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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별 Feb 25. 2024

사랑의 과정 1

기대하지 않아도, 삶이 갑자기 행복해질 수 있어.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났던 건 아직은 겨울의 쌀쌀함이 어깨를 감돌던 3월의 첫날이었다. 바로 그 다음 날이 새로 다니게 된 학교로 부임하는 첫날이라 날짜가 똑똑히 기억난다.


“ㅇㅇ씨, 내가 소개팅해줄게. ㅇㅇ씨는 무슨 스타일을 좋아해?”


같이 임용 스터디를 하던, 먼저 결혼한 언니가 나를 좋게 봤는지 갑자기 대뜸 소개팅을 시켜주겠다고 한다.


“음, 저는 나이 차는 다섯 살 이하였으면 좋겠고, 여자형제가 있는, 키가 172cm 만 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내 키가  170cm이다)”


“응 알았어! “

내가 아는 언니들 중 제일 예쁘고 성격도 시원시원하던 그 언니는 나와 나이가 6살 차이 나는, 남동생이 있는 키 170 cm의 남자를 소개해 주었다. 그때는 내가 말한 조건이 하나도 안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이야기한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조건’은 차치하고 ‘자기가 아는 진짜 괜찮은 사람’을 소개해줬던 것 같다. 참 고마운 언니다. 지금 남편과도 단란히 잘 살고 있는 그 언니는 여러모로 사람 보는 안목이 있었던 것 같다.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처음 만난 그 사람은 약속한 시간보다 오분 늦게 왔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던 그는, 예약한 음식점으로 향하는 길을 나와 저만치 떨어져 걷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키 170cm에 12cm짜리 부츠를 신었던 터라 대충 봐도 내가 그보다 머리 하나는 더 나와 있었다. 약속시간도 조금 늦고, 뭔가 굉장히 피곤해 보이고 사회생활에 지쳐 나에게 관심도 별로 없어 보이던 이 남자. 오늘의 소개팅은 망했다는 불길한 느낌이 엄습했지만, 그냥 저녁이나 먹고 들어가자 셈 치고 같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태국과 싱가포르를 섞어놓은 것 같은 어두컴컴한 인테리어의 모로코 식당에 가서, 모로코와는 상관없는 크림 스파게티와 카레를 먹고, 가까운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대충 들이키며 얼른 일어서려는데 그 남자가 갑자기 말한다.


“ㅇㅇ씨, 데려다 드릴까요?”


“네?? 아뇨. 괜찮아요. 감사해요!”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는데, 집을 대뜸 데려다준다고 하니 이상하기도 하고, 밤이라고 챙겨주는 게 내심 고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카페에서부터는 처음에 반쯤 감겨 있던 눈이 커진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사람이 생기 있어졌다.


나중에 물어보니 이 사람도 그때 회사 일이 무척 바쁘고, 자기도 원하지 않았던 소개팅에 아는 형 때문에 끌려 나온 길이었다고 한다. 나보다 소개팅을 100번은 더 해봤다는 그는 소개팅 매너리즘에도 빠져 있었단다. 심지어 일이 이렇게 많은데 지금 여자친구를 어떻게 만드냐며 그냥 밥이나 먹고 와야겠다는 마음으로 나왔다가 인생이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기대 없이 만난 우리 두 사람은 그날부터 서로의 인생에 새로운 역사가 쓰여질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매일 그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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