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배신과 기대의 상관관계

오늘도 우리는 우리를 배신한다.

by 고요

“사람을 믿을 수가 없다는 발견은 청년에서 어른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어른이란 배반당한 청년의 모습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쓰가루•석별•옛날이야기’의 한 구절이다. 이 책에서 유일하게 기억에 박혀있는 내용이다. 소위 말하는 어른이라고 불릴 나이가 되었을 때쯤 위 글과 같이 나도 배반당한 청년의 모습이 되어 있던 것 같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길다고 할 수도 짧다고 할 수도 없는 시간을 견뎌오며, 크고 자잘한 배신에 상처를 입다 도달한 결론은 다자이 오사무의 글처럼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발견이었다.

예전부터 겪어 왔던 사소한 배신의 기억을 하나씩 꺼내보자면 군 전역 후 여행을 갔는데 차비가 없다며 말하는 후임에게 빌려주고 못 받은 5만 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람을 쳤는데 합의금이 모자라다며 도움을 요청한 지인에게 빌려준 목돈, 믿었던 연인의 바람피우는 장면은 라이브로 목격한 것, 친구의 죽음에도 최소한의 예의도 갖지 못하고 등 돌리는 금수들과 같이 나를 상처 입게 하는 일일들의 연속이었다.

지금에 와서 보면 내가 그들에게 가졌던 소중함이나 신뢰 같은 것들이 그 사람들에게는 한번 간단하게 쓰고 버리기 편한 인스턴트 같았던 것 같다.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흘러 잊었다고 믿었던 것들이 돌이켜보자마자 다시 기억에 떠오르는 것을 보니 배신의 상처는 결국 흉터가 되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들과 달리 나도 배신이란 단어 결백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번 주말에는 꼭 헬스장을 나가겠다는 자신과의 약속도 배신하는 나는 나를 상처 주었던 사람들과 같이 주위에 수많은 상처를 남겨왔을 것이다. 그들과 같이 사소한 일이라고 치부하며 남에게 상처 준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면서.

이렇게 우리는 배반당한 청년이 되어 가고 다양한 종착역에 다다를 것이다. 결국 지금에 이르러 나는 어떤 배반당한 청년의 모습이 되었는가?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기대가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내가 가지는 사람에 대한 기대치는 0에 수렴한다. 그나마 사람의 기대치가 마이너스가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기대라는 바람이 불면 실망은 파도가 되어 밀려온다. 기대라는 원인을 제거하니 요즘에는 사람에게 상처받을 일도 많이 없다. 조금 무료하긴 해도 마음에 파도칠 일이 없으니 심사는 편해졌고, 그럼에도 나의 기대치에 조금씩 양의 값을 쌓아 주는 사람들이 있어 마음이 차갑지도 않다.

배신으로 비워진 마음이 오히려 새로운 무언가를 채워놓기 좋아진 것 같다. 이제는 내 주위에 온기를 나눠주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조금 느리더라도 서로에게 기대를 쌓아가며, 배신이 아닌 보답으로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는 순풍이 부는 매일을 보내고 싶다.

keyword
이전 08화3일간의 아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