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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별 Feb 22. 2024

100점이 제일 좋은 건 누구야

아이의 시험 점수는 아이 점수일까 내 점수일까


“엄마 나 백점 맞았어!”


아이가 교실 문을 나서며 상기된 얼굴로 자랑스레 외친다. 평소 조용조용한 아이가 마치 옆에 있던 아이들 들으라는 듯이 내는 큰 목소리가 낯설기까지 하다.


우리 아이는 수학에 재능은 없지만 열심히 한다. 빠르지 않지만 뭐든 묵묵하고 성실히 해내는 그 모습이 아빠를 빼닮았다. 그리 좋지도 않은 머리를 믿고 마지막까지 게으름을 부리는 나를 닮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 성실함 덕분에, 그리고 사는 동네도 학군지라 하기엔 어중간한 곳이라 나름 유명 체인 학원의 수학 탑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다니면 다닐수록 이 반이 과연 맞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마치 맞지 않는 모자를 머리에 억지로 끼워 넣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같은 반 친구들은 그 유명한 수학경시에서 색깔상을 턱턱 받는데 우리 아이는 컷에 간당간당한 장려를 받는다. 물론 그것도 우리 집에서는 경사가 나긴 했지만 말이다. 탑반 답게 교재도 상당히 어려운 편인데, 옆친구들은 쉽게 풀어내고 선생님의 설명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데 우리 아이는 그게 힘든 것 같다.


얼마 전 아이 숙제를 채점해 주다가

“와, 이 문제 잘 풀었네. 우리 ㅇㅇ이 수학 잘한다! “하고 칭찬해 주었더니,

“아냐 나 수학 못해. 난 수학 못하는 아이야. 선생님이 그랬어. “

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되물었더니 선생님이 양손을 다른 높이로 들면서 낮은 쪽이 우리 아이 실력, 높은 쪽은 반 아이들 실력인데 이렇게 갭 차이가 크니 너는 더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이 학원을 계속 보내는 게 맞나 더 심란해졌다. 우리 아이가 그렇게 학원에서 못하는 아이라니. 이렇게 자존감이 떨어져 있다니. 아이에게는 공부 정서가 중요하다던데, 수학에 자신 없어하다가 못하는 아이라는 학습된 무기력감에 빠져버리면 어떡하지. 차라리 반을 바꿔달라 해야 하나.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물어보니

“사실인걸 뭐. 알았으면 더 열심히 해야지.”

라며 신경 쓰지 말란다. 인생에서 그 정도의 챌린지는 필요하다나 뭐라나. 이 T인 남자.


그래, 선생님이 이렇게 정확한 사실을 말씀해 주신 건데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과외도 아니고 학원을 다니는 건 이렇게 잘하는 친구들 보고 자극받아 더 열심히 하려고 다니는 거라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흔들거리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그날부터 수학 학원 숙제는 우리 집 최우선과제가 되었다. 구몬과 영어 학원 숙제에 밀려 반만 풀어가는 날도 있었는데, 이제 다른 학원 숙제를 밀릴지언정 수학학원 숙제만큼은 꼭 끝까지 풀어가고, 틀린 문제는 오답정리도 꼼꼼히 해놓기를 삼주 째. 어제 그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백점이라니.

물론 쉬운 단원이고 같은 반 아이 다섯 명 중 네 명이 백점이라고는 했지만, 그 백점의 대열에 우리 아이가 낀 것이 너무도 감격스러웠다. 보통은 다른 친구들이 90~100점을 맞아올 때, 우리 아이는 70점 혹은 60점이었는데 말이다. 그 백점 받은 아이 중 한 명이 내 아이라니.


아이를 학원에서 픽업해 오는 차 안에서 내내 칭찬을 해주었다.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 ㅇㅇ은 백점 맞아서 좋겠다.”라고 이야기하자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미심장한 말을 날린다.

“나보다 엄마가 더 좋은 거 아니야? “


그 순간 요샛말로 현타가 세게 왔다. 이건 아이 점수인데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게 맞나. 아이의 점수에 너무 집착하고 있던 게 아닌가. 아이는 아이, 나는 나라는 중심을 잡고 아이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존중해 주고 지지해 주는 따뜻한 타자가 되는 것이 나의 목표였는데 어느샌가 그 경계선이 흐릿해져 아이를 나와 동일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뒤늦은 후회가 내 뒤통수를 갈기는 것 같았다.


그래. 결과를 기뻐하기보단 노력하는 모습을 뒤에서 흐뭇하게 여겨주는 어른 엄마가 될게.


근데 그래도 네가 공부할 때 옆에서 같이 앉아 있어주고 숙제 챙겨준 엄마를 언젠간 고마워할 날이 있을 거라며 내 마음을 다독여본다.


전 세계의 타이거맘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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