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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크 Feb 22. 2024

남편 따라 미국에 온 지 100일, 인생 중간점검

게으른 미국 돼지 아줌마로 가는 길목에서 유턴

작년 초에 남편이 미국에 주재원으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을에 남편이 한 달 먼저 미국에 먼저 들어가고 난 이후, 한국에 남아서 전셋집 보증금부터 고양이 미국에 데려가는 문제, 직장 휴직 문제 등 이것저것 직면한 문제들을 정신없이 해결하던 게 벌써 100일 전이라니 시간 참 빠르다. 백 일이라는 시간 동안 미국에 와서 했던 고민과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기록하는 글.


미국에 들어가기 전 주변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마다 ‘미국 가면 앞으로 뭘 할 거냐’는 질문을 받았었는데, 사실 그때는 우선 미국 가고 나서 천천히 고민해 보면 되겠지 라는 마음가짐이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말을 하곤 했다. 2014년도부터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직장 생활을 해왔었기에 거의 10년 동안 열심히 일했으니까 한 두 달은 아무 고민 없이 쉬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휴직이 자유로운 직장이었어서 커리어가 끊긴다는 고민은 미국에 주재원으로 남편 따라서 들어오는 다른 사람들보다 덜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사실이 나를 더욱 나태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나중에 한국 가서 다시 일할 거니까 미국에 있는 동안은 즐겨도 되겠지’

‘인생 살면서 언제 미국에서 이렇게 살아보겠어’


이런 생각들을 자꾸 하다 보니 하루하루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쉬고 놀고먹는 시간만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몸도 둔해지고 진짜 이렇게 살다가는 곧 한심하고 게으른 미국 돼지 아줌마가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미국으로 오기 전에 ‘한 두 달은 그냥 아무 생각하지 않고 쉴 거야’라고 정해놨던 타임 라인도 어느새 끝나있었다. 2024년이 되었고, 그동안 미국에서 이룬 건 SSN 발급받고 미국 면허시험 대기만 걸어둔 것뿐이었다. 체중은 당연히 늘어난 상태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한국 드라마 몰아보기에 써 버리고, 집에 있는 고양이처럼 누워있기 바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남편 점심 도시락이랑 저녁밥을 매일 챙기는 건 내 직업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소홀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아이가 있고 육아를 하는 중이었으면 갑자기 자아를 찾는 이러한 인생 고민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의미 있고 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나는 챙겨야 할 아이도 없고, 키우는 반려동물도 매일 산책을 시켜야 하는 강아지가 아닌 비교적 손이 덜 가는 고양이였기 때문에 내가 미국에 와서 꼭 해야 하는 일은 집안 살림과 요리뿐이었다. 자유 시간이 너무 많이 생기다 보니까 고민도 늘어갔다. 원래는 하루하루 살기에 바빴던 직장인이었고 그땐 그냥 시간이 생기면 누워서 쉬고 싶었으니까 고민할 시간도 여유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매일 누워서 쉬고 있다 보니 고민을 저절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한국 가서 다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넘쳐흐르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한 달 전, 꼼지락거리면서 겨우 유튜브 채널 하나를 만들었다. 미국 가서 정 심심하면 유튜브나 해봐야지 했던 그 말대로, 진짜 심심해지니까 어느새 채널명을 고심해서 정하고 유튜브 채널아트를 만들고 있었다. 말로만 뭐라도 해야 할 텐데 하던 내가 ‘유튜브 채널 개설’이라는 작은 행동을 하기까지 거의 두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누가 보기엔 꽤 빨리 혹은 너무 늦게 뭔가를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시간인 두 달.


예전부터 나는 엄청난 합리주의자였다. 실패할 것을 대비해서 나만의 합리적인 핑곗거리를 미리 만들어두고, 잘못되더라도 괜찮다며 나 자신을 매우 잘 위로한다.


이 유튜브 채널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갓 시작한 유튜브는 아직 어디 가서 유튜브 한다고 말하기엔 부끄러울 정도로 성적이랄 것이 없다. 미국에서의 생활을 기록해 두자라는 취지로 시작했지만, 사실 모든 유튜버들이 그렇듯 구독자 수도 많아졌으면 좋겠고 수익도 창출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실패해도 괜찮다. 왜냐면 미국에서의 나의 모습을 기억하고 추억하기에는 충분하니까.


역시나 벌써부터 유튜브 채널이 성장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는 나만의 핑곗거리를 그럴싸하게 만들어두고 시작을 하고 있는 나.

망해도 괜찮긴 뭐가 괜찮아.


‘하루에 3-4시간씩 투자한 시간이 아깝지. 차라리 쭉 아무 근심걱정 없이 쉬고 노는 게 더 나았겠지.

솔직히 추억 기록은 그냥 영상만 찍어두는 걸로도 충분하잖아.

편집하느라 뭐 하러 그렇게 시간을 들이고 고생을 하겠어, 안 그래?‘


한국에 가서 다시 돌아갈 직장도 있고, 미국 생활 기록이라는 그럴싸한 핑계까지 있으니 전업으로 유튜브를 하는 사람들보다 성공에 대한 절실함이 클 수가 없다.


다시 고민의 원점으로 돌아왔다.

내가 미국에 와서 유튜브 채널을 키우는 데 전념하는 게 과연 맞는 방향일까?

아니면 차라리 영상 찍고 편집하는 그 시간에 확실한 이직이나 취업을 위해 공부하고 준비하는 것이 더 현명할까?

아니면 정말 미국에서 원 없이 놀아보고 탱자탱자한 삶을 사는 게 더 현명할까?




100일이 지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살아오면서 깨달은 게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시작하고 도전해 보는 것이 확률적으로 인생에서 훨씬 나은 방향이 맞다. 그래서 그냥 원 없이 쉬고 놀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만든 이 작고 소중한 유튜브 채널에 벌써 구독자가 33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칼을 뽑았으면 뭐라도 썰어보고 나서 다시 넣는 게 맞다. 한국에 계속 있었으면 유튜브는 아마 시도조차 못했을 것이다. 블로그 하나도 겨우 했는데 유튜브를 감히 시작할 엄두조차 안 났다. 블로그도 처음에 시작했을 땐 진짜 조회수도 없고 할 맛이 잘 안 났다. 그래도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서 꽤 방문자 수도 늘고 포스팅도 쌓여가면서 성취감이 생겼다.

지금 시작한 지 한 달 된 유튜브도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지금보다는 훨씬 성장해 있을 것이라고 믿고 그냥 묵묵하게 꾸준히 해나가야 하겠지. 시간 들여서 열심히 영상 만들었는데도 봐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면 기운 빠지고 속상할 것 같지만, 그래도 지금은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최악의 경우를 상상했을 때 고작 시간과 노력만 들여서 나만의 프라이빗한 미국생활 영상 포트폴리오를 멋지게 만들어서 한국에 돌아가는 것. 그뿐이다. 나중에 한국에서 미국 생활이 그리울 때 가끔씩 찾아보는 클라우드로서의 유튜브가 되겠지.


생각보다 최악의 경우가 괜찮아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꾸준히 영상을 편집한다. 아직도 이 방향이 맞는지는 모르겠고 헤매는 중이지만, 현재로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괜찮은 길이라는 생각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보는 수밖에.


미국에 온 지 200일이 되는 그날, 100일 째인 지금을 돌아보면서 부끄럽지 않았고, 옳은 방향이니 계속 가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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