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돌아오는
며칠 전이었다. 무더웠던 여름이 머뭇거리다가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 주듯, 높고 푸른 하늘과 선선한 아침 바람이 계속되던 한 주였다. 하루하루 옷을 갈아입는 나뭇잎들에게서도, 분주히 축제가 열리는 잔디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학생들의 모습에서도 가을의 향기가 물씬 느껴졌다.
학교에서 마주하는 사계절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가을이라고 답할 테다. 여름의 끝자락, 가을 내음이 배인 학교는 내게 유달리 특별하다. 2년 전 이맘때는 가을 학기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를 보냈고, 작년에 대학원생이 되어 다시 학교에 온 나를 반겨주던 계절도 가을이었다. 학교와의 첫 만남을 장식해 주던 이 계절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여름 지나 만나는 가을은 봄과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우리를 환대하곤 한다. 피어오르는 꽃들 사이로 꽃내음이 따뜻하게 불어와 마음을 간질이는 봄과는 달리, 가을은 가을 특유의 분위기로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인사를 건넨다.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느껴 본 사람은 모를 수 없다는 가을 향기. 세상이 살아 숨 쉬는 듯한 맑은 가을 아침의 향기는 하루가 달리 짙어지고, 바람을 타고 날아와 서서히 붉은 물을 들인다.
가을이 오면 이 단풍이 금방이라도 지나갈까 아쉬운 마음에 산책을 자주 나간다. 바깥 세상은 짧은 가을을 맞을 채비에 분주하다. 천안의 본가에서는 가을이 되면 황금빛으로 누렇게 익은 벼가 바람에 일렁이고, 자주 가던 산책길의 감나무와 배나무에는 열매가 열렸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탈리아에서는 사과밭에 사과가 익어 축제가 열렸고, 중국에서는 목서나무 꽃의 향기가 학교와 도시를 가득 채웠었다.
푸르고 높은 가을 하늘 아래, 살랑이는 나무 밑으로 반쯤 드리운 그늘에 앉았다. 나뭇잎 틈을 비집고 내려온 햇살과 불어오는 마른 바람을 느끼다가 문득 깨달았다. 더위를 식히고 돌아보니 가을이 와 있는 것처럼, 어느새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 자신이 보인 것이다. 주변의 미기후들이 나의 몸을 감싸올 때면 그 계절과 공간만의 분위기에 빠져든다. 물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자세히 되돌아보기도 한다. 마치 내가 지금, 가을을 사랑하는 이유를 나열하듯.
이것이 내가 조경을 배워야 하는 이유라면, 나는 평생 이 꿈을 잃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