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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꽃에서 찾은 즐거움

by 김세은



올봄, 내게 또 하나의 작은 기쁨이 찾아왔다.

평소 자주 만나는 후배들과 운동을 마치고 찻집에서 한참 수다를 풀던 날, 문득 눈여겨 두었던 꽃집에 가보자고 청했다. 도로변에 온갖 모종들이 널려있는 그곳을 창 너머로 보면서 한번 와보고 싶어서다.

꽃집에 들어서니 상추, 고추, 가지, 토마토, 쑥갓 등 온갖 모종들이 푸르른 잎을 흔들며 “나를 데려가 주세요” 하고 손짓하는 듯 보였다. 싱그러운 기운에 마음은 어느새 설렘으로 가득 차고, 무엇을 골라야 할지 망설이면서도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예전에는 봄만 되면 테니스장 주변에 자라난 쑥이나 돌나물을 뜯어다 지인들과 나누기도 했었다. 추운 땅을 뚫고 고개를 내미는 풀꽃들을 바라보는 일은 늘 내 마음을 멈추게 했다. 야유회나 산행에 나서면 쑥과 고사리, 달래 순을 따는 재미를 놓치지 않았고, 그때마다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 아련히 그려지곤 했다. 삭막한 도시 생활에서 잠시 숨통을 트게 해 주는 작은 호사였는지도 모른다.

한참을 들락거리며 결국 상태 좋은 녀석들만 골라 모종판에 담았다. 상추 몇 가지와 겨자, 쑥갓이었다. 작년에도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를 심어 보았지만, 꽃만 무성할 뿐 열매는 몇 개 맺지 못한 채 시들어 버렸다. 야속하기도 했지만 어쩐지 그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남았다. 더 넓고 햇볕 쨍쨍한 좋은 땅에서 자라야 했을 텐데.

그래서 올해는 더 정성을 다하기로 했다. 겨우내 흙투성이로 방치했던 스티로폼 상자에 흙을 다시 고르고, 갓난아기를 다루듯 조심스레 모종을 심어 주었다. 작은 텃밭을 만들고,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바닥까지 청소하니 허리가 뻐근하고 발가락에 쥐가 날 정도였지만, 하고 싶던 일을 마친 성취감에 마음은 충분히 흡족했다.

그날 이후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베란다를 들락거린다. 아기 방문을 살짝 열어 안부를 살피듯, 조용히 잠든 모종들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꼭 식탁에 올리지 않더라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행복은 사소한 일에서 곧바로 즐거움을 알아채는 것”이라 했다. 굳이 이런 명언을 빌리지 않더라도, 작은 모종들이 주는 행복감은 더없이 크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마음이 겨울처럼 얼어붙을 때도 있지만, 내 일상은 봄 햇살처럼 따뜻하고 환해지기도 한다.

오늘도 나는 베란다 앞을 기웃거린다.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작은 위로와 편안함을 듬뿍 안겨준다. 넉넉하게, 여유롭게 만들어 주는 착한 나만의 상추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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