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
글감: 인생에 반드시 필요했던 이별이 있나요?
영원이 얼마나 무거운 건지 모르고 남용했던 때가 있다. 나는 사랑했다. 모든 사람이 세상에서 딱 한 명만 가질 수 있다는 무조건적인 내편을. 나를 절대로 사랑해주지 않을 것만 같던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는 기적이 뭔지 알려주었던 첫사랑을. 고등학교 3년 내내 서로 의지했던 친구 지원을. 나는 "내 마음이 이렇게나 크다고!"라고 말하는 대신 영원을 약속하곤 했다.
그들과 모두 이별했다. 정해진 수순이었다는 듯. '생과 사는 사람의 순리'라고 떠들어대는 입들을 경멸하게 만들었던 엄마와의 사별도.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첫사랑과의 이별도. 가장 상처되는 말이 뭘까 고민하게 만들었던 지원과의 작별도. 영원을 떠들어대던 내게 코웃음이라도 지어보이는 듯, 당연하게 이별했다.
이별은 실패였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봐도 씁쓸한 자기위로에 그칠 뿐이였다. 끝없는 자기합리화와 '저 사람도 알게 모르게 힘들거야.'와 같이 타인을 깎아내리는 억측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번 쌉쌀한 소주를 들이켜야했다. 그때 들이켰던 소주의 맛이 아직 기억 난다. 그건 패배감이었다.
수백권의 책을 읽었다. 그중 수십권은 자기계발서였다. 자기계발서는 좋다. 읽으면 읽을 수록 응원을 받는 기분이다. 잘 하고 있다고, 지금처럼 살면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또... 실패를 실패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선 실패를 더 많이 해야한다고 말하곤 하니까. 그 말은 마치, 어릴 적 나보다 세네 살 정도 많은 언니오빠들이 나를 가운데에 두고 어려운 수학얘기를 하는 것 같은 묘한 울렁임을 느끼게하지만. 어쨌든 곰곰이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자기계발서가 틀리지 않다면, 지금까지 했던 모든 이별은 내게 꼭 필요했을 것이다. 그 모든 실패들은 내게 무언가를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무엇을 배웠을까 생각해보았다.
너무 아파서 배웠다. 엄마의 죽음은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로 하여금 인생의 모든 가치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미 가졌다고 생각했던 평화를 한 순간에 무너뜨렸다.
너무 안 아파서도 배웠다. 미지근함이, 편함과 익숙함이 '안정적인 관계'의 단서가 아님을. 그건 그냥 끝난 사랑임을 배웠다. 또, 시간의 축적이 관계의 질을 결정해주는 것이 아님을, 오히려 상처를 줄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음을 느꼈다.
역시나 자기계발서가 틀리지 않다면, 나는 앞으로도 몇 번이고 더 이별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또 실패했다며 자동차 운전석에 얼굴을 묻고 우는 짓을 반복하겠지만,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 다음 날 반쯤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해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뼘 더 자랄 것이다. 실패가 거듭될 수록 조금씩, 조금씩 삶의 방향키가 더 나은 쪽으로 조정되고 있으리라 믿는다.
만약 이별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면. 한 평생을 살면서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이별의 총 횟수가 정해져 있다면, 나에게는 몇 번의 이별이 더 남아있을까? 두려운 마음이 고개를 들 때마다 황급히 "그럴 때마다 얼마나 더 자랄 수 있을까?"라는 기대로 덮어버린다. 두려움과 기대가 공존하는 어설픈 마음을 가득 끌어안은채, 섣불리 말해본다.
"영원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