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가 훌쩍 넘어서야 노트북을 켰다. 말이 좋아 재택근무지 일과 가정의 경계가 모호해서 아이들이 없거나 자고 나서야 내 일을 할 수 있다. 일을 끝내고 나니 어느덧 밤 12시가 되었다. 당장 내일 아침상이 고민이다. 내일 아침 10분이라도 더 자려면 미리 음식을 만들어 놔야 한다.
남편이 밤에 일을 하지 않았던 때에는 주먹밥이나 계란밥처럼 5분이면 완성되는 간단한 아침이면 충분한데 아침식사가 저녁식사가 되어버린 남편에게 5분 컷인 주먹밥을 들이밀기엔 도저히 양심에 찔렸다.
나는 얼른 목살을 넣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김치찌개는 여러모로 위험하다. 내 최애 찌개인 이유도 있지만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김치가 푹 익어가는 냄새만으로도 소주와의 궁합이 기가 막히기 때문이다.
곰국도 아닌 것을 한 시간이나 끓이니 김치찜 마냥 푹 익은 것이, 부드러운 목살에 김치 돌돌 말아 입 안에 직행하고 싶다는 생각에 괴로움이 터졌다. 하필 오늘 생각지도 못한 목돈이 나가는 바람에 인생 쓴 맛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 통에 과연 푹 익힌 김치 한 점에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 내 인생사인가 싶어 하는 수 없이 한 입 먹었다.
김치찌개 한 숟가락에 꼭 이런 서사가 필요할까 싶지만 어찌 폼을 보니 곧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낼 것 같은 기세라 고독 내지는 처량한 인생사로 서론을 길게 깔았다. 그래야 본론으로 들어가는데 죄책감을 덜 수 있달까? 어쨌거나 본론은 김치찌개 3숟가락에 소주 딱 반 병을 홀짝 하는 방향인 듯하고 보나마나 톡 털어 넣은 알싸한 소주와 김치로 돌돌 만 목살 하나 집어삼키며 행복 까짓 거, 별거 없다로 결론이 나겠지. 내일의 예고편은 안 봐도 뻔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