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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Jul 07. 2023

여유

50분 달리기 훈련프로그램을 완주했다.

걷는 것보다 조금만 더 나은 정도로만 아주 천천히 뛰니까 멀리 가진 못하지만, 그래도 6km 정도는 너끈히 뛴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에 1분을 버티는 것조차 몹시 숨이 차고 버거웠던 것에 비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다.


마의 구간은 언제나 3,4km 구간이다.

도저히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을 만큼 몸에 한계가 오는 것 같아서 시계를 보면, 어김없이 딱 그 구간이다.

다만 이제 경험으로 안다.

앞으로 300m, 혹 500m, 길어야 1km. 좀 더 버텨서 이 구간만 벗어나면 신기하게 살만해진다는 것.

그래서 어렵지 않게 남은 구간을 완주할 수 있다는 것.


-


한참 안식에 관한 메시지가 이어질 때에,

가족모임을 하면서 어머니께 각별히 당부했던 것은 이런 것이었다.


부디, 반드시, 에너지의 20-30%는 남겨두시라고.

체력이든, 인내심이든. 뭐든지 다 끝까지 써버리지 말고 잘 아껴두시라고.

평생을, 그리고 매사에 모든 걸 그렇게 다 짜내서 살아온 삶의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다른 방향의 노력을 하자고.

그렇게 에너지가 남아 있어야, 넉넉하게 곁의 사람들을 관용하고 사랑할 수 있다고.

이제 우리가 당신께 바라는 건 그 어떤 섬김도 수고도 아닌,

오직 그 너그럽고 여유로운 정서뿐이라고.


그 메시지는 으레 그러하듯, 거울처럼 튕겨서 다시 내게 떨어졌다.

너는 그렇게 살고 있으냐고.

그저 삶을 지탱하고 끝없는 일들을 해내기 위해 필요하니까,

스스로를 추스르고 충전할 수 있는 필요최소한도만을 채우면서 살고 있지 않냐고.

버티고 짜내어서 주는 것 말고, 여유롭게 흘러넘치는 것들이 과연 있느냐고.


-


그게 불과 석 달 전인데,

하나님은 말씀만 하셨을 뿐이고 내 삶은 바뀐 게 없는데,

여전히도 비슷한 삶의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것치곤 이상하리만큼 여유가 흘러넘친다.


바뀐 게 있다면, 아마도 언제든지 멈춤 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주님께서 내게 바라시는 것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이 지금 선택한 직업과 직장 때문에 구조적으로 부득이한 것이라면,

나는 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맞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구조를 다시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라도 바꿀 수 있고, 무엇이라도 멈출 수 있다.

당연한 것, 어쩔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직업적으로 성공하는 것, 원했던 경력과 자리. 그런 것들은 이미 내려놓은 지 오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일 때문에 다른 우선순위가 밀려야 할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이던가.

그럼에도 일을 잘 해내는 것보다, 오늘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눈 맞춤을 길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삶으로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비록 그것이 때가 되면 헛되이 흩어질 인연, 곧 잊힐 시간이라고 할지라도.


-


그래서 요즘은 내가 대단히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무언가를 하여야만 한다는 강박도 버리고,

그저 사랑과 정성을 담고, 관용과 환대를 보일 여유가 있으면 족하고, 그것으로 충만하다고 여긴다.

순간순간 가장 좋은 것을 택하고, 그것에 충실하면 되었다.

다른 여지들과 가능성들, 남겨진 일들과 걱정거리에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130%를 짜내듯 버티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은 여전히 있다.

그러나 안다. 이 날이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

버티는 것은 한 때이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버티면서 지내다 보면 금방 좋아진다는 것.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멈출 수도 있다.

애초에 내가 좋아서 시작한 뜀박질이었으므로, 더 나아가는 것도, 멈추는 것도 오로지 나의 선택이다.

그걸 아는 게 중요했다.


-


직업 상의 일들

주변과 맡겨진 영혼들을 섬기는 일

자신의 체력과 정서와 영성.

셋 중 하나는 무조건 펑크가 나게 되어 있다고.

둘은 어찌 어찌 챙기는데 셋은 아무리 애써도 무리라고.

그래서 펑크를 돌려막는 삶을 살고 있노라고.

쓸데없이 틀켜쥐고 있는 건 없는지, 덜어 볼 수 있는 일이 없나 찾아봐도 이상하게 오히려 책임은 더해져만 간다고.

그러므로 그저, 삶이 이러함을 수용하고, 능력 밖의 것들을 주께 맡기고, 이 속에서도 평안을 누리는 법을 훈련하고 있다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아마도 작년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때의 메시지와 훈련이, 지금은 지금 새로이 배워가야 할 것들이 따로 있는 것이겠지마는,

적어도 지금은,

셋을 구분 지음이 옳지 않다.

무언가를 펑크로 규정하는 일도 더는 안한다.

그저 매일 주어진 과업 중 무언가를 하고, 안하고, 더하고 덜고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영역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윤택하게 되어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 근본적인 구조를 흔들어야 한다면,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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