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보내고 남은 후회는 오직 하나였다.
모질게 굴지 말 걸.
네가 그 불순종으로 인해 40년의 광야길을 돌게 된다고 한들,
그것이 너의 인격적인 선택이라면, 그조차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면,
내가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나는 이제 더 이상 인생들이 먼 길을 돌아가는 것에 대해 관여하지 않겠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때에 내 마음은 조금 모질었다.
그것이 너의 최선이었다는 걸 인정하고 격려하면서, 좀더 따뜻하게 대해 줄 걸.
네가 순종 안해서 이렇게 힘든 것이다는 식으로 책망하지 말 걸.
좀더 수용해주고 다정하게 굴 것을.
내가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울며 함께 걷는 일이 남아 있었다.
모질게 혼자 내버려두지 말았어야 했다.
그걸 마음껏 못해준 일이 이제 내겐 평생의 걸림일 것이다.
매정한 내게 여전히 다정했던 네 얼굴이 떠올라 자꾸 속이 상한다.
사랑하는 자는 늘 이긴다.
마지막에 더 사랑했던 건 내가 아니라 너였기 때문에,
결국 너는 그렇게 나를 몽땅 다 이겨먹고 가버렸다.
'모세에게 허락된 영광은 가나안이 아닌 40년의 광야였다' 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출애굽이 그의 영광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무나 제3자적인 시선이다.
모세의 입장에 서서 보면, 출애굽의 순간은 말 그대로 찰나였고,
살아내야 했던 건 그보다 훨씬 더 길고 긴 광야의 삶이었다.
그러나 광야가 그 자체로 영광일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광야는 그저 광야이고, 그냥 고난일 뿐이다.
모세의 영광은 광야 길을 함께한 백성들이었을 것이다.
광야는 백성을 위해 존재했고, 모세도 백성을 위해 존재했으므로
모세도 거기에 있었다.
나의 영광 역시 나의 양, 나의 영혼들일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있을 곳 역시, 광야든 가나안이든 그저 그들이 있는 곳이 되어야 할 테다.
그것을 내게 알게 하려,
너는 아주 잠깐 내 품에 안겼다가 영영 떠났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