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더미에서 건져 올린 삶의 빛
왜‘시끄러운 고독’일까. 제목이 말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소리 없는 아우성, 눈부신 어둠, 찬란한 침묵처럼 모순된 조합이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런 역설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
체코 작가 보후밀 흐라발. 낯설고 생경한 이름이다. 체코태생의 작가?
『변신』의 카프카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밀란 쿤데라 정도는 익히 알고 있지만, 흐라발은 나에게 처음이었다. 2차 대전 후 공산주의 체제 아래, 감시와 검열 속에서 살아온 그의 이력은 파란만장했지만, 이 작품은 체제 비판의 소설이라기보다는 작가 자신의 삶이 스며든 실존의 기록처럼 느껴졌다.
주인공 한탸는 35년째 폐지 압축기 앞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술에 젖어 살지만, 더럽고 눅눅한 종이더미 속에서 희귀한 책이나 유명화가들의 복제 본 그림을 발견하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기쁨으로 충만하다.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스토리다.”소설의 첫 문장이다.
읽는 순간 책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쥐들이 사각 사각대는 지하실, 파리 떼가 윙윙거리는 더러운 환경 속에서도, 한탸는 책을 발견하는 순간은 누구보다 행복하다.
그에게 책은 단순한 활자가 아니라, 캐러멜처럼 입 안에서 녹아 드는 단맛이고, 혼탁한 강물 속에서 반짝이는 물고기 같은 희망이다.
그의 고독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었다. 생각으로 빽빽하게 채워진, 오히려 풍요로운 고독이었다. 자신이 숭배하는 대상을 압축기로 파괴 해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던 모순된 삶을 살아간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의 삶을 내 삶에 겹쳐 보았다.
쓰레기더미 같은 일상 속에서도 반짝이는 순간은 분명 존재하듯이, 고단한 하루 속에서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 마음을 흔드는 글귀 하나가 커다란 위로를 건넨다. 그것이 우리 삶의 연꽃이고, 사막의 오아시스 아닐까!
주인공이 삶의 전환점 된 것은 현대화된 작업방식의 거대한 압축기를 마주하며 절망한다. 더 이상 자신만의 환상적인 세계에 더 이상 지켜낼 수 없음을 직감하며, 소박한 꿈을 간직했던 압축기 속에 자신을 던져 넣는다. 책과 함께, 자신이 사랑해온 고독과 함께.
흐라발은 고백했다. “내가 세상에 온 것은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쓰기 위해서”라며, 그가 쓴 책들 가운데 가장 사랑하는 책이라고도 했다.
짧은 130페이지의 분량. 그러나 책장을 덮고 나니, 그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나는 묻는다. 나의 고독은 어떤 빛깔일까?
혹시 나 또한 시끄러운 고독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속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