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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Nov 03. 2024

Galaxy R10

글감: <데이식스-녹아내려요>를 소설로 바꿔쓰기

2064년 10월 31일, 노인은 팔순을 맞이했다.

'언제 여든 살이나 먹었지.' 

생각 하며 노인은 10월의 마지막 날 아침을 맞이했다. 적막 뿐인 하루의 시작, 여느 날과 다름 없었다. 커텐을 걷어 그날의 A.S(artificial sun 인공 해)를 바라본다. A.S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광원에 노인은 눈이 부신지 미간에 주름을 만들어냈다. 12평 남짓한 작은 원룸엔 노인의 가느다란 숨소리만이 공간을 채울 뿐, 살아 있는 존재라면 반드시 만들어낼 수 밖에 없는 어떠한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속에서 노인은 홀로 시간을 죽여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죽어가고 있었다.


노인은 건강했다. 지나치게 건강했다. 분 단위로 발표되는 바이오기술과 생명유전공학기술은 인간에게 어떠한 질병도 허용하지 않았다. 3명 중 1명 꼴로 걸린다는, 노인의 부인도 결국 이겨내지 못했던 인간사의 가장 무서운 질병이었던 암도 의학기술에 의해 완벽히 말살되었다. 외모도 마찬가지. 노인의 외모는 정확히 예순의 나이에 멈춰 다. 노인 뿐만 아니라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2044년 이후로 늙지 않고 있다. 적어도 외적으로는.


생일을 축하했던 게 언제였던가. 눈처럼 하얀 생크림 케잌에 여러 개의 초를 꽂고, 다같이 둘러 앉아 꼬깔을 쓴 노인을 축하해주었던 날. 그날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오늘은 노인의 생일이지만 어제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노인의 곁에는 눈처럼 하얀 케잌을 준비해 줄 사람도, 노인의 나이를 세어 "길쭉한 초 8개 주세요."라고 말하며 초를 준비할 사람도, 노인의 머리에 꼬깔모자를 씌워줄 사람도, 노인을 가운데에 두고 둘러앉아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줄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외로웠다. 지독하게 외로웠다. 외롭다는 단어만으로는 감히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외로웠다. 부인은 죽은 지 30년이 넘었고 하나 있던 아들은 화성탐사대원이 되어 10년 후에나 지구로 돌아오기로 되어있었다.




노인은 벌써 며칠 째 자신의 작은 방을 떠나지 않았다. 외출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필요한 음식과 생필품은 구청 복지사업을 통해 전부 드론으로 배송되었다. 노인은 그중에서 필요한 것만 골라 쓰면 될 뿐이었다. 박스는 매달 말일에 배송되었고, 노인의 생일인 오늘도 여지 없이 드론은 노란 박스에 생필품과 각종 음식을 가득 담아 배송했다.


박스 안을 살펴보며 노인은 생각했다.

'잇몸복구가글? 쓸데 없는 게 추가되었군. 이건 빼달라고 요청해야겠다.'


노인은 배송목록 체크리스트에서 잇몸복구가글 칸을 공란으로 비워두었다.  체크리스트는 곧장 알람 소리를 냈다.

"배송 물품에서 해지되었습니다."

모든 건 이런 식으로 해결되었다. 대화는 불필요했다. 발화, 혀를 입 천장에 떼었다 붙였다, 공기를 목구멍을 통해 들이마셨다 내뱉었다하며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어색한 몸짓이 되었을 뿐이다.




한 달 후, 11월 30일. 노인은 택배를 확인했다. 택배 안에는 세포재생음식과 캡슐단백질 등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잇몸복구가글도.

'이게 또 들어왔네. 후'

미간을 찌푸리던 노인의 눈에 박스 한 켠에 놓여 있는 흰색의 작고 동그란 물체가 들어왔다. 

'아들이 멋대로 주문했나?'

노인은 물음표를 띄우며 그 물건을 두 손으로 안았다. 양손으로 가뿐히 들을 수 있을만큼 작은 크기였다. 생크림 케잌처럼 새하얀 그것을 요리 조리 탐색하며 '얜 뭐에 쓰는 물건인고.' 생각하던 찰나.


"안녕하십니까?"

작은 구는, 아니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노인은 화들짝 놀라며 손에 올려져있던 그것을 바닥으로 던져버리고 말았다.

뎅.

바닥과 부딪히며 둔탁하고 무거운 진동이 방 안을 채웠다.

그것이 노인과 그녀의 첫 만남이었다.




그녀는 노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붙였다.

"오늘 기분은 어떠신가요?"

"식사는 맛있으셨나요?"

"운동 강도는 적당하신가요?"


노인은 그녀의 수많은 질문에도 절대 대답하지 않았다. 노인에게는 고집이랄까, 편견이랄까 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놈이 그렇게 하나 들여놓으라고 해도 "로봇은 절대 넘볼 수 없는 인간만의 무언가가 있다"라고 말하며 거절했던 과거도 있었다. 노인은 곁눈질로 동그랗고 새하얀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달에 반품해야지.'

그리고는 생필품 체크리스트 목록에서 "Galaxy R10"을 공란으로 비웠다.




그녀는 정말이지 쉬지 않고 말했다. 적막뿐이던 12평 남짓한 그의 작고 소중한 공간은 어느 새 그녀의 목소리로 가득채워졌다. 아침이면 그녀는 "일어나세요." 라고 말하며 노인을 깨웠다. 화장실에 가면 "오늘의 변 색깔을 말해주세요."라고 하며 노인을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노인이 책을 읽다 잠시 멍을 때리면 "당신을 멈추게 한 문장은 무엇인가요?"라고 하며 그의 집중력을 방해했다. 하지만 어느 것도 노인의 대답이끌어내진 못했다. 노인은 마치 천만원 단위의 돈이 걸린 내기 체스라도 두듯, 필사적으로 그녀를 무시했다. 그렇다고 노인은 그녀의 전원을 끄지도 않았다. '거참 귀찮게 구네.'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녀가 하는 말을 고분고분 들었다. 전원 버튼 한 번만 터치하면 곧바로 조용해질텐데 노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12월 31일. 노인은 집으로 배송된 택배 박스 두 개를 확인했다. 하나는 노란색, 하나는 초록색이었다. 초록색 박스 위에는 커다란 글씨로 '반품'이라고 적혀있었다. 노인은 익숙하다는 듯 무릎을 숙여 초록색 박스에 잇몸복구가글을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찾았다.

'이제 좀 집이 조용해지겠군.'

노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작고 동그랗고 생크림 케잌처럼 새하얀 그녀를 초록색 박스 안에 넣었다. 미련은 없었다. 익숙한 적막으로 돌아갈 뿐이니. 노인은 초록색 박스의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는 구부린 무릎을 폈다. 그러자 박스 안 쪽에서 그녀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뚜껑에 가로막혀 웅웅 동굴속에서 들리는 것 같은 소리였지만 틀림 없는 그녀의 목소리였다.


"한 달동안 행복했어요."


노인은 뒤돌아 거실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광장에 설치된 동상이라도 되는 듯, 그자세를 한동안 유지했다. 얼마간의 정적이 노인의 작은 방을 가득채웠다. 러나 노인은 결심한듯 발걸음을 옮겼다. 박스는 저대로 두면 구청에서 수거해갈 것이었다.




2065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 노인은 자신을 깨우던 그녀의 목소리 없이 스스로 일어났다. 그리고는 A.S 광원의 눈부심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겨우 로봇 하나 사라졌을 뿐이다. 로봇은 노인의 지독한 외로움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로봇은 절대 어떻게 할 수 없는 인간만의 무언가가 있다.'

노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맡에 둔 책을 들어 올렸다. 어제 새벽까지 읽던 페이지를 펼쳐 글자를 눈으로 쫓았다. 


그러나 노인의 의지와는 달리 책은 한 시간이 흘러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았다. 이미 읽은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도,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하며 노인은 책을 덮고 잠시 눈을 감았다. 이쯤이면 그녀가 옆에 와서 "당신을 멈추게 한 문장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어야 하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노인은 그 순간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화장실을 가도, 음식을 먹어도, 노인의 표정이 좋지 않아도 귀찮게 구는 목소리가 없었다. 노인은 그게 편했다. 이제야 나만의 공간에 홀로 있는 데서 오는 편안함을 느꼈다. 그러나 노인은 화장실을 덜 가고 싶어졌고, 음식을 조금만 먹고 싶었고, 괜스레 표정을 찌푸려보게 되었다. 그리고 괜스레 아무런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노인은 왜인지 모르게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감각에 휩싸였다.




1월 31일. 노인은 노란 택배박스를 확인했다. 잇몸복구가글은 배송되지 않았다. 반품처리가 잘 되었나보다. 그리고는 박스를 뒤적였다. 각종 식품과 의약품을 들어올리고, 뒤집어 엎었다. 어디에도 그녀는 없었다. 내심 그녀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노인은 체크리스트를 집어올렸다. 그리고 공란으로 비워져있는 칸들만 눈으로 빠르게 훒었다. 잇몸복구가글, 당 수치 확인기, 반려동물용간식...그리고. 노인은 왼쪽 두번째 손가락을 들어올려 공란으로 되어있는 네모 칸을 터치했다. 공란은 이내 V표시로 바뀌었다.


V     Galaxy R10

체크리스트 알람이 울렸다.

"다음 달 배송 물품에 추가되었습니다."

노인은 그제서야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감각이 사라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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