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주기는 평생 남는다.
박정희 선생님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 성함이다. 박정희 선생님은 강단 있고 카리스마를 겸비한 조금은 무서운 선생님이셨다.
무섭다고 해서 우리를 야단치거나 무뚝뚝하게 대하신 건 아니다. 늘 네모반듯한 모습으로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가르치는 선생님이 그때는 무서움으로 다가왔다. 그러한 딱딱한 네모선생님을 따뜻한 분이라고 느끼게 된 계기가 있다.
어느 날 선생님은 수업을 일찍 끝내고 우리에게 책상에 편안하게 엎드리라고 주문했다. 의아함은 잠시, 아이들은 곧 “아싸~ 엎드려서 자자~!” 시시덕 거리며 엎드려 옆 친구와 장난을 쳤다.
잠시 뒤 선생님은 책을 읽어주기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엎드려 쑥덕쑥덕하던 아이들이, 선생님의 책 읽어주는 음성이 노랫말처럼 퍼지자 고개를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창밖을 바라보며 듣는 아이, 턱을 괴고 듣는 아이, 어느새 바른 자세로 듣는 아이 제각각 포즈는 달랐지만 우리들의 귀는 어느새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게 되었다. 선생님 입에서 나오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교실의 공기를 에워싸며 나는 태어나 처음 맛보는 짜릿함을 느꼈다.
그림책도 아니었고, 약간 두께가 있는 장편동화였다. 선생님의 음성이 내 귀를 타고 흘러들어와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손이 없는 그림은 알아서 흘러 흘러 내 머리부터 목, 어깨, 그리고 심장을 지나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그때까지 누구의 책 읽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책이란 것은 글을 깨우친 아이가 혼자서 읽는 것이라 알고 있었다. 우리 집에 책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읽어주는 어른도 없었다.
아빠는 소설책을 즐겨 읽었다. 우리 집은 동아일보를 구독했는데, 소설 신간면에 나와있는 책을 아빠의 심부름으로 서점에 가서 사 온 적이 몇 번 있다. 그럼 아빠는 며칠간 그 책에 빠져 지냈다.
책은 누가 읽어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 읽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때 선생님이 학기 내내 책을 읽어주었던 기억은 아직까지 따뜻한 잔상으로 남아 있다.
아이의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아침 독서시간에 책 읽어주는 어머니 봉사자를 모집했다. 나는 고민 없이 신청을 했고, 첫 봉사를 다녀왔다. 나는 2학년 2반을 맡게 되었는데, <코끼리 미용실> 빅북을 들고 교실로 걸어가는 길에 왠지 긴장이 되었다.
아이들을 만난 내 입에서는 생각보다 말이 술술 나왔지만, 듣는 아이들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거운 빅북을 넘기는 힘이 부족했는지, 26쌍의 맑은 눈빛을 받아내기에 내 에너지가 약했는지 땀이 줄줄 흘렀다.
“아 재밌다.” 말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자 어깨가 바짝 세워졌다. 이 에너지를 선생님들은 온종일, 매일매일, 몇십 년 동안 어찌 감당하고 가르치는 걸까?
책을 읽어주고 아이들의 합창 인사를 받으며 그 답을 바로 깨달았다. 아이들의 에너지는 나에게로 흘러들어와 이야기를 담고 다시 아이들에게로 향하는 것이었다.
읽어주기는 시간을 내어야 한다. 어른이 시간을 내어 아이에게 꼭 읽어 주어야 한다. 바쁘고 고된 부모들이여, 땅을 물려줄 것이 아니라 읽어주기의 힘을 아이에게 전해주길 바란다.
다음 주에는 좀 더 단단하고 여유로운 마음과 자세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