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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한조각 꺼내다

by 김세은

누구나 살다 보면 한 장면이 문득 되살아나 가슴을 두드리는 순간이 있다.

내게는 젊은 30대! 어느 날의 광화문 네거리의 풍경을 조용히 불러온다.


본사 근무를 마치고 지사로 발령받아 코엑스 건물에서 몇해동안 근무하게

되었다. 한 달에 한번 본사에 올라가는 일만 빼면 나름 만족스러웠다.

출. 퇴근이 많이 단축되었고, 본사보다는 모든 면에서 조금 여유로웠던 시기였다.


그곳에서 생각치도 못했던 테니스와의 첫만남이 있었고, 그 인연은 30년 가까이 이어지며 내 인생의 고락을 함께 나누게 되었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퇴근 후에도 그 시절 유행하던 지점토, 빵꽃만들기등 취미생활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젊음의 열정을 한껏 누릴 수 있었다. 그리운 그때 그 시절이었다.


그 무렵, 막 운전면허를 따고 “초보 운전” 딱지를 창에 버젓이 붙이고 다닐 때였다..

광화문 본사에 가야 하는 날, 차를 몰고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용기를 내어 운전대를 잡았다. 어찌어찌 시청 앞까진 무사히 왔으나, 고지가 바로 저긴데!

아차 하는 순간 차선을 잘못 들어 엉뚱한 길로 한참을 헤매고 말았다.


광화문이 다시 보일 무렵, 뒤차 한 대가 상향등을 번쩍이며 바싹 따라붙었다. 가슴은 쿵쾅거리고, 온몸에서는 진땀이 흘렀다. 무슨 이유도 모른 채 비상등을 켜고 손만 허공에 흔들며 ‘잘못했습니다’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눈물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결국 옛 국제극장 근처에서 차를 멈춰 세웠다. 그런데 그 차 역시 내 뒤에 바싹 멈춰 섰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드는 순간,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남편이었다.

순간의 안도와 반가움에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창피함도 부끄러움도 잊은 채였다.

한 달에 한 번, 그것도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될까?

공교롭게도 남편 역시 몇 년 만에 시청 앞에 볼일이 있어 나온 길이었다.

당신과 나는 정말 운명인가 봐! 인연이란 결국 이렇게 찾아오는 걸까?


전날 술 많이 마셨다고 속상해 하던 내가, 그날만큼은 퇴근길에

소주 두 병을 사 들고 집에 왔다. 맘 상한 감정도 눈 녹듯 사라졌다.


세월이 흘러도 그날의 장면은 선명하다. 두려움 끝에 만난 반가움, 그리고 남편과의 운명 같은 조우. 내 생의 끝자락까지 지워지지 않을, 그리움의 한 조각으로

남아 있다. 202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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