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머피의 법칙
얼마 전 학교에서 대학원 면접을 봤다.
그 연구실 소속의 재학생을 대학원생으로 뽑는 과정에서의 면접은 형식적인 몇 가지의 질문을 하며 간단하고 짧게 면접이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무리 그래도 면접이니 용모와 복장을 조금 단정하게 가기 위해 구석에 처박아뒀던 정장 상의를 입고, 최대한 깔끔하게 해서 면접 당일 학교에 도착했다.
같이 면접을 보는 몇몇 친구들과 대화를 나눴다.
“뭐 물어본대?”
“저번엔 그냥 일상적인 담소 하고 끝났다던데?”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별로 긴장되지도 않았고 내 순번이 오기 전까지 친구들이랑 계속 떠들었던 것 같다.
먼저 면접을 본 친구가 나오고 나서 면접 내용을 물어보았다.
“야 어땠냐?”
“그냥 편하게 들어가.”
이 말을 듣고 ‘아 진짜 별거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말은 내가 가지고 있던 정말 약간의 긴장감조차 남김없이 날려버렸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어 면접장에 들어가서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 후에 가벼운 마음으로 질문을 기다리며 교수님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형식적인 질문을 몇 가지 받다가, 한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생명과학 부전공 하고 있네요?”
그냥 무난하게 대답했던 것 같다. 지금 연구하고 있는 분야와 관련이 있기도 하고, 생명 쪽 지식을 쌓고 싶어서 선택했다는 이야기도 조금 했던 것 같다. 나를 첫 번째로 당황하게 한 것은 다음에 나온 교수님의 말씀이었다.
“그러면 부전공에서 배운 생명과학 메커니즘 하나만 설명해 볼래요?”
‘...’
저 질문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질문에 대한 대답에 관한 게 아니라 아무것도 준비를 하지 않은 나에게 하는 욕설과, 앞서 면접을 봤던 친구들이 했던 말들이었다.
"전공 같은 거 안 물어보시던데?"
"학점 낮다고 혼났음."
"별거 없어."
‘안 물어본다며!!!!!!’
그렇게 면접과는 상관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정신 차리고 배웠던 내용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이미 나의 뇌는 당황과 함께 조바심까지 겹쳐져 적당한 대답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렇게 1시간 같은 10초의 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했지만, 속에선 이미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고 있었다.
그러다 한 가지가 생각나서 무난하게 대답을 마쳤던 것 같다. 그렇게 대답을 마치고 나니 집 나갔던 긴장감이 다시 돌아와 온몸을 휘감았다.
그 이후로도 몇 가지의 전공 지식과 현재 연구하고 있는 분야, 그에 대해 조금 디테일한 부분까지 질문을 받고, 지금 생각해 보면 잘 대답했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여담으로 갑자기 물 분자의 길이를 물어보시길래 솔직히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때 교수님께 악의를 담은 눈빛을 조금 보냈다.
그렇게 조금 진이 빠진 채 면접을 마쳤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준비를 너무 안 해갔나?’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되돌아보니, 정말 예상치도 못한 질문들에 대해 돌파구를 잘 찾아 면접을 잘 마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기응변이 좋았던 것이다.
이 경험을 하고, 임기응변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중요한 처세술인지 새삼 깨달았다. 이런 말이 있다.
‘세상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경우의 수에 대해 대비를 한다 하더라도, 문제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터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사소한 문제는 쌓이고 쌓여 결국 나비효과가 되어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설사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는 데 필요한 시간, 재화 등은 결국 이후에 돌아보면 기회비용일 뿐이다.
임기응변이 좋다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 큰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머피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하려는 일이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만 간다는 법칙이다.
이는 사실 일종의 확증편향이다. 계획대로 된 일보다 문제가 생긴 일이 더 기억에 잘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머피의 법칙이라 말할 수 있는 사례가 일어나는 빈도는 개개인에 따라 다르다.
사실 이론적으로 모두에게 문제가 생길 확률 자체는 한 평균값으로 수렴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내 주변만 해도 어떤 일을 하든 삐걱대는 사람이 있고, 무슨 일이든 유연하게 대처하여 최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
내 생각엔 이런 것은 임기응변과 관련이 있다.
어떤 문제가 일어나면 임기응변을 발휘해 유연하게 대처하는 사람과, 상정 외 상황에서 고장나버리는 사람의 차이인 것이다.
반복 작업만을 하는 로봇 팔과 인공지능의 차이라고 비유하면 딱 맞을 것 같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open AI인 ‘chat gpt’를 비롯해 과거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승리한 ‘Alphago’와 같은 인공지능은 주어진 문제에 대해 유연한 사고를 하고, 정답에 가까운 결론을 도출해 낸다.
이는 임기응변이 뛰어난 사람과 닮아있다.
임기응변이 뛰어난 사람은 어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닥쳤을 때 그 상황 속에서 가장 괜찮은 선택지를 고른다.
이런 임기응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내 생각에 임기응변은 ‘경험’에서 온다.
마치 빅데이터를 제공받은 AI처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은 본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도출된 결론을 임기응변으로써 사용한다.
‘노인의 지혜’라 부르는 여러 가지 것들도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결국 임기응변이란 경험의 산물이다.
우리는 종종 철저한 준비만이 성공의 열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기에, 완벽한 준비만을 추구하는 것보다 예상 밖의 상황에서도 기회를 포착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연성이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변화와 불확실성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이야말로 다양한 상황에 부딪히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아닐까?
당신이 여태까지 쌓아온 경험, 그리고 이제부터 쌓아갈 기억들은 당신을 조금 더 나은 미래로 데려다 놓을 것이다.
2024. 11. 17.
ps. 면접은 붙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