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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 밍글스 강민구 셰프님, 스탠포드서 뭘 하고 갔을까

한식의 세계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오늘 스탠포드에는 낯설지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모던 한식의 선구자이자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님께서는 오늘 왜 스탠포드에 방문하셨을까?


오늘 이 분의 방문을 통해서 미국에서 한식의 현주소에 대해 알아보고, 앞으로 한식 세계화의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지 정리해 본다. 미국에서 한식을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오늘 이 글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서울 전체를 통틀어 현재 미슐랭 투 스타 이상을 받은 레스토랑은 단 10군데 뿐이다. 이 중 하나가 바로 이름 자체가 브랜드인 청담의 밍글스이다. 아시아 최고의 레스토랑 50에도 선정된 바 있다. 이 밍글스의 오너 셰프가 바로 강민구 셰프님이시다.


오늘 강민구 셰프님께서 방문하시게 된 계기는 얼핏 보면 명확하다. 미국에서 새로운 책을 내셨기 때문이다. JANG, The Soul of Korean Cooking 이라는 이 책은, 강민구 셰프님께서 한식의 정수, 한식의 에센스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끝에 4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집필하신 첫 요리책이다.



오늘 스탠포드에서 강민구 셰프님께서는 내가 몸담고 있는 푸드 디자인 랩 Stanford Food Design Lab 과 함께 이 책의 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두 가지 이벤트에 참가하셨다.


동글동글한 안경 뒤로 신중한 눈매를 가진, 다른 일에는 한눈팔지 않는다는 듯 바짝 깎은 머리의 강민구 셰프님은 연신 바쁘게 움직이시며 강연을 준비하셨다. 기꺼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식 요리 워크샵을 리드해 주셨고, 또 저녁 행사에는 책 소개 및 한국 장에 대한 강연을 펼쳐 주셨다. 이 저녁 행사를 위해 스탠포드 다이닝 서비스에 있는 셰프들은 이 신간에 나온 다양한 장 레시피들을 기반으로 100인분 이상의 부페를 준비했다. 두 이벤트 모두 너무나 성공적이었고, 참가하여 음식을 만들거나 맛본 사람들은 칭찬을 마다않았다.


20명 정도의 학생들이 너무나 즐겁게, 또 집중도 있게 강민구 셰프님의 시연을 보며 음식을 준비했다.


100여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강민구 셰프님의 레시피로 만든 한식을 먹고 있다.

여기서 드는 생각이 있다. 정확이 어떤 부분이 강민구 셰프님을, 그리고 그의 요리를 이토록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일까? 스탠포드 학생들과 실리콘 밸리 사람들은 어떤 부분에 열광한 것일까? 셰프님의 말씀을 빌려 먼저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익숙한 가운데 새로움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익숙한 가운데 새로움을 선사하라 - 강민구 셰프

당연하게 들리는가? 원래 말은 쉽고, 하기는 어렵다. (Idea is cheap, execution is hard!) 강민구 셰프님께서 이를 어떻게 탁월하게 이행하셨는지를 아래와 같이 풀어 보겠다.


1. 한식은 한식 그 자체로 충분하나, 이것을 해설해 줄 통역사가 필요하다.


아무리 드라마와 영화에서 본 한식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고 해도, 미국인들이 한식을 경험할 때 꼭 필요한 역할은 바로 "문화 통역사"의 역할이다. 문화 통역사는 실제로 언어를 통역하는 것을 훨씬 뛰어넘어 말 그대로 문화를 통역해주는 역할을 한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나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 통역사로는 올리버쌤이 있다. 미국의 낯선 문화를 어렵지 않게, 한국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며 풀어 주는 올리버쌤의 능력은 탁월하다.


올리버쌤~ 늘 잘 보고 있습니다!

반대로 미국인에게 한국 문화를 전달하는 문화 통역사는 누가 있을까? 대표적인 예가 두비두밥이다. 두비두밥은 코넬대를 졸업한 후 현재 380만 유투브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여성이다. 한국에서 자랐지만, 유창한 영어로 미국식 자조적인 개그를 던지며 세계인을 한국 골목 깊숙이 데려간다. 이 골목들에서 시청자들은 "토종"한국인만이 경험할 수 있는 노포들과 날것의 한국을 만난다.


두유노 강남스타일? 두유노 두비두밥?

강민구 셰프님의 책은 바로 이러한 문화 통역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안타깝지만 미국에서는 아직도 된장을 코리안 미소라고 소개해야 되는 판국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인에게 아프리카 각 나라의 고유한 향신료를 세세하게 구분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이런 미국인들의 눈높이에 딱 맞게 강민구 셰프님은 된장이 어떻게 미소와 다른 한국의 고유한 것인지, 한국 조선간장은 흔히 말하는 "왜간장"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 편안하게 알리신다. (덕분에 나도 오늘 배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이 이야기들은 '강민구' 라는 살아있는 한 사람의 목소리로 전해진다. 이것이 중요하다. 미국인에게는 어렵게도 느껴질 수 있는 한식을 깔끔한 영어로 담백하게 풀어낸다.


2. 익숙함도 새로움도 디자인을 통해 풀어낼 수 있다.

강민구 셰프님의 책을 보고 내가 옹졸하게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표지 폰트가 Avenir였다는 사실이다! 내가 그렇게 예민한 그래픽 디자이너, 폰트 디자이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표지를 보고 있자면 붓글씨로, 궁서체로 쓰인 플라스틱 고추장과는 도무지 다른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미국 사람들은 소스를 왜 플라스틱 텁 tub에 파는지 의아해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크게 회자되고 있는 넷플릭스 이소라 님의 일화를 아는가? 2016년  넷플릭스 CEO에게 당시 한국어 컨텐츠의 폰트가 얼마나 "구린가"에 대해서 피력하고 한국 넷플릭스 폰트를 싹 다 바꾼 위인이다.


https://www.youtube.com/shorts/aoYi-TVif-c

오늘 강민구 셰프님께서 일련의 이벤트동안 하신 말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이 바로, (서양인에게) 익숙한 디자인의 음식을 새로운 한국의 맛으로 풀어낼 수 있고, (서양인에게) 익숙한 테크닉을 사용하면서도 한국의 재료를 사용해서 익숙한 가운데 새로움을 선사하고 한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을 통해서 소비자들은 익숙함을 느끼고,
디자인을 통해서 고급짐을 느낀다.

그렇다. 디자인을 통해서 소비자들은 익숙함을 느끼고, 디자인을 통해서 고급짐을 느낀다. 미국인들에게 아무리 익숙한 햄버거라도 태양초 고추장 통에 넣어서 판다면 아무도 사지 않을 것이다. 이 참에 아마존에서 bestselling cookbook 2023을 검색하면 나오는 아래의 도서들을 살펴보자.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5/5, 17,974 ratings
별점 4.5/5, 8,506 ratings
별점 5/5, 2,682 ratings

JANG 책과 물론 다른 요소들이 많지만, 모던하고 깔끔한 느낌은 그대로다. 물론 표지라는 것은 많은 디자인적 요소 중 하나이겠지만, JANG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플레이팅부터 네이밍까지 어느 하나도 의도되지 않은 것, 디자인되지 않은 것이 없다.


강민구 셰프님의 이번 요리책은 미국에서 한식이 어떤 디자인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책으로, 어느 미국인 친구에게 선물해도 부끄러움이 없는, 너무나 자랑스러운 책이다. 태양초 고추장의 시대는 가고, 아름다움과 정돈됨을 느끼게 하는 이 책이 출판되어 너무나 기쁘다.


3. 가치는 일치하게, 경험은 다르게

이전에도 한식 요리책은 있어왔다. 그렇지만 이 책에 담긴 레시피와 오늘의 행사들이 스탠포드 학생들에게 더욱 와닿았던 이유는,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그대로 담고 있으면서도 맛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탠포드 학생들 중에는 채식주의자가 많다. 고기를 먹어도 소고기나 돼지고기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큰 고기는 먹지 않고 닭고기만 먹는 친구들도 있다. 오늘 쿠킹 워크샵에서도 어떤 음식을 함께 만들어 볼 지 고민이 많았는데, 처음 생각했던 제육볶음이 아닌 닭갈비를 선택했다. 파전, 닭갈비, 앤다이브 두부 샐러드 세 가지 요리를 쿠킹해 보니, 모두 맛있으면서도 건강하고 환경적 영향이 (비교적) 적은 음식들이었다.

오늘 요리 워크삽에서 우리 팀이 만들어본 닭갈비와 앤다이브 두부 샐러드


로컬 사워도우 회사와 콜라보해서 제공한 김치 포카치아 + 쌈장 버터


한식의 세계화, 적어도 미국화에서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바로 불건강함이다. 미원이나 설탕이 많이 들어간 레시피는 젊은 층에 잠시 먹힐지 몰라도 미국의 주류 식문화에 들어가기 어려울 수 있다. 미국에서 미친듯이 잘 팔렸던  트레이더조 김밥이 비건이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김밥이 뜨긴 했지만, 트레이더조에서는 그전에도 비건 불고기 등, 신세대의 가치관에 맞으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는 음식들이 점차 나오고 있었다. 앞으로 미국에서 점차 더 퍼져나갈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 음식 트렌드에 발맞추는 것이 한식 세계화의 과업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JANG 책에 정말이지 큰 기대가 된다.


참고로 한식은 이렇게 '가치는 맞으면서 경험은 새로운' 음식을 제공하기에 정말 좋은 문화이다. 위의 표를 보면 미국 사람들이 자주 먹는 음식 중, 따듯하고 배가 든든하면서 야채로 된 건강한 음식은 잘 없다. 주로 차가운 샐러드, 스무디 등을 먹는다. 하지만 비빔밥, 앤다이브 두부 샐러드, 간장 떢볶이 등 JANG 책에 나온 많은 레시피들은 따듯하면서도 든든하다. 이 와중에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즐거움까지 준다.


한식의 세계화에 대해 앞으로도 할 말이 많겠지만, 오늘은 이만 줄인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1. 한식은 한식 그 자체로 충분하나, 이것을 해설해 줄 좋은 통역사가 필요하다.

2. 익숙함도 새로움도 디자인을 통해 풀어낼 수 있다.

3. 가치는 일치하게, 경험은 다르게 제공하자


강민구 셰프님,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오늘 정말 감사하고 많이 배웠습니다. 정말 영광입니다 :)


이미지 출처:

강민구 셰프님: https://m.ajunews.com/amp/20190610095342540

표지사진: 미슐랭 가이드

올리버쌤: 나무위키

요리책들: 아마존

두비두밥: https://woman.donga.com/people/article/all/12/35509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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