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걱정 없이 비릿한 바깥공기가 몸에 배일 정도로 운동장을 뛰놀던 어린 시절의 저를 떠올리면 겁이 없고 자유로웠습니다. 수업 시간에 손을 가장 높이 들고 발표하는 주목받고 싶어 하는 말괄량이 소녀였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려지는 순백의 도화지 같은 아이, 요즘 유행을 빌려 표현하자면 ENFP 같은 순수하고 발랄한 영혼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 아이는 더 이상 마음껏 자기 생각을 말하지 못하고, 허무맹랑한 꿈을 꾸지 않고, 사회가 정답이라고 강요하는 삶을 살도록 가공됩니다. 마치 무엇이든 될 수 있던 천 조각과 솜뭉치가 똑같은 모양의 공장 인형으로 제조되는 것처럼요. 저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수제 사슴인형이 될 수도, 인형이 아닌 어느 아름다운 여성의 멋들어진 스커트가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제가 가진 재료를 어떻게 가공하냐에 따라 뭐든 될 수 있었을 테죠.
초등학교 4학년쯤, 예전과 달리 선생님께서 수업 중 발표를 안 시키셨고, 발표가 하고 싶던 저는 갑자기 손을 들고 왜 발표를 안 시키시냐고 순수한 마음으로 질문했습니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 용감했던 아이인 것 같아요.
선생님의 당황한 표정과 순간 얼어붙은 교실의 공기를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때였던 것 같아요. 제가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 날.
며칠 동안은 드문드문 발표를 시키셨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마저도 사라진 주입식 교육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손을 들고 발표하는 것은 유치한 일이고, "반 아이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행동으로 분위기를 흐리면 안 되는구나" , "속된 말로 나대지 말아야겠다." 하면서 그 세계에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라는 대로만 하면 상도 받고 칭찬도 받고 시키는 대로 사는 삶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니 안정적이고 편했습니다. 그렇게 남이 제시해 주는 삶을 사는 것, 삶의 중심에 내가 없는 삶은 많은 것을 고민해야 하는 고통을 주지 않았기에 미련스럽지만 그게 좋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회에 나오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방황이 시작되니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삶에 균열 가기 시작했습니다.
뭘 좋아하는지 몰라 선택장애가 따르고, 배운 적 없는 인간관계는 너무나도 어려웠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지 모르니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다 잘 될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를 떠나니 시키는 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줄 몰랐습니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삶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제는 내 삶의 주인공을 나로 만들어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깨달음에 대한 과정들도 차차 앞으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긍정적인 삶으로의 변화에는 아픔이 수반하는 것 같습니다. 긴 시간 믿었던 것들을 버려야 해야 하기도 하고, 나의 잘못됨을 인정하는 것, 변화에 대한 불확실, 아픈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막연한 두려움을 버리고 지극히 작은 실천이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누구보다 자기혐오와 과거에 대한 후회로 가득 찼던 제가 지금은 변화된 생각과 행동을 하고 미웠던 과거의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저도 부족하지만, 제가 겪은 '삶을 변화시킨 일들'을 함께 나누고, 이 글을 쓰면서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제 이야기가 작은 위로와 공감이 되기를 바라며 앞으로의 이야기들을 차곡하게 쌓아가 보겠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대체불가한 존재입니다.
지금은 이 문장이 아무런 힘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의미를 가진 사람인지 조금씩 찾고 나 자신을 정의하면 스스로 저 문장을 외치는 날이 찾아올 거라고 조심스럽게 확신해보고 싶어요.
소중한 당신을 찾는 일을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