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고생해야 머리가 좋아진다.
3년 만에 다시 독일에 왔다.
독일의 겨울은 외부 손님을 반길 때 우중충한 잿빛 하늘을 웰컴기프트로 주는 건지.. 전에 왔을 땐 흐린 날씨가 날 반겨주더니 이번엔 차가운 빗방울이 날 반기네?
그래도 반갑다 독일아.
전에 독일에 왔을 때처럼, 설레는 마음은 같고
환승을 해야 하는 불편함도 같고, 우중충한 날씨도 같은데,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JET LAG
우리말로 하자면 '시차 적응'.
서른이 다가온다는 것을 뇌는 부정하고 모른 채 했지만, 몸은 알고 있었다.
하루는 미국으로 유학을 간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이상하다..? 3년 전 왔을 땐, 시차적응은 개나 줘버렸는데..
3년 간의 연륜+우중충한 날씨 콜라보 때문인가 이번에 온 녀석은 좀 세다. 아침에 멀쩡히 일어나서 오후까지는 괜찮다가 정확히 저녁 6시 이후부터 잠이 쏟아진다.
신기하게도 이 같은 현상은 4일 내내 지속 됐는데, 졸린 정도도 전에 겪어보지 못한 정도로 강력해서 코난의 마취총을 맞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할 정도였다.
하루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었는데, 오후 6시가 넘어 버렸고 그 녀석이 찾아왔다. 장 보러 나오기 전에는 분명 배가 고파서 장 볼 생각에 신이 났었건만, 이 녀석이 찾아오자 식욕은 현자타임 레벨에 도달했고 사려고 생각해 놓은 것들은 머릿속에서 하나씩 증발되어 갔다. 정말 과장 많이 보태서 계산을 하고 집에 가는 길에는 좀비처럼 기어갔을 정도로 이번 녀석은 강력했다.
하도 이상해서 집에 돌아와 구글에 물어봤다.
시차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간이 필요하다. 이론상 1시간 차이에 적응하려면 대략 하루가 필요하다고 한다. 독일과 한국은 8시간 차이. 나에겐 8일이 필요하다. 이 같은 이론이 얼추 맞는 것이, 내게 카톡 한 친구는 미국 애리조나에 있는데, 애리조나와 한국은 16시간이 나고 그 친구는 2주 동안 고생했다고 한다.
그다음으로 필요한 건 햇빛. 햇빛은 뇌의 송과체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이라는 물질의 분비를 떨어뜨려준다. 멜라토닌은 불면증 치료에 쓰이는 물질로 자연적 수면을 유도하는 물질이다. 그니까 낮에 햇빛을 많이 쬐어줘야 멜라토닌 분비가 적어져 이른 저녁까지는 피곤하지 않을 테다. 하지만 독일의 겨울은 일주일에 하루 햇빛이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하늘이 항상 우중충한 잿빛이기 때문에 멜라토닌 분비를 막을 방법이 없었고, 그 결과 오후 6시가 되면 잠이 쏟아졌던 것이다.
나는 무언가 직접 겪고 고생해보지 않고는 배우지 못하는 성격 같다. 친구들이 ‘시차적응 때문에 힘들겠다’라고 걱정해 주면, 시차적응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나는 시차적응이 필요가 없던데? 시차적응은 개나 줘 버려~’라고 말하던 게 나다.
하지만, 이번 고생 덕분에 배운 것들이 있었는데, 내가 생물학적으로 3년 늙었다는 사실과 이로써 다음부터 멀리 떠날 땐 시차적응에 신경 써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하루의 중간중간 흐린 하늘 사이 해가 고개를 들면 하던 일을 멈추고 밖으로 나가 햇빛을 쫴야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 속담보다는 ‘몸이 고생해야 머리가 좋아진다’라는 말이 내겐 더 맞다며 자기 위로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