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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분가분 Nov 11. 2024

오늘 당장 미래를 살고 싶어요!

이제는 더 이상 변화를 기다리지 않을래요.


노근 선생님께          



답이 없는 시험지

선생님, 얼마 전 인천에서 또 가슴 아픈 소식이 들려왔어요.

아, ‘우리들의 학교’는 정말 답이 없는 시험지 같아요.

서이초 사건이 터진 지 1년이 흘러도 변한 게 없어 보여요.

선생님들이 힘들다고 하소연해도 저 높은 곳에 계신 분들은

그저 자신들의 자리(권력) 지키기와 이권 챙기기에만 관심이 있어요.

과도한 행정업무를 줄여달라는 호소도 한쪽 귀로만 흘려서 듣고,

악성 민원을 중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달라는 부탁도 뭉개고 있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는 관행과 례를 앞세우며

교사가 가르침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고 계속 일만 하래요.

학부모들의 부당한 요구를 제재하기엔 모호한 기준을 만들어서

교사의 처지도 학부모의 처지도 돌보지 못해서

‘괴물 학부모’들이 활개 치는 세상을 아무도 막지 못해서

평범한 교사와 학부모가 서서히 정신을 잃어가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학교에서도 여전히 아이들이 자라나고 있어요.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을 때론 당차게 거부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물들어가고 있어서

나만 편하고, 나만 재미있고, 나만 잘나면 땡이라고 생각하는

‘문제 행동 학생’도 점점 늘어가고 있어요.

선생님, 어떻게 하죠?

제가 아무리 1년 자율연수 휴직으로 편안해진 마음으로 학교에 돌아간들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답 없는 시험지를 받은 지 이미 한참 오래되어서

이젠 깊은 생각을 끝낼 때도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어차피 답이 없는 시험지니까요

이제부턴 제 맘대로 답을 써 내려갈 작정이에요.

아뇨, 예전 편지에서도 슬쩍 말씀드렸지만, 전 신규 때부터 제 맘대로였어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교육청 정책이 바뀌어도

처음부터 저는 그랬어요, 그들이 원하는 단어만 그럴싸하게 말해주고

저는 제 교실에서 신나게 제 맘대로 아이들과 뒹굴며 놀았어요.

어차피 아이들의 성장을 위한 본질은 변하지 않고 늘 한결같아요.

맨날 저 위에서는 말만 바꿔서 새로운 교육을 한다고 떠벌리지만

사실 진짜 좋은 교육은 교사가 가장 잘하는 걸로 수업하는 거예요.

교사 스스로 자신이 있어서 신나고 재미있으면,

결국에는 아이들도 덩달아 스스로 재미를 찾아가요. 늘 그랬어요.

그러니까 선생님도 걱정하지 마세요.

2022 개정 교육과정이니, AI 디지털 교과서니, IB 교육과정이니 막 떠밀어도

절대 고민하지 마세요.

그냥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고, 가장 잘하는 수업을 하세요.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단어에 맞춰서 선생님만의 교육과정을 구성해 주세요.

어차피 그들은 쳐다보지도 않아요.

어차피 그들은 이미 보고 싶은 것을 정해놓고 있으니 우린 안중에도 없어요.

그러니까 끊임없이 선생님이 제일 잘하고 싶은 걸 ‘거침없이’ 파고드세요!

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저는 제가 믿는 대로 아이들을 만날래요.

절대로 재미로 친구들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고요,

내 실력이 뛰어나다고 나보다 부족한 친구들을 업신여기지 않고요,

혹시라도 모자란 부분으로 힘든 친구를 보면 앞장서서 도와주고요,

남이 좋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걸 더 사랑할 거고요,

함께 놀기에도 아까운 시간을 절대 정답만 외우는 공부는 안 할 거고요.

친구와 의견이 달라 말다툼이 생겨도 친구 생각을 끝까지 듣고 품을래요.

항상 내 맘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걸 당연히 인정하니까요.

그래서 서로의 마음이 찰떡같이 맞아떨어지는 그 빛나는 순간,

그 행복과 기쁨을 놓치지 않고 친구들과 온전히 나누며 반짝반짝 살아갈래요.      




오늘 미래를 살래요

그래요, 이젠 더 이상 변화될 미래를 기다리지 않을래요.

어차피 미래에도 바뀌지 않을 거란 걸 이젠 알겠어요.

세월호가 그랬고, 이태원 참사도 그랬고, 서이초 사건이 그러고 있어요.

사실은 어쩌면 제가 그토록 거부하는 그들의 모습을 저도 닮아갈지 몰라요.

그러니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삶을 믿지 않을래요.

그냥 제가 살고 싶은 미래를 지금 당장 부딪치며 살래요.

둘레에서 남들이 비웃어도 참을 수 있어요.

예전에도 이런 일 있었어요.

의사 친구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시골 마을에서 텃밭을 가꿀 거라 했어요,

근데 전 이미 그때 시골 마을에서 텃밭을 가꾸고 있었어요.

그 친구는 제가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간다고 했을 때 절 비웃었어요.

남들이 떵떵거리며 누리는 편리를 갖지 못해도 전 행복해요.

지구인 모두가 떵떵거리며 살려면 지구가 5개나 있어도 모자란대요.

제가 조금 덜 쓰고, 덜 소비하고, 덜 누리면,

제 자식이 조금 더 오래 인간답게 지구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제 마음이 마구마구 행복해져요.

그렇다고 이런 제 생각만 정답이라고 잔뜩 어깨에 힘주지 않을래요.

자본주의 세상에서 사는 우리는 나도 모르게 무한 욕망을 내재하고 사니까요.

내 욕망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구조라는 걸 늘 기억할래요.

그러니까 멋있는 척 제 생각을 내세우는 걸 늘 조심하고,

자아를 찾는다는 멋진 말로 제 삶을 포장하지 않도록 늘 조심할래요.

그저 웃음 찾아서 살다 보면, 나의 긍정적 감정이 친구에게 전해져서

밝은 기운이 인간 고리를 타고 세상에 연결될 거라고 믿을래요.

땅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려는 유기 순환농업처럼

끊임없이 세상에 가슴 따뜻한 기운들이 선순환되는 모습을 상상할래요.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그 무엇을 위한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될 수 있도록 나날이 제 맘을 돌보며 살래요.

그래서 그러니까 제게는 웃음이 제일 중요해요!     




인생은 늘 선택이죠

가끔 그래요.

옛날 사진들을 보거나, 옛날 일기장을 들출 때

가슴 뛰던 시절, 그때 그 마음이 문득 떠올라서

내가 살아있구나, 살고 싶었구나, 나도 그렇게 행복했던 거구나,

하고 뒤늦게 막 벅차오를 때가 있어요.

그래서 미친 사람처럼 혼자 막 웃어젖힐 때,

우리 곁을 떠난 선생님들이 생각났어요.

교실에서, 아파트에서, 세상 고독한 그곳에서

스스로 생의 조명을 꺼버리기 전,

선생님들께 가장 마지막으로 떠오른 게 무엇이었을까 궁금했어요.

선생님들께도 분명 가슴 뛰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생각하니

가슴이 또 방망이질 치며 피가 거꾸로 솟구쳤어요.

가까스로 숨을 가다듬어요.

이제 우리 하루에 한 번씩, 일부러라도 나를 위로하기로 해요.

더 이상 혼자라는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말이에요.

당신 옆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당신이 서 있어요.’

가슴 벅차게 부풀었던 당신의 꿈들에 기대어

내일의 꿈을 오늘부터 당장 다시 시작하기로 해요!

그러니까 제발 우리, 이제는 그만 떠나기로 해요…….     



바닥을 친 다음 우릴 기다리는 것들

나이아가라 폭포에 갔어요.

맞아요,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와서 봐야 한다고 해서 갔어요.

근데요, 정말 이상했어요.

처음 본 순간 실제가 아니라 화면 속 영상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곧장 유람선을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 바로 밑까지 가봤어요.

하, 떨어졌다 다시 솟구치는 물보라에 온몸이 흠뻑 젖고 나서야

비로소 느낌이 왔어요.

떨어져 내리는 두려움이!

바닥을 치고 다시 떠오르는 환희가!

하지만 결국 모두 아래로 흐르는 생명이!

우리는 그렇게 떨어지고, 솟구치고를 되풀이하며

아래로 아래로 끊임없이 흘러 내려간 뒤에

마침내 하나가 된다는 사실이 온몸에 새겨졌어요.

저 거대한 바다에서 우린 반드시 하나가 되어 다시 만날 테니까,

제발 혼자 고립되지 마세요.

사실은요,

저도 무척이나 무섭고 힘들었거든요.




임아, 부디 그 강을, 그 바다를 가뿐히 건너요

캐나다의 섬,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PEI).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빨강 머리 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곳에도 갔어요.

‘앤’이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달려 나갔던 섬의 벼랑 끝에 서보니,

다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인 ‘피리 부는 사나이’가 떠올랐어요.

우리는 지금 누구의 피리 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며 벼랑 끝에 서 있는 걸까요.

저 바다 너머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애써 외면한 채,

우리는 오늘도 어떤 피리를 불며 서로를 현혹하고 있는 걸까요.

온갖 상념에 허우적대다 샬럿타운 시내로 나가 늦은 저녁을 먹고 나오니

때마침 불꽃놀이가 화려하게 펼쳐졌어요.

저는 예전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해요.

그날 저는 먹은 걸 자꾸 토해냈어요.

아뇨, 딱히 뭐 큰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저 그런 날들의 연속, 뭔가 딱히 잡히는 건 없지만,

마당에 목이 묶여 뱅뱅 돌다 지쳐 잠드는 우리 집 개가 꼭 나 같은 나날들.

지금 생각해 보면 세상의 그 무엇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요, 무작정 가족을 따라나섰어요. 기분이 나아질 거라고 모두 그랬어요.

그런데요, 정말 처음이었어요.

그렇게 바로 가까이서 불꽃놀이를 본 게요.

늘 사진이나 영상에서 보듯 화려하기만 할 거로 생각했는데,

저요, 사실은 무서워죽는 줄 알았어요.

폭죽을 쏘아 올리는 소리가 진짜 군대에서 쏘아대는 대포 소리 같았어요.

꼭 전쟁이 터진 것 같은데, 사람들은 좋아라 사진을 찍어댔어요.

간혹 귀를 틀어막는 어린아이를 보긴 했어요.

그렇게 맘속은 두려움을 참느라 용을 쓰고 있고,

눈으로는 저렇게 빛나는 세상이 내 앞에서도 펼쳐질 수 있구나 감탄하는데,

마지막인 듯 화려했던 불꽃놀이가 끝나고 거짓말처럼 까만 하늘만 남았어요.

방금 보았던 요란 승천했던 불꽃들은 기억에서 가물대기만 하고,

새까만 하늘에 작은 별 서너 개가 하도 보일 듯 말 듯해서,

저게 별일까, 별이겠지, 제발 별이었으면 생각했던 기억만 떠올라요.

그래서 이렇게 세월이 흘러 다시 불꽃놀이를 보게 되면요,

전 기분이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무.서.워.져.요.

새빨간 거짓말이 아니라,

새까만 거짓말에 모든 게 묻힐까 봐요.

새까만 밤을 건너는 어제와 내일이,

그 사이가 너무 무서워요.

맞아요, 늘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건 힘든 일이에요.

항상 경계를 넘나드는 건 으르렁대는 늑대의 울음처럼

깊은 마음속이 소란스러운 일이었어요.

그런데요, 매번 저 태양이 내게로 넘어오는 건지,

아니면 내게서 떠나가는 건지는 알 수 없잖아요.

어릴 땐 그랬어요.

맘속 으르렁 소리에 지레 겁먹고 이불만 뒤집어쓰곤 했어요.

이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더 커졌어요.

까짓거 저 태양이 내게서 떠나면 어때요?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달님이 날 따라다닐 텐데요, 뭐!

어차피 앞으론 뭐가 진짜고 가짜인지 알 수 없는 세상이 펼쳐진대요.

그냥 이렇게 생각하기로 해요, 우리.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당신만 그런 것도 아니고,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니까,

다시 힘을 내보는 거예요.

지금 내 모습이 가짜일 수도 있으니까

진짜를 찾아 다시 일어서자고 맘먹기로 해요!

제발, 부디 다시 일어서기로 해요!

그래서 멀리서 본 PEI 샬럿타운의 불꽃놀이는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에요.     




캐나다

처음엔 저의 아동학대 신고로 촉발된 기러기 아빠 생활이지만,

솔직히 대한민국 중고등학교를 생각할 때 주저할 이유가 없었어요.

지금까지 편지에서 ‘우리들의 학교’라고 명명하며 이야기했지만,

사실 학교의 부활은 초등학교에 한정된 이야기였다고 고백해요.

대한민국 중고등학교는 대학교 입시를 먼저 바꾸지 않으면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걸 교사를 비롯한 대부분 어른이 알고 있어요.

대학교 입시를 바꾸기 위해서는 대학 서열에 기반한 학벌 사회를 혁파하지 않으면

답을 찾을 수가 없다는 걸 속으론 다 알지만, 어쩔 수 없어서 그냥 살아요.

교육부가 맨날 사교육비를 절감하기 위해 내세우는 공교육 정책들은

이런 전제 조건을 바꾸지 않는 이상 학교를 그저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에요.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본질은 변하지 않는데,

맨날 방법론만 휘황찬란하게 포장해서 우리를 속일 뿐이니까요.

그때마다 사교육은 공교육 학교를 조금씩 갉아먹어서 이젠 뼈대도 없어요.

그런데 말이죠, 이제 대한민국의 그 대학들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길 포기한 젊은이가 늘면서

대한민국은 전 세계 출산율 꼴등 국가가 되었기 때문이에요.

벌써 제가 살던 시골 동네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문을 닫기 시작했고,

우리 학교는 폐교로 지정되어 살려달라 학부모들이 시위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니 앞으로 대학에 들어갈 학생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더불어 대학의 숫자도 점점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그 위상이 위축되고,

AI에 기반한 인공지능 사회가 도래해서 학벌에 기대지 않아도

자기만의 소질과 능력과 열정을 생생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할 때까지는 그래도 어쩔 수가 없어서 그냥 살아내야 해요.

그런데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북유럽 국가나 캐나다는

이미 예전부터 학벌 사회를 거부하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하며 살아요.

캐나다에는 한국과 같은 입시가 존재하지 않아요.

한국 학제로 말하면 고2~고3 때 조금만 학교 공부에 신경 쓰면,

캐나다 안에 있는 웬만한 대학교는 큰 어려움 없이 입학할 수 있어요.

물론 졸업은 달라요.

토론토 대학에 입학했다는 말은 많이 듣지만,

졸업했다는 한국 청년을 만나긴 사실 좀 쉽지 않아요.

물론 선진국 백인 사회에서도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한다는 걸 알아요.

캐나다 백인 부모도 ‘괴물 학부모’처럼 자식을 소유물처럼 다루기도 해요.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우리처럼 모두가 그렇게 살려고 하지 않아요.

우리처럼 대학을 위해 모두가 100m 육상선수처럼 10대를 보내지않아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길에서 만난 캐나다 개들이 제게 짖는 걸 본 적 없어요.

도서관에서는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음식을 먹으며 책을 볼 수 있고,

아이들과 노래 부르며 가벼운 활동을 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아요.

수영장에서는 다이빙하며 놀라고 일부러 한쪽에 수심을 깊게 만들어줘요.

초등학교 체육수업에서는 지루한 반복 훈련을 훼방하는 장난꾸러기도 없어요.

일상적으로 만나는 캐나다 사람 입에선 '고마워요'와 '미안해요'가 가득해요.

물론 캐나다 역시도 노숙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마약에 취해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가끔 볼 수도 있어요.

어차피 인간 세상에 완벽한 시스템이란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요.

그래도 조금 더 인간적인 세상이 가능하도록 노력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요.

그리고 그 노력의 시작이 처음엔 두려워 선뜻 도전하기 힘든 것도 알아요.

그래서 그러니까 새로운 선택을 위한 진짜 용기가 이제는 절실해요.      




끝 다시 시작

선생님, 캐나다 국기가 어떤 모양인지 아시지요?

메이플 나뭇잎 하나가 덩그러니 그려진 단풍국, 캐나다.

그 이름다운 단풍잎이 모두 떨어지고 마지막 남은 잎새만 몸부림치고 있어요.

그래서 한국 달력을 들춰보니 오늘이 입동이에요.

오늘로 정확하게 캐나다에 들어온 지 8개월이 되었어요.

이곳에서 제가 가장 열심히 한 일은 집 둘레에 있는 호숫가 산책이었어요.

수양버들을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면 야트막한 언덕이 나와요.

그리고 그 언덕 낮은 곳에 기이하게 생긴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고

그 아래에 벤치가 있는데, 그곳에 앉아 가만히 연두 초록 들판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는 게 제일 좋았어요!

그렇게 무얼 기다리는 사람처럼 무심하게 보내는 시간 속에서

무기력과 우울감에 빠져 지내던 제 맘은 몰라보게 치유되었어요.

그리고 선생님과 나눈 서신을 통해 잊지 않아야 할 본질이 분명해졌어요.

선생님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저의 무모한 도전 정신에 열정의 불을 질렀어요.

이제 한 달이 지나면 저는 다시 제가 살던 시골 마을로 돌아갈 거예요.

폐교 대상 학교로 지정된 우리 학교가 버틸 수 있는 그날까지,

저는 더욱 신나게 아이들을 만날 거고 더 다양한 생명들을 가꿀 거예요.

어쩌면 이 편지가 당분간 선생님께 드리는 마지막 편지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아마도 제가 나무 밑 그 벤치에서 기다린 건 선생님이 아니었나 싶어요.

한국에서 직접 만날게요.

그때까지 몸도 마음도 영혼도 건강하세요.           



2024. 11. 7. 입동

교사 권 이 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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