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여행

by 홍홍강

벗꽃이 만개한 4월. 옛 전우들과 대구광역시 군위군을 여행하게 되었다. 운전기사의 친절한 해설을 들으면서, 내겐 친숙하지 않은 군위군을 조금은 알게되는 기회를갖게된 것이다.

군위라는 지명은,김유신장군의 5만대군이 백제로 향하던 중 이곳에서 잠시 머물었는데, 그위용이 당당하여 군위(軍威)로 되었다 한다.

군위군의 관광명소를 제대로 둘러보려면, 적어도 4박5일은 되어야 한다는데, 우리는 예정된 시간이 오늘 오전 뿐이어서 몇군데만 고를 수 밖에 없다.


처음 방문은 '제2석굴암'이다. 팔공산기슭 거대한 천연절벽 자연동굴안에 삼존석불을 모셨다.대구시의 유일한 국보로서 문화재유산명칭은 '군위 아미타여래 삼존석굴'이다. 경주석굴암보다 일백여년이나 먼저 만들어졌지만, 세상에 알려진게 1962년이어서 '제2석굴암'이라 부른다는 해설자의 설명에 내가 제안을 했다. ''경주석굴암을 '토암산석굴암'또는 '제2석굴암'이라하고, 군위의 석굴암은 '팔공산석굴암'또는 '제1서굴암'아니면 그냥 '석굴암'이라고해야 옳다''고 하자, 해설자는 '''그냥'은 빼고 '석굴암'이좋겠네요.'' 아니면 그만이지뭐.

깤아지른 절벽에 생긴 자연동굴도 그러니와 동굴안으로 석불을 어떻게 옮겼는지, 천년이 지난 오늘까지 손상없이 보존된 것이 신기롭다.


안내지도에 '삼국유사면'이라는 지명이 눈길을 끈다. '삼국유사'는 국보로 지정된 일연의 역사서가 아닌가. 원래 이름은 '고로면(古老面)이었는데, 오래되고 늙었다는 어감이 좋지않아 2021년에, 이 면에있는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집필한 것에서 따와 개정한 지명이다. 삼국유사는 단군신화를 비롯하여 향가14수가 수록되어있어 국어국문학 연구에도 귀중한 문헌이다. 노모의 봉양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저술하고 임종했다. 우리민족의 자긍심을 높혀주고, 지극한 효심을 가르치고있다.


김수환추기경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김수환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에도 아쉽게도 들리지 못했다. 어린 시절 살던 집을 복원해놓은 곳으로, 초가삼간의 소박한 모습이며, 옹기가마터가 있고,'사랑과 나눔공원'으로 이어져 있다. 김수환은 대구 남산동에서 5남3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순교하고, 유복자로 태어난 아버지는 박해를피해 고향을 떠나 '옹기장수'로 전 국을 떠돌았다. 김수환은 4세때 군위로 이사했고, 군위공립보통학교에 다녔다.

김수환추기경의 아호는 '옹기장이'이다. 자신의 역할이 '옹기처럼 투박하고 소박하지만, 많은이들에게 사랑과 나눔을 전하는 것'이라는 뜻과, '옹기장이'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는 뜻이 아닐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꼽힌다는 중앙선'화본역에 들렸다. 작년12월에 폐역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질뻔했으나, 증기기관차의 추억을 떠올리는 건물.시설.소품과 옛사진들을 옛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급수탑도 그대로이다.


가까이에 '엄마아빠 어렸을 적에'라고 교문기둥에 써 있는 학교가 있다. 운동장.호단.국기게양대.책걸상.난로위도시락.게시판.....국민학교 옛모습을 소름끼치게 닮았다. 각종 놀이도 체험할 수 있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폐교된 학교시설을 방치하지 않고 활용하는 지혜가 돋보인다.

근처의 '충의공 엄흥도 역사 탐방로'도 그냥 올 수 밖에 없었다. 숲속 오솔길로 엄홍도 묘소까지 이어진다.

엄흥도는 영월의 호장(戶長)으로 있을때, 단종 이 죽음을 당하자,단종의 시신은 염습도 못한채 그대로 버려져 있었다.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세조의 엄명이 내렸지만,엄흥도는 관까지 준비하고 염하여 장례를 치르고는 몸을 숨겼다. 엄흥도의 묘소가 이곳 화본리에 있다.


역사와 문화의 고장을 방문하였으나, 너무나 짧은 일정으로 아쉬움을 안은채 발길을 돌렸다. 지지체마다 혹여 뒤질새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요란을 떤다. 무슨 축제니, 무슨 아가씨니, 지방비행장이니 야단들이다. 군위군은 이들과는 달리 가지고 있는 귀한 문화와 역사를 보존관리하는데 지혜를 모으는 슬기로움에 존경과 감사의 기립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