어볼까 봐 두렵다. 하지만 맞다. 살짝만 고민하고 막연한 희망과 부푼 기대감만 가지고 왔다. 한국에서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독일에 온 지 3달 만에 번아웃이 올 줄이야,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점점 불만이 쌓이다가 번아웃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회사를 가는 날을 제외하고 일주일 동안 외출을 하지도 않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찰 때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불만만 늘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내 삶의 기준과 맞지 않는다. 현재는 번아웃은 어느 정도 극복을 했고 진로에 대한 고민은 인생 전체를 두고 함께 가야 할 동반자 같은 녀석이다. 힘들 거 모르고 고생할 거 모르고 독일 온 거 아니잖냐. 다음 글은 좀 더 희망차고 재밌는 독일 생활에 대한 글을 써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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