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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Aug 06. 2023

예고된 애도

어려서 나는 입이 퍽 무거운 편이었는데, 그것은 <혹시 내가 겪은 일들, 또는 내가 들은 이야기들이  사실이 아니라 그저 꿈이나 상상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혹시 이것을 남에게 말하고 다니면 나중에 거짓말쟁이라고 비난을 받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던 덕이다.

<경험이 뒤늦게 꿈이나 상상으로 밝혀지는 상황>에 대한 상상이야 말로 내가 가장 자주 했던 상상 중 하나이고, 그것이 나를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으로 성장시켰다.


사랑했던 이가 떠나는 일은 어떤 방식으로든 얼마나 준비가 되었든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겠지만, 당장 고인의 몸을 어디로 옮길지 결정하는 일로부터 장례절차에 수반된 현실적인 일거리들이 유족들의 정신을 낚아채 현실세계에 끌고 온다.


내게도 갑작스러운 부고는 당장 장례절차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의논해서 알려달라는 용건에 부착되어 통지되었다.

의식세계의 입구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이야기는 내버려 둔 채 몸을 움직여 당장 해야 할 일들을 한다. 미처 울지도 애통해하지 못한 채 그저 황당한 표정으로 허둥대고 있는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는 서로의 애도의 깊이를 가늠했다.


입 밖으로 소식을 내뱉자 눈물샘이 터졌지만 그 조차도 내 몸의 감각은 아닌 기분이었다. 슬프다고? 아니, 어리둥절 하기만 한 걸.


홀로 천장을 보고 누워 멍하니 이 모든 게 꿈이나 상상은 아닐까. 고작 전화 한 통을 받았을 뿐이다. 내가 착각을 해서 사고를 친 건 아닐까. 그 어린 날에 수도 없이 상상하며 두려워했던 것처럼. 내가 이 모든 해프닝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공연히 휴대전화 통화기록만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세계가 아주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누구인지 지금 무슨 상황인지 오늘이 며칠인지도 잊은 채 다만 쭈글쭈글하게 몸의 경계가 옅어져 가는 감각과 그에 상응하여 날카롭게 느껴지는 사물과 공간의 테두리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밤을 보냈다. 다른 세상 다른 차원에 떨어진 사람처럼.


눈을 뜨니 현실이다. 긴 하루가 될 테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지. 목구멍 뒤로 밥을 밀어넣는다.

부고를 전하고, 연락을 돌리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상의하고, 장례절차가 진행되는 모든 동안에도 모르는 사람의 장례를 지내고 있는 것처럼 너무나 현실감각이 없어서, 관이 닫히는 걸 눈으로 보는 순간조차도, 저기에 아이가 들어있다고? 아닌 것 같은데? 가짜 같은데? 아이를 <하나님 품으로 보내드린다>는 기도를 들으면서도, 보낸다고? 믿어지지가 않는데 뭘 보낸다는 것이지? 나는 보낼 게 없는데? 냉철한 의문뿐이었다.


내게 애도가 필요하다는 건 안다. 어떤 이들에게 나는 유족과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다.

그녀는 나의 첫 열매, 내 영적인 자식이었으므로.


가능한 많이 그 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 애가 내게 어떤 존재였고, 나는 그 애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마음껏 이야기를 하면서 슬픔을 흘려보내야 한다는 걸, 안다. 알지만,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정신만 남은 사람처럼, 소원한 먼 친척의 장례를 치르는 것처럼 사람들을 맞이했을 뿐이다.


아이의 빈소는 크고 넓은 VIP 객실을 지나 안쪽 작은 방에 마련되었다. 오가며 남의 빈소 앞에 빼곡히 들어선 화환들을  어쩔 수 없이 보아야만 하는 게 싫었다. 마치 그게 아이가 미처 갖지 못했던 삶의 가능성들인 처럼 느껴져서.


어떤 기도도 나오지 않았다. 말 그대로 할 말을 잃었으므로.

통곡하지 못했다. 그럴 기분조차 아니었다. 조용히 우는 진짜 유족들 앞에서 누가 감히 그럴 자격이 있었을까. 내게도 그런 자격은 없었다. 목구멍 아래로 눌러둔 울음. 소리 없는 통곡으로도 목이 다 쉬어버렸다.





상실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애도가 눈앞에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시작될 것인 줄을 진작에 알았다.

그것이 무척 더디고 긴 것이 될 것이란 것도.
불현듯 그 날카로운 현실감각이 살아나고 그리움이 덮쳐오는 순간들, 침대 위에서 혹 길 위에서. 시시때때로 나는 이 애도를 조금씩 쪼개어 삼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아침엔 기도를 했다.

주님 만약에 제가 지금, 믿어지지 않는다는 핑계에 숨어 이 아이를 주님께 보내어드리기를 거절하는 불순종을 저지르는 중이라면, 부디 돌이켜 회개하게 해 주세요.


여전히 납득은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하루 이틀새 아이가 있던 세상에서 없는 세상으로 이동할 수 있는지.

다만 앞으로 이 세계에 적응을 해 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했다.

여전히 실감하지 못하지만 그것은 아직 아이의 부재를 경험하지 못한 탓이다. 장례식 내내 그 애는 옆에 있는 것과 다름없었으므로.



자책하려는 순간마다 눈앞의 사람처럼 떠오르는 아이 얼굴. 별소릴 다 한다는 듯, 다 이해한다는 듯이 베시식 웃던 표정. 그래, 나는 그 애가 뭐라고 말할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뻔히 안다.


아이를 미워했던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끼길 바라는 못된 마음이 올라오면 또, 아무 원망 없이 순하기만 했던 그 애 얼굴이 떠올라서 관두고 만다.



여전히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음에, 그의 주권과 사랑을 신뢰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나는 몰랐지만, 실은 하나님이 남겨질 나를 위해 배려해 주셨던 순간들을 헤아린다.



그러므로 긴 애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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