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여정
나는 어디에서도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디서나 살아도 상관없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다. 나는 어디에서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분은 무척 낯선 것이었다. - 목정원,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중에서
‘어디에서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 상태로.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건 내 착각에 불과했고 고장 난 몸은 쉬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화요일 중간고사가 끝나고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속이 아프기 시작했고 침대에서 내내 혼자 끙끙대며 밤을 지새웠다. 해외에서 지낼 때 몸이 아프다는 건 필연적으로 마음을 약해지게 만든다. 혼자라는 사실은 아픈 사람을 서럽게 만드니까. 그래서인지 모든 것이 불안하게 느껴졌다. 심지어는 3박 4일 집을 비우고 여행을 가는 것조차도 전전긍긍했다. 집에 도둑이 들면 어쩌지(그런 적 한 번도 없음)부터 시작해 늦은 밤비행기로 가는 데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 도착해서 이동은 괜찮을지(심지어 학교 친구들이랑 가는 여행이었음에도) 등등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사소한 변수들이 머릿속을 괴롭혔다.
파리에 산다는 기쁨으로 충만했던 지난 4년을 정신없이 달려오고 보니, 이방인으로서의 삶에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삶이 화려해질수록 속은 텅 빈 듯 공허했다. 드라마 <에밀리 인 파리> 같은 내 인생이 그럴 듯 해 보이는 건 매우 쉽다. 파리는 멋진 도시니까. 특유의 낭만성이 사람들을 쉽게 현혹시키고, 행복한 ’척’을 하기 좋은 도시에 살고 있으니까. 때론 나 스스로도 파리라는 도시가 주는 환상에 속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곳에 속하고 있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면서도 동시에 이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졌다. 파리는 혼자인 사람에게 잔인할 만큼 낭만적인 도시라 때로 사랑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고, 사랑 없이는 인생이 무슨 의미지? 같은 생각이 종종 들었다.
이 모든 난잡한 마음들을 안고 금요일 밤 오를리 공항으로 향했다. 잠들기 시작한 도시를 떠나는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비행기는 연착됐고 부다페스트 공항에 도착했을 땐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지친 몸을 겨우 이끌어 버스를 타고 시내로 이동한 순간부터, 버스에서 내려 마침내 텅 빈 거리와 화려하게 반짝이는 거대한 건물, 지나가는 노란 택시를 마주한 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어쩌면 모든 게 괜찮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 내 같은 동아리 친구들과의 단체 여행이라 좀 더 저렴하게 숙소를 예약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시내 관광을 할 수 있어 편한 점도 있었지만 또 그만큼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했다. 분명 사우나, 수영장, 술집 등 친구들과 함께여야 즐거운 장소들도 있지만 나를 제외하곤 전부 프랑스인인 친구들 사이에서 가끔씩 찾아오는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는 것보다 차라리 그냥 혼자인 게 낫겠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래서 마침 친구들이 테러박물관을 구경한다기에 딱히 전시에 관심이 없던 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겠다고 하고 헤어졌다. 우선 주위 카페에 가서 조용히 코르타도 한잔을 마셨다. 도무지 카페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골목에서 의심을 잔뜩 품을 때쯤 대뜸 나타난 카페에서 2유로쯤 하는 코르타도 한 잔을 마시며 파리에 비해 너무 싼 커피 값에 충만한 기쁨을 누렸다. 커피 한 잔을 비우고도 친구들에게 합류하고 싶지가 않아 조용히 혼자 15분 정도 걸어 Q Contemporary라는 미술관에 갔다. 입구에 쓰여있는 미술관 이름 밑에는 ‘A Landmark Museum for Central & Eastern European Art(중부 유럽과 동유럽 미술을 위한 랜드마크)’라는 설명이 붙어있었고, 전시의 끝에는 이곳의 창립자가 남긴 말이 적혀있었다. Central Eastern European contemporary art fascinates me because I feel its sense of struggle and power, a feeling that is so deep yet do hidden. (중부 동유럽 현대 미술은 나를 매혹시킨다. 그것의 투쟁과 힘을 느끼기 때문이다, 숨겨져 있지만 깊은 감정을.) 낯설고 새롭지만 미적 감각으로 가득 채워진 작품들을 보며 미처 모르고 지나가는 아름답고 멋진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했다.
겨울이었다. 쌀쌀한 바람이 자꾸 코트 속을 파고들었다. 동유럽은 처음이라 이 스산하고 쓸쓸하며 처연하게 아름다운 도시가 이토록 사람을 매혹시킬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분명 서유럽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텅 빈 가게가 많아 죽은 도시 같기도 했는데, 있어야 할 것들의 부재가 마음을 쓰게 만들었다. 마치 세상에 끝에 와 있는 듯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을 온통 빼앗아 간 건 어디서든 마주할 수 있는 노란색의 낡은 트램이었다. 그것은 도시 어디에서도, 그게 오전이든 오후든 밤이든 아름답게 보였다. 오래도록 기억할 부다페스트의 노랑. 노란 트램, 노란 택시, 노란 공중전화, 노란 지하철, 그리고 노란색의 건물들까지, 노랑만이 회색빛 도시의 유일한 희망처럼 느껴졌다.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또 어떤가. 해가 지면 하나둘 켜지는 노란빛의 조명은 차가운 세상을 따뜻하게 감쌌고 그것이 생의 유일한 위로인 것처럼 그날 밤, 야경으로 유명한 랜드마크에서 하얀 입김을 뱉으며 친구들과 웃고 떠들면서 살아있음에 약간의 안도를 느꼈다.
마지막 날, 혼자 카페에 가서 노랗게 터지는 계란이 올라간 에그 베네딕트를 먹으며 목정원 작가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 문장이 기어코 나를 무너뜨렸다. 작가가 파리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며 남긴 문장이다. ‘논문을 마무리하고 일 년짜리 비자를 추가로 받게 되면, 나는 그곳에서 하고 싶은 일이 아주 많을 줄 알았다. 하나 어째서 우리는 가장 사랑할 수 없는 시절에 이미 아낌없이 사랑을 해버렸던가. 기진한 내가 더 꾸려가고픈 일상의 풍경이 거기 없었다.’
나는 파리를 너무 사랑했고 그래서 지친 것이었다. 사랑하는 시절은 지나고 이제 눈앞에 남겨진 것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벌인 일을 수습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들이었으니까. 그게 나를 막막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방인으로서 어느 한계에 다다라버린 거라고 생각했다. 이 문장을 파리가 아닌 부다페스트에서 읽어서 다행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도 파리를 떠날 때가 된 걸까?’라는 생각에 갇히는 대신 일상에 지친 나를 인정하고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공허함이 어디서 온 건지 이해하게 됐으니까. 아무튼 나는 3박 4일 동안 부다페스트에서 놀랍도록 괜찮아졌다. 파리보다 훨씬 저렴한 물가의 혜택을 누리며, 내가 모르던 세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봤고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에 둘러싸여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곳에서 느낀 삶의 속도는 내가 몇 년 전 서울에서 파리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것처럼 느리고 시시했는데 이제 파리에서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그 감각이 무척 반가웠다.
익숙한 곳에서 조용히 부서지는 것 대신 낯선 곳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 그것이 주말여행이 필요한 이유다. 전혀 다른 세계로의 도피는 아이러니하게도 날 안심시켰고 목적지가 어디든 그곳에도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됐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집에서 익숙한 곳이 주는 작은 안도와 행복을 느낄 때, 비로소 여행은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