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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에 좋은 미역, 미국에선 파스타로 먹는다고?

미역 프로틴바, 미역 브라우니까지? 


인어공주 영화의 미역 파스타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쫄깃쫄깃 탱글탱글해 보이는 파스타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장면은, 어린 나의 마음에 엄청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혹시 저런 음식이 실제로 존재하는 건 아닐까, 대체 어떤 맛일까 몹시 궁금했다. 


출처: https://www.tiktok.com/@the_mermaid_library/video/7231584682515664133


하지만 미국 유학 중 깨닫게 된 사실은, 바로 미국인들은 미역을 거의 절대 먹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역을 비롯한 해조류를 먹는 유일한 경우는 일식집에서 김을 사용한 롤이나 미소국에 있는 미역이다. 


실리콘 벨리와 스탠포드 지역의 경우에는 포케가 확 뜨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 때 새콤달콤하게 무친 미역줄기무침이 덩달아 약간 같이 팔리는 정도였다. 이마저도 실리콘 벨리는 아시안의 비율이 높기 때문이고, 미국 중부나 남부의 소도시에는 미역 섭취가 전무할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미역 생산은 99.9%가 아시아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출처: https://www.pressurecookrecipes.com/california-roll/

미역의 영어이름 Seaweed를 살펴보면 바다를 뜻하는 sea와 잡초를 뜻하는 weed로 이루어져 있다. 한 마디로 도무지 먹을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나는 캘리포니아롤이 누드김밥인 이유가 미국인들이 검은색 김을 보기 싫어해서 김과 밥을 뒤집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미역을 먹지 않는 미국인들인데도, 스탠포드 학교 식당에 떡하니 미역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역 페스토 파스타 

스탠포드 학교 식당은 미래 세대의 주역이 될 학생들에게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하고 윤리적인 음식을 제공함으로서 기후변화에 긍정적으로 대응하자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좋은 케이스를 만들었을 시 미국 내 다른 학교들에게 사례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잘 갖추어져 있다. 


미역이 건강에 좋은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 이 미역의 지구 환경적인 측면이 서부권에서 각광받고 있다.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해야하는 이 시기에, 미역 농장과 미역 숲이 탄소를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이 점점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북유럽권에서는 이러한 좋은 식재료를 서양식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이미 많이 진행되었다. 


이에 발맞추어 스탠포드에서도 학생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미역을 소개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우리 연구실과 스탠포드 교내 셰프들이 협업하여 8가지의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였다. 



메뉴는 다음과 같다:


사워도우와 미역 버터 

돼지감자 벨루떼 (소스의 일종)과 톳 절임 샐러드 

김 오믈렛 (계란말이와 비슷)

덜스 (붉은해초) 아란치니와 로메스코 소스 

케일, 미역, 퀴노아 샐러드

맑은 다시마 수프를 곁들인 조개와 홍합 리조또  

미역 페스토와 버섯 라디아토레 ( 파스타 

미역 아보카도 브라우니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아란치니, 페스토 파스타, 미역 오믈렛, 미역 버터, 미역 샐러드 


원래도 미역국을 좋아하고 불과 얼마 전 산후조리 때 미역국을 산더미처럼 퍼먹던 나의 입맛에는 하나같이 너무 맛있었다. 특히나 덜스라는 이름의 붉은 해초를 넣은 아란치니 (이태리식 튀긴 주먹밥)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란치니에 사용된 소스는 로메스코라는 소스로, 파프리카가 주 성분으로 들어가 감칠맛이 풍부하고 주로 해산물에 곁들여 먹는다. (간단한 레시피 참고: https://blog.naver.com/marketkurly/220379879750

감칠맛 나면서도 산뜻한 로메스코 소스, 겉은 바삭하면서 속은 찐득한 아란치니를 한입에 넣어 먹어 보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덜스라는 해조류는 김은 아니지만 내게는 같은 맛이 났는데, 대체 파프리카 소스랑 김을 같이 먹는 생각을 어떤 한국인이 할 수 있을까? 미역이라는 음식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는 양식 셰프들이기 때문에 낼 수 있는 아이디어였다. 


미역 파스타의 경우에도 미역을 페스토 형태로 갈아서 파스타에 곁들이니, 갓 뽑아서 말랑말랑한 생면에 고소한 감칠맛이 확 도는 게 정말 포크질을 멈출 수 없었다. 입 짧고 되도록 모든 새로운 음식을 거부하는 나의 남편까지 인정한 정말 맛있는 메뉴였다. 


그럼 미국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여기에 나온 모든 음식들이 다 실제 다이닝 홀에서 제공되진 않았지만, 다이닝 홀에서 제공된 미역 페스토 파스타와 샐러드, 그리고 브라우니는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여러 측면의 관능평가에서 4/5 정도의 평가를 받았다. 맛도 맛이거니와 음식의 환경적 영향을 중요시하는 Z세대 친구들에게 미역의 지속 가능성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식에 있어서 '익숙한 새로움 familiar novelty'를 추구한다. 나에게 너무 불편하고 혁신적이지는 않으면서, 또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경험을 하길 원한다. 한국에 끊임없이 쌀국수, 마라탕 등 타 나라의 음식들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어 들어오는 이유이다. 


아무리 미역이 좋다 해도, 하루아침에 미국인들이 미역을 먹을 리는 만무하다. 같은 재료를 새로운 방식으로, 같은 조리 방식에 새로운 메뉴를 도입함으로서 익숙한 새로움을 제공할 수 있다. 


절인 톳 샐러드


한국인들은 이미 미역을 많이 먹는다. 하지만 늘 먹던 미역국, 미역무침 말고도 새로운 방식으로 미역을 접근해 보는 건 어떨까? 비슷한 예로 한국에서는 늘 가지가 차별대우 받던 야채였다. 늘 흐물흐물한 가지나물의 형태로 소비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중식을 통해 어향가지의 매력에 빠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새로운 질감, 새로운 경험에 대한 고민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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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며 


- 북유럽과 스탠포드에서는 미역의 지속 가능성 측면에 주목한다. 

- 미역을 양식 식단에 도입하려는 노력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 사람은 음식에 있어 늘 익숙한 가운데 새로움을 추구한다 

- 미역, 김, 톳 등 우리에게 익숙한 해조류를 새롭게 디자인해 볼 때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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