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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Sep 06. 2023

거짓말 게임

변호사로 일을 하면서 진짜로 괴로운 것은 사실 치열한 법리적인 다툼이나 증거 수집의 어려움이 아니다. 대체로는 소통의 문제이고 좀 더 좁혀서 말하자면 결국 거짓말의 문제다.


진실이란 몹시도 주관적이다. 나는 사람들이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안경으로 본 세상을 자기 생각으로 한번 더 걸전달하고 있는 것뿐이리라.


억울함 역시 주관적이다. 하지만 나는 변호사란 주관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객관적인 정의구현에 소명을 둔 적이 없다. 세상이 다 아니라고 말해도 마지막 딱 한 명, 편을 들어주는 사람, 그게 내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의 치명적인 문제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 곧이곧대로의 객관적인 진실 받아들이진 않지만, 주관적 측면의 진실성만큼은 지나치게 믿어 버린다는데 있다. 

그 사람의 입장, 겪은 일, 생각과 감정과 같은 것들. 그런 건 애초에 주관적인 거니까. 과장되거나 누락되었을 순 있어도, 이 사람 입장에선 진실할 것이라고...


그러나 사람들은 생각보다 정말로 많이,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 그런 걸 의심하지 않고 매번 곧이곧대로 다 믿는 것이야 말로 초짜 변호사다운 면모인 것이다.

공들여 세운 전략과 논리가 사실은 거짓말을 위해 세워진 집이란 사실을 알게 될 때 너무너무 괴롭다. 너무 멀리 와 버려서 돌이키지 못하고 그 뻔한 거짓말을 계속 유지시켜주어야 할 때는 참담하다.


그런데도 나는 당신 왜 내게 거짓말을 했느냐고 따져 묻지 못한다. 거짓을 진실로 믿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바로잡아 줄 수 있는 것이지만, 모든 걸 알면서도 작정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럴 땐 그냥 다 내 탓 같다.

좀 더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믿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 지경이 되기 전에 수습을 하도록 설득했어야 했는데.

내가 그의 거짓말을 강화시 잘못된 신념에 붙들리게 한 것이 아니던가. 그런 식으로 사람을 망쳐 버린 게 아닌가.

아니 애초에 의뢰인이 거짓말을  것도 그냥 내가 신뢰를 얻지 못한 탓 같다.


법원은 일할 때는 사람들의 말을 의심하는 게 아주 지긋지긋했다. 거짓말과 거짓말이 싸우는 와중에 무엇이 진짜인지 가리는 게 정말 괴로웠다. 아무리 애를 써도 진실은 언제나 가리어진 것으로 느껴졌고, 판단과 진실이 따로 논다고 느꼈다. 그런 막연함과 망망함이 싫어서, 나는 차라리 믿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주관적인 진실일지언정 진실 옆에 있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마음을 두었던 주관적 진실이란 애초에 실체가 없다. 허상을 붙들리어 거짓말에 휘둘리는 것이다.

어리석은 건 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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