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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s Meer Jun 23. 2024

Bach Inventions and Sinfonias

바흐 인벤션과 신포니아




 나는 바흐 인벤션을 8살 때 처음 배웠다. 인벤션 4번을 쳤는데, 당시에는 이 곡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악보도 잘 못 읽어서 1차 막힘, 읽은 대로 치지를 못해서 2차 막힘, 양손을 동시에 못 쳐서 3차 막힘…. 악보 읽는 것을 도와주던 엄마에게 구박을 많이 맞았다.

과연 이 곡이 그렇게 어렵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다른 인벤션이나 3성 인벤션에 비하면 어려운 측에도 끼지 못한다. 그냥 내가 어리고 잘 몰라서 못 쳤던 거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던가. 왼손으로 세모 그리고 오른손으로 동그라미 그리는 것처럼 느껴지던 바흐가 연습하다 보니 점점 할 만해졌다. 바흐 특성상, 연주 중에 정신을 차리면 규칙적으로 우다다다 움직이는 손가락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마치 내가 로봇이 된 기분.


Invention No.4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3성 인벤션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도 시련이 찾아왔다. 처음 배울 때에는 머리가 세 조각으로 쪼개지는 줄 알았다.


3성이란?


 바흐 인벤션의 정확한 명칭은 Inventions and Sinfonias (인벤션과 신포니아)이다. 인벤션 15개, 신포니아 15개, 총 30곡인데 보통 이 30곡 전부를 통틀어 인벤션으로 부르는 경향이 크다.


 인벤션과 신포니아를 나누는 기준은 작품 속 성부의 개수에 달려있다.

성부란 무엇이냐, 쉽게 말해 확고한 멜로디 라인이다. 2성, 3성은 2개, 3개의 성부가 쌓여 있다고 이해하면 된다.


 인벤션 1번의 악보이다. 이 곡에서는 분홍색과 민트색, 총 두 개의 성부가 동시에 진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위와 같은 작품을 2성 인벤션이라고 한다.




 반면에 신포니아 1번은 3개의 성부가 동시에 진행을 한다. 위와 같은 작품을 3성 신포니아(또는 3성 인벤션)이라고 한다.


 3성부터는 전공생들도 꽤 어려워하는 영역이다. 세 성부 모두 동등한 선율로 취급받아야 하기 때문에 연주 중에 각 성부들을 계획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어려운 점은 바로 여기서 온다.

바흐 작품은 비유하자면 수학이다. 체계적이고, 군더더기가 없다. 만약 모든 성부를 생각 없이 같은 크기로 치면, 꽝꽝꽝꽝 하듯 지저분하게 들린다. 성부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어지럽게 들릴 것이다. (바흐의 다른 작품 중에는 4성, 6성, 심지어 8성으로 된 작품도 존재한다!)


 그래서 다성부 곡을 연주할 때에는 어느 시점에서 이 성부를 살릴 것인지, 얼마동안 다른 성부를 죽일 것인지를 계획해야 한다. 앞서 비유했던 한 손으로 세모 그리고 다른 손으로 동그라미 그리기랑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또 펼쳐지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연습밖에 없다.



인벤션은 어린애들만 배우는 곡이다?



 바흐 인벤션은 피아노를 굳이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피아노 학원에서 한 번쯤 배워봤음직한 작품이다. 말하자면 피아노계의 기초 교과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바흐는 이 작품을 애초에 교육용으로 작곡했다. 바흐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들도 음악적 재능이 무척 뛰어나서, 아들들의 음악 교육을 위한 클라비어(피아노의 전신이 되는 악기) 곡집을 여럿 썼다.


 인벤션 악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서문이나 해설이 붙어있는 앞장에 두 줄 정도의 짤막한 악보가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이렇게 생겼다.


 이게 무엇이냐면, 장식음을 기호에 따라서 어떻게 쳐야 하는지를 바흐가 직접 하나하나 악보에 풀어서 그려준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걸 보고도 그냥 악보 편집자가 붙인 장식음 해설인가 보다,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무려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명칭, 기호, 리듬까지 직접 기록한 거란다.

내가 MBTI  F인 탓도 있겠지만, 처음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많이 감동받았고, 마음이 찡했다. (나도 가끔 장식음 치는 법 헷갈릴 때마다 찾아본다… 바흐 감사합니다.)



 우리나라는 바흐 인벤션 하면 초보자용 피아노곡이라는 인식이 좀 있는 것 같다. 초보자들이 여러 피아노 스킬을 배우기에 도움이 되는 것도 맞지만, 나는 전공생들도 이 곡을 통해 얻을 점이 많다고 본다. 참고로 3성 신포니아는 예중 기초실기 시험곡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나는 중학생이 되어서까지 인벤션을 배웠다. 앞서 말했지만 3성 이상의 다성부 작품은 아무리 배워도 부족하다. 중학생이 된 후의 나도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정말 쉽지 않다!


 나는 이 작품의 심미적 가치에 조금 더 주목하고 싶다. 인벤션은 간결하고 명확한 멜로디 주제가 특징이다. 곡의 구조 자체도 간결하다 보니 각 성부에서 주고받는 멜로디 주제들이 귀에 명확하게 들어온다. 또, 곡의 길이가 2분 이내여서 긴 클래식을 잘 못 듣는 사람도 편하게 들을 수 있다. 고전적인 클래식 작품을 가볍게 들어보고 싶다면, 인벤션 몇 곡 골라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내 기준 최고의 바흐 연주자, 글렌 굴드 Glenn Gould



하프시코드 Harpsichord


Tip to practice


 이 작품은 연주할 때 꼭 마스터해야 하는 기술이 하나 있다. 바로 논 레가토 Non legato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음을 부드럽게 잇는 레가토도 아니고, 음을 톡톡 띄는 스타카토도 아닌, 그 사이의 주법을 의미한다.

이 주법으로 연주하는 이유는 시대 차이 때문이다. 바흐가 이 곡을 작곡한 바로크 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모습의 피아노가 없었다. 하프시코드나 클라비코드가 그 시대의 건반악기였다.

이 악기들은 음과 음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무조건 챙. 챙. 챙. 챙. 하고 음마다 끊기게 들린다.  현대의 피아노로는 그런 음색을 구현해 내기가 힘들지만 논레가토 주법을 통해 그 뉘앙스를 되살려내는 것이다.


클라비코드 Clavichord


 논레가토를 완전히 마스터하기까지는 오랜 시행착오가 뒤따른다. 나도 이 주법을 처음 배울 때 항상 이런 상황이 반복됐다.


그렇게 똑똑 띄는 거 아니야. 스타카토처럼 들리면 안 돼.

그렇게 죽죽 늘어져 붙으면 안 돼. 띄어야 한다니까?


이 둘 사이의 마땅한 절충점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하프시코드와 클라비코드로  연주하는 인벤션



 오른손과 왼손을 서로 독립적으로 연주하기 어렵다면 각 손을 따로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것을 추천한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한 손 만으로도 능수능란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원래 속도로 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야 효과가 좋다.
 그리고 양손을 붙일 땐 느린 속도부터 시작하고, 각 성부마다 주제 멜로디가 시작하는 순간을 확실하게 살려서 연주하면 곡의 퀄리티가 더 높아진다.



J.s.Bach (1685-1750)







cover image : The Concert by Johannes Vermeer(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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