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넘고 있는 산 뒤에는 무엇이 있나요
어제일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유년시절의 기억은
각인된 듯 또렷하다. 생각할 때면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를 꺼내 보는 기분이 든다.
내가 다섯 살 때 부모님은 시장옆에서 작은 중국집을 하셨는데 그 뒤엔 산이 있었다. 산이 너무 거대하게 느껴져서 다른 세계로 가는 커다란 문 같았다.
산의 앞면만 보고 있으니 보이지 않는 뒷면은 나의 상상의 영역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세계는 바다였다.
다섯 살까지 바다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사진첩에도 없는 걸 보니 가지 못했나 보다.
여섯 식구 먹고살기 바빠 여행 갈 여유가 없었으니까.
내가 아는 바다는 중국집에 작은 텔레비전 속에 담겨 있었다.
’ 올여름 해수욕장 개장을 앞두고 피서객들이 …’
파란 파도가 넘실대고 고운 모래사장 위에 수많은 인파가 모여 휴가를 즐기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모래성도 만들어 보고 싶고 내 발등을 덮어주는 시원한 파도의 감촉을 느껴보고 싶었다.
저 산만 넘어가면 바다를 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처음 가는 길이고 심지어 길도 나있지 않은 나무만 무성한 산이었다.
괜히 산을 넘어가려다 길 잃고 집에 찾아갈 자신이 없었다. 산이 하나가 아니라 그 뒤에 또 산이 있으면 또 어쩌나. 나는 그저 산 앞에 서서 서성였다. 산이 하얀 셀로판지처럼 투명해지면서 뒤에 펼쳐진 바다가 보였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아주 작았나 보다.
산 뒤에 바다가 있고 바다의 깊이는 가늠할 정도였으니까.
자라면서 그 산 뒤엔 바다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유년시절에 내가 본 거대한 산은 그저 뒷산이었고
다른 세계로 가는 커다란 문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 시절 내가 산을 넘지 않아서 다행인지 모른다.
지금의 나는 매번 산을 넘어간다.
몇 개 일지 모르는 산을. 산 넘어 산이라는 말처럼.
산 하나 넘고 평야가 나오면 걷다가 뛰다가 또 산을 마주하면 넘는다.
그 끝엔 내가 보고 싶고 가고 싶어 했던 나를 위한 바다가 펼쳐져있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