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디자인 씽킹의 발단과 발전, 육하원칙으로 정리하였다
본 시리즈의 전편에서 디자인 씽킹은 그저 물건을 예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며, 또 가만히 앉아서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디자인 씽킹은 대체 무엇일까? 테크 기업 등 다양한 기관에서 독자적인 디자인 씽킹을 발전시켰지만, 본서에서 다루는 디자인 씽킹은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지난 60년에 걸쳐 연구된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내 박사 연구에도 많은 도움을 준 스탠포드 디자인연구센터 Stanford Center for Design Research 선임연구원(Executive Director) 얀 오어하머의 논문을 많이 참고하였다.
현재의 디자인 씽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디자인 씽킹의 발단을 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잠시 시간을 돌려 디자인 씽킹이 처음 만들어졌던 1950년대로 가 보자. MIT에서 제품 디자인에 관한 강의를 하다 1957년 스탠포드에 부임한 존 아놀드 교수는 고집어린 눈매에 시원히 뻗은 콧대를 가진, 당시로서는 매우 특이한 공학가였다. 공대 교수인데도 자꾸 심리학자 그리고 디자이너들과 어울렸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https://engineering.stanford.edu/people/john-arnold)
이 흥미로운 그룹은 함께 모여 어떻게 하면 스탠포드의 명석한 학생들을 세계적인 문제와 사람들의 니즈를 해결하는 제품을 만드는 디자이너로 교육할 수 있을지 열렬히 고민했다. 이 그룹에는 우리에게 ‘욕구 피라미드’로 잘 알려진 아브라함 매슬로우도 있었는데, 매슬로우와 같은 심리학자들은 제품을 디자인하는데 있어서 사람의 가치와 니즈를 파악하는 것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한편 아놀드는 이렇게 파악된 니즈를 어떻게 하면 기존에 없었던 창의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먼저 창의성을 제한하는 장애물로는 우리의 환경과 거기에 순응하고 싶어하는 관성을 뽑았다. 따라서 이 관성을 없앨 수 있는 일련의 액티비티를 고안했다. 당시 아놀드의 저서에 나온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명확하되 최대한 일반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문제를 정의한다. 두 번째, 이 문제 분야에 있어서 최대한 많은 데이터와 정보를 수집한다. 셋째, 이 정보를 분석하여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또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제한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알아낸다. 넷째,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해결책을 생각한다 (체크리스트, 제품 특징 리스트, 브레인스토핑, 그외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테크닉을 사용해서). 다섯째, 이 아이디어들을 평가하여, 디테일하게 연구해볼 만한 가장 좋은 아이디어를 선정한다. 여섯째, 이 아이디어를 더 연구해보고, 이 과정에서 나온 정보들을 통합하고 검증한다.
이 내용은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큰 변화 없이 디자인 씽킹의 틀로 자리잡고 있다. 1990년대 데이빗 캘리라는 스탠포드 교수님이 다른 디자이너들과 함께 IDEO라는 디자인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였는데, 이 회사가 당시의 디자인 어워드들을 싹쓸이하면서 디자인 씽킹은 점차 유명해져 갔다. 이 때부터 스탠포드 본교에서는 데이빗 캘리와 래리 라이퍼 교수님이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하면서 디자인 씽킹 교육 방법론도 정립되어 갔으며, 디자인 씽킹 이론들을 검증하는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면서 과학적인 뒷받침도 탄탄해져 갔다. 결정적으로 2005년, SAP라는 세일즈 분석 플랫폼의 설립자 하소 플래트너가 스탠포드에 큰 규모의 펀딩을 제공하면서, 디자인 씽킹을 전문적으로 그리고 독자적으로 가르치는 디스쿨 d.school이 설립되게 되었다. 이후 수많은 기업의 혁신 방법론으로 적용되면서 디자인 씽킹은 지금의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IDEO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러한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아직까지 학계에서도 디자인 씽킹의 정의에 대한 완벽한 협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큰 틀에 있어서는 모두가 동의한다. 디자인 씽킹은 흔히 여러 단계의 엑티비티를 통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이른바 ‘혁신 방법론’으로 생각되어진다. 유저의 니즈를 파악하고, 니즈를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내고, 아이디어를 실제로 프로토타이핑하는 등이 대표적인 엑티비티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론적인 접근은 디자인 씽킹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으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디자인 씽킹을 매뉴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디자인 씽킹은 아래의 두 가지가 첨예하게 맞물려 조화를 이루고 있다.
1. 사고방식
디자인 씽킹 자체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고방식 혹은 문화에 가깝다. 기존의 제품 개발 방식은 회사 내 리더가 아이디어를 내고 타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디벨롭하는 탑-다운 방식의 문화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인 씽킹은 기존의 탑 다운 방식을 지양하고, 소비자에게 집중하는 인간 중심적인 제품 기획 사고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2. 본 사고방식을 가능하게 하는 일련의 행위 및 훈련과정
한편 디자인 씽킹이 이렇게 사회적으로 많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무형의 사고방식이 일련의 엑티비티들을 통해 훈련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탠포드의 디자인 연구자들은 공감과 창의성이라는 모호했던 영역을 단계적 훈련의 영역으로 재정의했을 뿐 아니라, 수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어떤 엑티비티가 가장 이를 훈련하는 데 적절한지 탐구해 왔다. 이로써 누구든지 훈련을 통해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고 창의적인 솔루션을 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한 마디로 말하면, 디자인 씽킹이란 사용자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무형의 사고방식이자 또 그 사고방식과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하는 유형의 과정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과정들은 어느 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생각해 낸 기막힌 방법이 아니라, 몇십년에 걸쳐 사례와 연구를 기반으로 정립되어 온 이론에 바탕한다. 아래에는 더 나아가서 현재 디자인 씽킹을 배우고자 하는 여러분이 궁금해 할 만한 내용들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였다.
WHY
왜 우리는 지금 디자인 씽킹 해야 하는가?
예전에는 디자인 씽킹 같은 것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것이다. 왜 그럴까? 음식 업계를 예로 들겠다. 미국 거대 식품회사들의 신제품 개발론을 수십년에 걸쳐 연구한 모스코비츠Moskowitz라는 연구가가 있다. 그의 주장은 이러하다. 미국의 전후세대, 1950년대 식품 회사들이 신제품을 개발할 때는 디자인 씽킹 같은 것은 필요가 없었다. 일단 음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필요한 영양을 충분히 대중들에게 공급하는 것이 일순위였다. 영양의 문제가 해결된 1980, 90년대에서는 그저 맛있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건강은 차순위였고 그저 더 맛있고 중독적인 제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맛있게 만드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자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는 마케팅이 중요해졌다. 지금은 어떤가? 입에 달라붙는 맛있는 음식은 널리고 널렸다. 지금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윤리적인 음식, 다양한음식, 새로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음식이다. 소비자의 니즈는 첨예해졌고, 이 니즈를 읽어낼 수 있는 기술과 그 니즈를 제품으로 구현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디자인 씽킹은 바로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WHO
누가 디자인 씽킹을 할 수 있는가?
누구든지 디자인 씽킹을 할 수 있다. 나도 할 수 있었고 당신도 할 수 있다.
누구든지 디자인 씽킹을 할 수 있다.
WHEN
언제 디자인 씽킹을 적용할 수 있는가?
기업과 비즈니스 측면에서 보면 디자인 씽킹은 신제품을 개발하는 초기 단계에 적합하다. 아직 신제품에 대한 정확한 방향이 정해지기 전, 소비자의 니즈에 대한 오만한 편견 없이 시작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개인의 측면에서 보면 디자인 씽킹은 삶의 모든 부분에 적용할 수 있다. 실제로 스탠포드 디스쿨에서는 네고 디자인 (Negotiation by design), 법률 디자인 (참고: The Legal Design Lab), 인생과 직업 디자인 (Stanford Life Design Lab)부터 시작해서 일상의 많은 부분들에 디자인 씽킹을 적용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가사 도우미 분에게 한 소리 하기 전에 먼저 그 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 급한 미팅에 들어가기 전 간단하게라도 종이에 아이디어를 도식화하여 가는 것 등 일상의 작은 부분에서도 디자인 씽킹 능력을 발휘해 볼 수 있다.
WHERE
어디서 디자인 씽킹을 할 수 있는가?
뒤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공감은 언제나 모니터 앞이 아닌 밖에서, 실제 사용자가 있는 장소에서 시작해야 한다. 문제를 정의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은 어디에서 하든 상관없다. 특히 많은 아이디어를 낼 때는 다양한 장소에서, 기존에 가지 않았던 장소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장소도 특별히 정해진 것은 없지만, 저렴하면서도 가변적인 문구용품이나 소품이 있으면 좀 더 수월한 프로토타이핑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직 아이디어 단계라면 어디에서든 사용자 테스트를 할 수 있겠지만, 디자인 씽킹 사이클이 진행됨에 따라 사용자들이 실제로 그 제품을 이용할 장소에서 테스트하는 것이 꼭 필요하겠다.
WHAT
무엇을 디자인 씽킹할 수 있는가?
앞서 말했다시피 디자인 씽킹이 많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신제품 개발이다. 스탠포드 기계과에서 정립된 개념인 만큼 초반에는 유형의 제품 혹은 하드웨어 디자인에 대한 포커스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디자인 씽킹이 널리 알려짐에 따라 요즘 다양한 무형의 것들 역시 디자인되고 있다. 인생을 디자인해주는 Stanford Life Design Lab 을 예로 들어보겠다. 필자의 학부 전공 어드바이저 빌 버넷 Bill Burnett이 불과 몇 년 전 만든 이 기관은 수많은 사람들이 정말 자기가 원하는 일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고 또 함께 연구하는 곳이다. 이 접근이 얼마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지, 빌 버넷이 집필한 ‘인생을 디자인하라' Design Your Life 는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빌이 재해석한 디자인 씽킹 방법론을 사용하여 스탠포드 학부생들은 이리 저리 끌려다니고 과제에 치이는 생활이 아니라, 본인의 니즈에 대한 깊은 고찰을 통해 디자인된 학부 생활을 해보려 노력한다 (참고: Designing Your Stanford). 이 연구실에서 만든 다양한 수업 중 나는 Designing the Professional 이라는, 나의 직업 인생 향후 5년에 대해 고민해보는 수업을 들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무엇이든지 디자인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무엇이든지 디자인할 수 있다.
HOW
어떻게 디자인 씽킹할 수 있는가?
디자인 씽킹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디자인 씽커를 옆에 두는 것이다. 완성형 디자인 씽커를 찾기 어렵다면, 각각의 5단계를 개별적으로 잘 하는 사람을 찾아보라. 사용자의 니즈를 기막히게 잘 찾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자신의 의견을 늘 간단한 프로토타입을 통해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사람이 있는가? 의견이 있으면 바로바로 주변인들에게 물어보고 테스트해보는 사람이 있는가? 그런 사람들을 곁에 두고 열심히 배우면 내가 바로 완성형 디자인 씽커가 될 수 있다.
두 번째로 좋은 방법은 디자인 씽킹 워크샵에 참여하는 것이다. 매뉴얼을 따라하는 공장식 디자인 씽킹 워크샵이 아니라, 정말 디자인 씽킹을 해본 사람이 강의하는 워크샵에 참여하여 하루든 일주일이든 한달이든 디자인 씽킹 과정을 한 바퀴 수행해 보면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이 두 과정과 함께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 디자인 씽킹에 대한 이론이다. 따라서 다음 장에서는 스탠포드에서 잘 정립된 5가지 단계에 대해 좀 더 깊이 설명해 보겠다. 스탠포드에서 정립된 5가지 단계는 다음과 같다: ‘공감’, ‘정의’, ‘아이디어’, ‘프로토타입’, ‘테스트.’ 디자인 씽킹이 언어라면, 스탠포드에서 가르치는 5가지 단계는 문법과 같다. 문법을 지켜 대화하면 어느 주제에 관해서든지 자유롭게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문법을 안다고 그 언어를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설명할 5단계를 잘 숙지하되 이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나의 삶에서 이것을 적용하여 자유자재로 디자인 씽킹 언어를 구사해 보자.
디자인 씽킹이 언어라면, 스탠포드에서 가르치는 5가지 단계는 문법과 같다.
- 디자인 씽킹은 60년전부터 심리학, 공학, 산업디자인학의 거장들이 머리를 맞대어 고민한 산물이다
- 디자인 씽킹은 사용자 중심의 사고방식이자 그 사고방식을 가능하게 하는 일련의 훈련방식(discipline)이다. 둘 중 하나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디자인 씽킹 할 수 있다
- 디자인 씽킹을 배우기 가장 좋은 방식은 보고 배우는 것이지만, 워크샵이나 이론 전달의 형식도 좋다.
*바쁜 일상에서 시간을 내어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위 내용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나 새롭게 다가왔던 점이 있으시면 자유롭게 덧글을 달아주시고, 그러한 점이 없다면 본문을 잠깐만 시간을 들여 다시 훝어 보시길 권장합니다. 새롭게 접한 지식에 대하여 궁금한 점과 나의 관점을 정리하는 것은 스탠포드의 모든 학생이 수업에서 자연스럽게 익히는 학습방법입니다. 또 공유, 구독과 덧글을 통해 저는 힘을 얻고 더욱 양질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