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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미 Sep 17. 2024

문득

아이를 보면 내가 보인다.



1학년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의 1학년 시절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할아버지 담임선생님은 나를 예뻐해 주셨다. 번쩍 들어 올려 안아주시기도 하고 한번은 볼에 뽀뽀도 하셨다. 지금은 그렇게 담임선생님이 여자아이를 들어안고 뽀뽀를 하면 아마 신고를 당할지 모른다. 세상이 이렇게도 변했다.




엄마가 장사 끝나고 귀가하실 때까지 하루가 길었다. 주산과 속셈학원을 다녔는데, 두 곳의 학원을 다녀와도 오후 5시가 안됐던 거 같다. 집에는 무서운 아빠가 계셨다. 아빠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하셨던 거 같은데, 1학년 때 아빠의 직업을 잘 모르겠다. 집에 늘 있다가도 며칠씩 집에 안 들어오시기도 했다. 육지에 갔다고도 했고, 제주시에 갔다고도 했다.




1학년 어느 날, 아빠는 색종이를 가져와 보라고 하더니 내가 가장 잘 접는 걸 접어보라고 하셨다. 1학년 때 가장 잘 접었던 종이접기는 ‘공 접기’였다. 마지막에 후 불면 공기가 톡 들어가서 색종이가 볼록해지며 공이 된다. 아빠께 보여 드리니, 아빠는 잘 접는다며 또 접어보라고 하셨다. 그때는 이게 놀아주는 건지 몰랐다. 내가 얼마나 색종이를 잘 접는지 테스트하는 줄 알았다. 다 크고 나서 돌이켜보니, 그 행위는 ‘놀아준 것’이었다.




저녁 무렵, 공부방에 책을 가지러 갈 일이 있었다. 나만 후다닥 다녀오면 되는데, 시원이 기저귀 가방까지 챙기고서 네 식구가 우르르 움직였다. 유준이는 초저녁잠을 자버려서 아주 쌩쌩했고, 시원이도 우~! 암맘맘마! 소리 내는 걸 보니 밤 나들이가 신이 난 모양이다.



공부방 책상 위에 색종이 상자가 보였다. 무심코 ‘공'을 접어보았다. 유준이에게도 ‘공 접기’를 전수해 주었다. 바다에 다니는 배 밖에 못 접는 유준이는 공을 접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다.

“엄마, 색종이 접는 직업도 있어? 나 색종이 접기 선수 돼볼까?”

자신감은 아이를 크게 한다. 공 접기를 유준이에게 가르쳐 주는데 아빠 생각이 났다. 그래, 아빠도 아이들과 놀아주려 하셨구나. 방법을 알면서도 방법을 몰랐고, 몰랐기에 서툴렀을 것이다. 그리고 잘 풀리지 않는 당신의 삶을 살아내느라 아이들에게 온전히 사랑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아빠와 색종이 접기를 하던 그 짧은 추억이, 어두운 유년 시절의 응어리를 미약하게나마 녹아내리게 한다.

마흔의 유준이에게 나는 어떤 엄마로 남게 될까.




- 엄마, 우주보다 넓은 건?

- 글쎄. 없지 않아?

- 있어.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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