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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도 우정은 그대로

by 김세은

요즘같이 푹푹 찌는 찜통더위엔 친구를 만나는 일조차 망설여진다.

외출이 두렵고, 땡볕 아래로 나서는 것이 겁이 난다.

문득, 작년 가을의 어느 날이 떠오른다.

바로 그 친구를 만났던 날이다.


2주 전부터 기다려지던, 찐 친구와의 약속이었다.

매달 한 번, 20여 년을 함께 일했던 선후배들과 모이는 자리가 있다.


그날은 특히 나와 자라온 환경도, 살아온 발자취도 닮은 친구와의 만남이었다.


그 친구를 만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나보다 나이는 조금 어리지만 현명하고 지혜롭다.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도 돌 다리 되어주는, 말 그대로 든든한 친구다.


9월의 마지막 날, 선릉역 근처의 이름난 맛집에서 콩국수와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나누고, 선정릉에 도착 했지만 장날! 휴무일. 발길을 돌려 봉은사로 향했다.


길을 걷다 보니, 30여 년 전 이곳에서 파견 근무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코엑스를 중심으로 우뚝 선 빌딩 숲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 시절, 정든 한전 건물은 사라지고 널빤지로 울타리 친 공사 현장만 남았다.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구나 싶다.


추억을 이야기하며 봉은사 입구에 다다르니,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나무 그늘 아래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

우리는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푸른 가을 하늘 아래, 담벼락을 타고 흐드러지게 피었던 능소화가 이젠 몇 송이만 남아 있다.

“저 꽃 이름이 뭐였지?”

쑥부쟁이 곁에서 나지막이 묻고, 돌계단을 조심조심 내려온다.


길 건너 빌딩 숲 너머로, 예전 코엑스(KOEX)가 보인다. 지금은 COEX로 이름이 바뀌었다.

젊은 날의 치열했던 나날들, 웃고 울던 기억들이 마음속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뒤쪽으로 나 있는 정원 같은 길 벤치에 앉아 사진도 한 장 남긴다.


그리고 들어간 ‘별마당 도서관’이름도 그럴싸하다.

희미해진 기억 저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웅장하고 거대한 서가 앞에서 한동안 어리둥절해 마치 꿈속인양 황홀해 진다.

책으로 소통하는 열린 문화 공간이라니, 한참을 감탄하며 바라보다

“저 높은 데 있는 책은 어떻게 꺼낼까?”

그런 엉뚱한 질문을 주고받으며 걸었다.


베스킨라빈스 매장에서 처음 만난 키오스크 앞에서는 잠시 멈칫.

종류가 너무 많아 몇 번을 시도하다 결국 직원에게 주문했다.

“노인이 다 되었나 봐.”

쑥스럽고 겸연쩍은 마음에 목소리 마저 당당하지 못하다.

친구가 웃으며 위로한다.

“젊은 남자도 헤매던걸.”


그곳은 예전 88올림픽을 비롯해 굵직한 국가 행사 때마다

통신 관련 업무로 파견됐던 장소.

서로의 기억을 꺼내며, 손바닥을 마주치며 소리 죽이며 웃었다.

그 추억들을 되뇌이며 떠드는 동안 어느덧 늦은 오후,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지하철 입구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심의 풍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자연도, 기술도, 사람들의 표정도.

세상이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우리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싱그럽고 생기 넘치던 젊은 날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지만

친구의 우정만큼은 변함이 없구나.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도

이곳을 함께 걸을 수 있을까?

곱씹으며, 20년 후? 아이쿠 힘들겠다.ㅋ


오늘, 보석 같은 친구와의 외출은

참 따뜻하고 좋았다.


친구야,

무더운 여름이 지나

가을의 오는 소리가 들리면

또 만나자.

202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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