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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Aug 14. 2023

바랐던 위로

위로를 원한다.

고난과 환란에 대한 것이라면 할 말이 적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이토록 노골적으로 위로를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세상이 죄다 내 위주로 돌아갔으면, 하는 유치한 바람 한줄기가 마음 한편에 있는 걸 발견한다.

그만큼 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졌다.


묵묵히 일했지만, 사실은 하루종일 아무나 붙잡고 죽은 아이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아무나 한마디라도 보태준다면 나는 뿌엥하고 울 준비가 되어있었다.



일은 몹시 느리게 굴러간다.

한 번에 한 가지의 선형적인 사고 밖에는 할 수 없는 탓이다.

그나마도 계속해서 다른 곳으로 새어나간다.


사람들의 감정이나 대화에 생기 있게 반응하지 못한다.

아주 느리게 최소한도의 미적지근한 답변이다.


한마디로 나는 아주 무능해졌다.

모든 것을 차분히, 아주 천천히, 한 가지씩 할 수밖에 없다.

이토록 무능해질 때면 나는 몹시 겸손해지고, 또 단순해진다.

내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 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음을 알고 있고, 그런 고로 걱정도 자책도 없다.



사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랑과 배려를 받고 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든든한 버팀목이다.

이들의 존재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깊은 안정감을 느낀다.


일주일간의 공백은 동료변호사님들이 각자 나누어 짐을 져주셨는데, 아무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안색을 살피던 대표님은 넌 일을 더 주면 죽을 것 같다며 또 다시 사건 배당을 미뤘다.


소식을 들어 알고 있는 친구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조심스럽게 안부를 물어온다.



오늘은 기분이 어땠냐는 질문을 <빨리 회복하라>는 압박으로 삐딱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저 걱정해 주는 것뿐이잖아.


혹시 이 슬픔이 계속된다면 이것을 마치 허락된 무기 삼아 휘두르고 있게 되지는 않을지

그래서 자기 연민의 늪으로 조금씩 빠져들어가게 되진 않을지 걱정도 한다.


하지만 나를 붙잡고 있는 기도의 손길들이 있는 한은 괜찮을 것도 같다.


<너의 상실을 이제는 하나님이 다른 위로와 축복으로 되돌려 주시기를 바란다>는 축복 앞에서 또 울었다.

오래 기다린 만큼 가득 채워진 것으로 올 것이라고.

당신이 그리 축복하며 기도하시니 그대로 되겠지요, 하고 잠잠히 화답했지만

쉽게 눈물이 멈추지 않기에, 그것이 나도 몰랐던 내 속의 깊은 갈망이었음을 깨닫는다.



2년 전 이맘때쯤 설교를 듣고 끄적여두었던 노트를 찾았다.


요셉이 꿈을 잊지 않았을 것인가. 잊었을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삶을 살아갔을 것이다.
요셉은 바로 지금 여기를 산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을.
어제와 오늘은 연결되지 않는다.
지금 내게 손 내미시는 하나님의 손을 잡으면 그만인 것.

미리 보여주고 걷게 하시지 않는다.
미리 교만하지도 미리 낙심하지도 않게 하시려고.

성도인 내가 할 일은 내 앞의 것들을 묻지 않는 것.
납득되지 않는 현실을 수용하며 살아가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으로.


...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으로.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살아가는 일에 제법 익숙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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