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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음의 미학

예쁜데 쓸모없다니, 예쁜 게 바로 쓸모다! - 하현정

 디자인은 무엇인가? 나는 디자인에 발을 들인 이후에도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 시간이 적다. 물론 발을 들였다 하기에 부끄럽게 이번 년도부터 디자인 수업을 듣고 동아리 활동을 하며 ‘작업’이라고 불리는 것을 겨우 시도해 본 단계이다. 급하게 시작한 만큼 디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거나 곰곰이 생각해 보기 전에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부터 해야 했기 때문에, 한 학기가 지나고 나서야 디자인에 대해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나에 대한 소개를 간략히 해보자면, 입학 후 3년 동안 커뮤니케이션 학도로 살며 대부분 사회과학 공부를 했고 미학과나 국어국문학과의 예술 관련된 교양은 깨나 들었지만 수업에서 디자인의 ‘ㄷ’ 자에도 가까이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갑자기 디자인을? 모두가 갑작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는 배경이지만 사실 나에게는 전혀 갑작스럽지 않았다. 대부분의 미대생들이 겪는 일반적인 과정-어릴 때 그림을 잘 그리고 좋아해 진로까지 정하게 되다-을 나도 겪다가, “그냥 취미로 하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현실과 타협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 진학 후에도 전혀 사랑할만한 것이 나타나지 않았고 이번년도 초에 처음으로 내 마음을 뛰게 한 것이 디자인이었다.

 디자인이 내 가슴을 뛰게 만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부끄럽지만 난 그냥 눈에 보기에 예쁜 것을 정말 좋아한다. 비전공자의 눈에 디자인은 막연히 ‘예쁜 것’이었다. 못생긴 게 너무 싫어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예쁘게 깎아내는 일이었다(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디자인에는 그 이상의 힘이 있다는 것을 배우면서 깨달았다. ‘디자인이 무엇인가?’라고 던졌던 앞의 질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간단하게 ‘문제 해결’이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아주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내 눈에는, 명료한 문제가 없어도 디자인은 어디에나 있고 항상 발생한다. 그렇다고 디자인이 예술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내가 규정하기에는 너무 모호한 문제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면, 3년 동안 스며들어버린 언론정보학적 시각으로 접근해 보았을 때 디자인은 커뮤니케이션 과정과 아주 닮아있다는 것이다. 물론 디자인이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 디자인에서 소통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소위 ‘널리고 널린 말’이다. 그러나 디자인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과 닮았는지 비전공자의 시선에서, 나름 분석적으로 생각해보려 한다.


언론정보학과에서 질리도록 배우는 커뮤니케이션 이론 중 하나인 ‘SMCRE’ 모델을 소개하겠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Source(송신자), Message(메시지), Channel(매체), Receiver(수신자), Effect(효과)의 선형적 모델로 도식화한 것이다. 


Source: 송신자는 정보의 발원지,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수신자는 메시지를 만들 때 ‘Encoding’의 과정을 거친다. 인코딩은 전하고자 하는 형이상적인 정보 혹은 의미를 ‘상징’으로 바꾸는 것이다. 상징은 일상적인 대화 상황처럼 언어가 될 수도 있고, 그림이나 사진, 혹은 영상이 될 수도 있다. 디자인에서는 디자이너가 수신자이고 어떤 형태로 상징을 만들 것인지 선택하고 디자인하는 과정이 인코딩이 된다.


Message: 메시지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선택된 상징으로 실제 상징화된 결과물, 즉 컨텐츠이다. 예를 들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은 ‘문자 언어’라는 상징으로 만들어진 메시지이다. 비언어적 메시지도 당연히 컨텐츠가 될 수 있다. 일상생활 대화의 80%는 비언어적 의사소통으로 이루어진다. 디자인 결과물도 그 자체로 메시지이다. 포스터 한 장을 예로 들어보면, 문자 언어 그 자체, 선택된 폰트의 종류와 크기, 이미지의 색상과 질감 등 모든 것이 복합적인 메시지가 된다.


Channel(Medium): 채널은 ‘Medium’이라고도 부르는데, 흔히 말하는 ‘미디어’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매체이다. 이는 송신자와 수신자를 연결해 주는 모든 것으로, 대화를 할 때는 음파, 신문에서는 종이가 되고, 디지털 환경의 전파뿐만 아니라 SNS, 텔레비전, 영화, 광고 등 광범위한 매개체들을 포함한다. 사실 디자인을 배우면서 가장 놀란 부분은 디자이너들이 생각보다 채널을 아주 많이 신경쓴다는 것이다. 포스터 한 장을 만들 때도 이것이 인터넷에 게시될 것인지 인쇄할 것인지, 모바일 최적화인지 웹 최적화인지, 인쇄한다면 종이인지 천인지, 용지의 재질과 무게와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를 치밀하게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Receiver: 수신자는 메시지의 타겟, 즉 소스가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수신자는 인코딩된 메시지를 ‘Decoding’하는 과정을 거쳐 다시 상징을 의미로 바꾸어 해석한다. 이 때, 수신자의 해석은 송신자가 의도한 바와 달라질 수 있다. 디자이너가 숲의 초록색을 연상하고 포스터에 집어넣었다면 수신자는 이를 칠판의 초록색으로 연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재해석 과정에서의 전달 오류는 ‘노이즈’ 때문에 발생한다. 노이즈는 의미의 불확실성, 중복, 외부 잡음, 송신자와 수신자의 견해 차이나 편견 등 모든 방해 요소를 뜻한다.


Effect(Feedback): 효과 또는 피드백은 수신자의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행동하는지와 같은 반응으로, 송신자가 의도가 포함될 수 있다. 아무 반응이 없는 것 또한 피드백의 일환이다. 이 디자인을 보고 무엇을 느꼈으면 좋겠는가? 깔끔한 정보인가 아름다움인가? 편안함인가 불편함인가? 트렌디함인가 고상함인가? 수신자가 의도한 바를 느꼈다면 전달에 성공한 디자인일 것이다.


Context: 이 모델 전체를 ‘맥락’이 감싸고 있다. 같은 말이라도 수업 중 교수님께 하는지 밥 먹으면서 친구에게 하는지에 따라 다른 파장이 일어난다. 디자인도, 내가 지금 지하철 노선도를 만드는지 아이돌 앨범 커버를 만드는지에 따라 전달할 가치가 달라진다.


 위 모델에 입각하면 디자인은 아주 섬세하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좋은 디자인과 실패한 디자인은 송신자가 메시지, 채널, 수신자를 얼마나 고려하고 어떻게 어우러지게 배치했는지, 그에 따른 적절한 효과가 발생했는지에 따라 분석해 볼 수 있다.


https://factcheckkorea.afp.com/doc.afp.com.33RQ8RV

 위 지도는 실패한 디자인의 예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왼쪽 이미지가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영향으로 방사능 물질 배출 경로를 시각화한 지도라고 퍼져나갔다. 그러나 사실 지진의 여파로 발생한 쓰나미의 최대 높이를 기록한 지도였다. 오른쪽 옆에 ‘cm’라는 단위까지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는데도 사람들이 이 디자인을 오해한 이유가 무엇일까? 송신자가 인코딩 과정에서 수신자가 상징을 어떻게 디코딩할지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통 위와 같은 색을 사용하는 데이터는 온도이다. 비공간적 차원인 온도, 밀도, 높이는 색으로 표현되기 쉽다. 그러나 높이, 길이, 넓이와 같은 공간적 차원을 굳이 비공간적 표현인 색으로 표현하면 우리는 설명을 읽기 전 시각이미지를 밀도나 농도와 연관시켜 버리는 과정이 생긴다. 또한 후쿠시마에서부터 퍼져나가는 흐름의 모양은 더욱 방사능 물질 배출을 연상시킨다. 이와 같이 극단적인 예시가 아니더라도 디자인을 이용한 커뮤니케이션은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깔끔하고 접근성 좋은 느낌을 추구하는 브랜드가 Helvetica가 아닌 Didot 타입을 사용한다면 메시지 전달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가 명확한 정보 전달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고, 모든 디자인 원리가 약속한 듯 정해져 있다면 애초에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없었을 것이다. 디자인은 커뮤니케이션 과정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소통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인코딩과 디코딩 과정을 거친다. 흥미로운 지점은, 디자인 자체가 의미를 재해석(de+sign)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내가 한 번 재해석한 기호를 수신자가 다시 재해석해도 의도가 명확하게 전달되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어떨 때는 트렌드를 앞서 나가는 디자인보다 익숙한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더 선호되기도 한다. 그래도 사람들이 여전히 새로운 것, 감각적인 것을 좇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만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심미적인 것은 확실히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게 가장 좋은 디자인이라고 말하지만, 실용성을 포기하고 두툼하고 딱딱한 핸드폰 케이스를 사는 이들이 널린 세상이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디자인을 보고 ‘좋은 느낌’을 받는 이유는 분명 화자가 수십 시간 또는 그 이상의 고민을 거쳐 의미를 상징과 메시지로 바꾸고 채널을 결정하고 결과물을 빚고 빚어서 최적의 상태로 커뮤니케이션했기 때문일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은 비단 대화나 홍보 등의 목적이 있는 상황뿐만 아니라 넓은 범위의 교류를 모두 포함한다. 내가 옆 자리 사람과 우연히 눈을 마주치고 서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리는 것도 소통이고, 가족과 싸워 밥 안 먹겠다 1인 시위를 하는 것도 소통이고, 상대가 올린 총구에 꽃을 꽂아 넣는 행위도 소통이다. 그중에서도 보통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미묘하고 섬세한 차이-가령 자간 1pt나 색상코드 한 글자-를 이용해서 편안함이나 어떤 ‘좋은 느낌’을 주는 디자인은 아주 고차원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래서 나는 디자인의 ‘쓸모’에 대해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얼마나 많은 쓸모없는 대화를 나눴는가? 그것은 분명 우리 사이를 돈독하게 해 준 아름다운 커뮤니케이션이었다. 꼭 매끈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이 아니더라도 내가 수신자에게 정확하게 의도한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면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한 디자인이다. 아름다운 디자인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에도 기여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가치 있는 일인가. 그러니까 분명히 신선한 디자인이 등장해야 할 맥락에서 “예쁜데 쓸모없다!”라고 비판하는 이들에게, 이 것은 당신이 예쁘다고 느낀 것만으로도 쓸모를 증명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디자인을 예뻐서 사랑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그게 틀린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 많이 더 당당하게 사랑하라고 전하면서 글을 맺는다.



서울대학교 디자인 연합(SNUSDY) 인스타그램 | @snu_sdy.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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