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이 직면하게 되는 현실이 있다.
나는 그러한 현실을 매일 아침마다 목도하게 되는데 그 현장은 화장실이 되겠다.
양변기에 앉아 볼일을 볼 때면 반짝이는 은색 스테인리스 휴지걸이대에서 긴히 비치고 있는 세 겹의 뱃살에 황급히 시선을 돌린다. 그러나 결국에 마주하게 되는 나의 러브핸들을 덜덜 흔들어댄다. 그러고는 이제는 정말이지 술을 끊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와 바삭한 치킨을 들고 맥주를 퍼부어댔던 지난날의 나를 반성하는 걸로 결연한 아침을 맞이한다.
대부분의 주당들은 공감하겠지만 아침의 결연함은 날이 저물어가면서 함께 저물어간다. 특히 하루가 고단했다던가 뚜껑 열리는 걸 겨우 면하는 날이면 다이어트고 나발이고 시원한 맥주 한 캔 나발을 불어줘야 살 것 같달까. 기필코 오늘은 먹지 않으리라 다짐해 놓고는 오밤중에 파자마 위에 파카 하나 입고 터덜터덜 편의점으로 향한다. 편의점 사장님에게 아침의 결연함이 오늘도 헛되고 말았다 고백했더니 자신도 나와 동병상련이라며 꿍쳐놓은 마른안주를 건네며 위로했다. 나는 별안간 편의점에서 전우애랄지 동지애랄지 하여튼 따뜻함을 느끼고 차가운 맥주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술로 스트레스를 풀고 부푼 뱃살을 보고 다시 스트레스를 받는 이 무한궤도에서 마땅한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딜레마는 비단 술과 뱃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그 둘의 관계가 그러하다. 이제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싶다가도 쪼달리는 지갑 사정에 꿈은 개뿔. 이생망(이번생은 망했다의 줄임말)이다 싶다가도 억울하게 꿈도 제대로 못 꿔보고 인생 종 치겠다 싶어 다시 하고 싶은 일에 기웃거리다를 무한반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정과 일의 양립이 어렵듯 현실과 이상의 양립 또한 그 못지않은 녹록함에 또 한 번 한숨을 쉬게 되는 날들이 많아진다. 그러니 오늘 밤 맥주 한잔의 위로를 거스를 재간이 내겐 없다. 쓸쓸한 위로의 대가가 정녕 뱃살과 셀룰라이트뿐이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