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
최근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세상이 좁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 이런 말이 나왔다.
“나 일하는 데 너랑 같은 학교 공대 다니는 애 있음.”
“헐.”
솔직히 이 말을 듣고 나서의 반응은 사람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뭐 그런 거 가지고 유난이냐?’라고 할 수도 있고, ‘완전 대박이다.’ 이렇게 반응할 수도 있다. 나는 명백히 후자였다.
공대 건물이 그렇게 넓지도 않고, 심지어 나이까지 같아서 오가며 마주치기도 했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와 서로 아는 것 말고는 아무런 접점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곳에서 생기는 접점을 보니 조금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거미줄처럼 펼쳐진 인간관계가 돌고 돌아서 다시 서로에게 돌아오는 과정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이라는 게 있다.
인간관계는 6 다리만 건너면 지구상 대부분의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이론은 완벽하진 않지만 실험적으로 검증되었는데, 2006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무작위로 추출한 두 명의 사람이 평균 6.6명을 거치면 서로 연결된다는 실험 결과를 밝히며 일부 사실로 증명되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우연이다.
‘자만추’라는 단어가 있다.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라는 말의 줄임말인데, 자만추인 사람들은 누구에게 소개를 받거나 하는 인위적인 만남을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연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우연의 개입이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여태 나를 거쳐갔던 인연들, 현재 관계를 맺고 있는 지인들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오래된 친구들, 심지어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는 부모님의 존재까지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다 우연의 연속이다.
당신이 우연히 내 글을 읽는 것, 우연히 친한 사람이 생기는 것, 이런 것들은 삶의 무한대에 가까운 경우의 수 속에서 한 가지를 선택한 것이다. 그걸 과연 우연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직전에 쓴 글에서 이런 말을 했다.
‘보편적으로 운명이라 치부하는 기막힌 우연과 같은 것.’
그렇다면 우연이란 결국 필연, 즉, 운명이 아닐까?
우리는 수많은 우연 속에서 서로를 만나고, 같은 점을 통해 연결되고, 그 점에서 그어진 접선은 다른 사람에게 닿아 우리의 인간관계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때로는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오래도록 곁에 남기도 하며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즉, 우연은 결국 필연으로 향하는 다리이다. 모든 만남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시 그 순간을 되돌아보면 삶을 바꿔 놓은 운명의 한 파편이었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스쳐간 모든 인연은 우리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퍼즐 조각이 되어 그림을 완성해 나간다.
즉, 우연은 삶의 전부이기에 그로 인해 얻게 된 특별한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야 한다.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온 필연을 간직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 갈 다음의 우연 속에 숨겨진 또 다른 필연을 찾아가기를 바랐다. 그런 생각을 했다.
2024.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