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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걷던 추억 마음에 담다

by 김세은


2024년 8월 1일부터 청와대 관람이 중단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3년 만에 대통령 집무실로 복귀한다는 소식에, 문득 서운함이 스쳤다.

그래서일까. 작년 가을, 여고동창들과 함께했던 청와대 방문기를 다시 펼쳐 보게 되었다.


그때의 기억을 하나씩 꺼내본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청와대는 멀기만 한 곳이었다.

그 길목에 들어서기조차 쉽지 않았고, 가방을 열고 신분을 밝히는 일이 당연했던 시절. 그 살벌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이제는 자유롭게 그 앞을 거닐 수 있다니. 시간은, 참 많은 것을 바꿔 놓는다.


사전 예약조차 없이, 만 65세 이상이라는 타이틀 하나로 들어설 수 있었던 우리 넷.

“청와대를 국민 품으로”라는 분홍색 팻말이 눈에 확 들어왔다.

방송에서만 보았던 그 풍경.

청기와 지붕과 북악산의 배경이 어우러진 전경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아름다웠다.

“와, 좋다…”

하며 탄성이 절로 나왔다.


넓은 뜨락과 잘 관리된 아름드리 나무들, 단정한 선이 살아 있는 전통 한옥의 격조와 고풍스러움이 우리들을 압도한다.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함 마저 들었다.

한 땀 한 땀, 엮어 만든 장인의 솜씨에 그저 탄복 할 뿐이다.


함께 걷고 있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연방 소리를 내며 “잘 왔지”하며 자랑스러워한 모습들, 허리가 구부정하고 지팡이를 짚고 힘겨운 발걸음에도

잔칫집 온 하객인양 환한 얼굴과 즐거워하는 표정들.

정말이지, 여기가 바로 시니어들의 핫플이구나 싶었다.


본관에 들어서자, TV에서만 보던 풍경이 현실이 되었다.

높은 층고, 화려한 샹들리에, 붉은 카펫이 깔린 계단.

그 모든 것이 우아하고 절제된 조화를 이루며, 권위 너머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 넷은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으로 그 계단을 오르며, 포토존 앞에서 멋쩍은 웃음으로 인증샷도 남겼다.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가 즐비하게 걸린 벽 앞에 서자,

그들의 시대와 함께 흘러온 대한민국의 역사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세종실, 접견실, 무궁화실, 그리고 간담회가 열리던 인왕실까지.

그 공간마다 살아 숨 쉬는 기억들이 건물과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인왕실 창 밖,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사이로

한 폭의 그림처럼 걸린 “통영항” 그림 앞에서는 누구랄 것도 없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청푸른 바다의 감성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낯설지 않은 이름, 항상 봄이 머문다는 “상춘재.”

고풍스럽고 정갈한 한옥의 단아함, 차라리 감동이다.

외국인 관람객들이 안내자의 설명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들도 이 멋스러움에 홀딱 반하지 않았을까?

나도 모르게 자긍심이 올라왔다. 자랑스럽다.

일행이 빠진 자리에 우리 찐 우정을 고즈넉한 분위기와 함께 사진 속에 담는다.


다음은 대통령 관저였다.

가장 궁금했던 공간이기도 하다. 지나는 길에 만난,

아치형 ‘불로문’밑을 지나면 늙지 않는다는 말에 “한 번 지나볼 걸…”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관저 앞의 넓은 마당과 가지런히 가꿔진 텃밭에는

쑥갓과 아욱 같은 소박한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그 풍경을 보며 문득 육영수 여사의 자애로운 모습이 떠올랐다.

텃밭 하나에도 마음이 머무는 건, 어쩌면 우리가 살아온 시간 속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물방울이 땅끝으로 조용히 스며들도록 구슬 꿰듯 만든 지붕 끝의 쇠 장식 하나까지, 디테일에 깃든 장인의 섬세함이 느껴졌다.


관저 뒤편으로는 야트막한 숲과 관저 사이 호젓한 오솔길이 조용히 이어져 있었다. 유난히 초여름을 방불케 했던 그날, 좁은 통로로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을 오롯이 느끼며 창문 밖에서 살펴본 안방, 식탁, 썰렁하게 비어있는 싱크대, 서재, 미용실… 세월에 흔적인가? 화려함 뒤에 숨은 소박함? 초라함? 마음이 쓸쓸하다.


이윽고 녹지원으로 향했다.

정원 한가운데,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선 반송 한 그루.

그 모습은 우람하고도 고고했다.

그 풍경이 한참을 머물게 했다.


그때, 친구 한 명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우리 셋도 따라 읊었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순간,‘주인 잃은 옛 궁성’이라는 노랫말 한 구절이 생각나 쓸쓸해진 마음도…


텅 비어있는 이곳을 지나오며 느껴진 공허함, 무상함.

이 감정은 과연 우리만의 것일까?


청와대가 권력의 상징에서 열린 공간으로 변모 되었지만 그것이 주는 상징성과 의미는 무엇일까?


언젠가 또 다른 대통령이 등장하면,

청와대의 부활은 이루어 질까?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

비록 조금 늦었지만, 대통령들이 거주했던 구중궁궐을

가장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들 정말 큰 선물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 아쉬움과 진한 여운이 남는 건 왜 일까?



20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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