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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담그는 풋마늘 장아찌

by 김세은

행복을 담그는 풋마늘 장아찌

차일피일 미루어 오던 냉장실 정리하다 맨 구석 모서리에 키 작은

유리병 하나에 손이 닿았다.


해마다 이름 봄이면 엄청 많은 양(20kg~30kg)을 담그는 우리 집 ‘최애 반찬’풋마늘 장아찌다.

거의 다 먹고 버리기 아까워 조그만 병에 담아두었는데 다른 반찬에 밀려

한쪽 구석에 묵혀 있었나 보다.


올 봄에도 어김없이 3월중순과 4월초가 제철인 알싸하고

담백한 풋마늘 장아찌를 담았다.

겨울과 이른 봄이 교차하는 짧은 시기에만 맛볼 수 있어 놓치기 쉽다.


마늘은 강한 향을 제외하면 100가지 이로운 점이 있어 일해백리(一害百利) 로 불리기도 한다. 마늘에 들어있는 알리신 성분은 소화를 돕고 면역력을 높이며,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항암효과와 혈당을 떨어뜨려 당뇨병과 동맥경화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마늘이 알 뿌리가 생기기 전 잎 마늘 상태인데, 마늘 꽃대인 마늘쫑으로도 다양한 음식을 할 수 있다.


며칠 전 주문해서 배달온 풋마늘 4kg (2단)을 흥겹고 신바람 나게 담았다..

먼저 흙이 잔뜩 묻은 뿌리와 질긴 잎 부분은 버리고 연한 잎과 줄기는 깨끗하게 씻어 바구니에 건져 놓는다.

연한부분과 가느다란 줄기는 따로 살짝 데쳐 나물로 무쳐먹고,

굵은 줄기는 몇 등분으로 나누어 물, 간장, 식초, 설탕을 끓어 바로 붓는다.


육류를 즐기는 우리 가족이 가장 즐기는 반찬이다. 김장김치는 주문해서 먹기도 하지만, 여름 오이 장아찌와 겨울엔 집에서 말린 무말랭이 반찬은 손수 즐겨 만든다.


제주도 토속 음식으로 어릴 적에 큰 이모님이 보내주신 마늘장아찌를 꽁보리밥에 물 말아서 맛나게 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된장, 콩잎, 참기름, 마늘, 고구마, 보리미숫가루 등 귀한 음식들을 해마다 바리바리 싸서 우편으로 보내주셨던 고마움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누구나 70년대 경제가 어려웠던 시기였지만 막내 동생(울엄마)의 팍팍한 서울살이를 걱정하신 언니의 무한한 사랑이 아니였을까?


젊은 시절 농민대표로 청와대로 초청되어 육영수여사와 악수했다고 자랑하시던, 햇볕에 그을린 거친 손은 많이 부끄러웠다고 하셨지만, 세상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아름다운 손이었다. 배움은 짧으셨지만 지혜롭고 명석한 분이시다.


올해로 104세가 되신 큰 이모에게 전화 드리면 긴 대화는 어렵지만 내 이름은 아시는지 세은 인댜!~~(제주사투리) 하며 목소리 톤을 높이시며 반갑게 웃으신다. 그 우렁찬 목소리만으로도 마음이 놓인다.


해마다 이맘때면 조금씩 담아서 여동생과 친정엄마, 시집간 조카에게도 나누어 준다.

접힌 부분의 속 잎사귀에는 흙이 많이 묻어있어 하나하나 씻어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이모가 담근 “풋마늘 장아찌가 최고” 라며 치켜주면 수고스러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뭔가 해 줄 수 있어서 마음이 뿌듯하다.


홈쇼핑이나 쿠팡에도 주문만 하면 손쉽게 배달되는 밀키트(meal kit)와 음식들이 즐비하게 많은 요즘이다. 별것도 아니지만 정성스럽게 담가 나누어 먹을 수 있어 가족간의 온기를 느끼게 하는 음식이다.


오늘은 식구들이 저녁에 삼겹살 먹자고 한다. 풋마늘 장아찌는 고기(육류)와는 환상의 궁합이다. 상추, 된장과 함께 곁들어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입맛이 다져진다.


몇 시간 공들어 만든 내 작품 (?)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소소한 일상이지만 나는 왠지 오늘 더없이 뿌듯하고 행복함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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