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간다는 것
명절이 다가오면 여전히 마음이 분주하다.
필요한 것들을 메모지에 적고, 배추김치는 미리 주문해 놓는다.
집안 구석구석 청소를 마친 뒤엔 조그마한 선물 품목도 빠짐없이 챙긴다.
K-마트 갔다가 노랗게 시든 잎사귀, 흙 잔뜩 묻은 총각무 5단,“와 싸다’ 엄청 망설이다 용기 내어 집어 왔다. 꼼꼼히 다듬고 씻어 네 시간 만에 담았다.
김치통 앞에 서서 “참 잘했다”스스로에게 미소 짓는다.
예전처럼 전을 부치고, 차례상을 차리고, 형형색색의 음식을 가지런히 놓았다.
예쁜 조카가 울산 시댁에 다녀오며 싱싱한 회를 가지고 와 추석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온 가족이 모여 웃음꽃을 피우고, 오랜만에 늦은 저녁까지 긴 대화가 이어졌다.
그렇게 북적이던 추석 명절도 어느새 지나갔다.
그리고 찾아온 고요 속에서 몸이 먼저 반응한다.
팔, 어깨, 허리, 무릎이 여기저기서 신호를 보낸다.
새우튀김을 하다 오른 손가락에 튄 기름방울들이 남긴 ,
화상 자국이 부풀어 올라 신경 쓰인다.
이제는 용량 초과가 되면 바로 반응하는 몸이다.
기름진 음식은 더디게 소화되고, 글을 쓰다 일어나 앉기를 반복한다.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뭘 꺼내려 했지?’ 하며 멈칫하는 일도 잦다.
예전에는 저 만치서 녹색 불이 깜빡일 때도 무작정 뛰어 건넜지만,
이제는 툴툴대며 다음 신호를 기다린다.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아 테니스를 접은 지도 벌써 3년,
의사는 “계속 치면 지팡이 짚게 될 거예요”라며 겁을 준다.
가끔 즐기던 볼링도 치고 나면 손목이 시큰거려 그만두었다.
운동으로 일상을 채우던 내가 그것들을 포기했을 때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철없는 감정이 들기도 했다.
정겨웠던 그들과 함께할 수 없다는 것과 이제 나이 들어
소외된 듯한 허전함이 한동안 마음을 쓰였다.
지금까지 누려오고 숙제처럼 해오던 모든 것들을 이제 하나 둘씩 내려놓는 것이 또한 나이 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95세인 어머니가 몇 해 전부터 사진이며 소유하고 있던 것들을 하나 둘 정리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내려 놓는 일’이 곧 ‘비워내는 지혜’라는 것을.
명절의 분주함이 지나고 나니,
이제 “나도 나이를 먹나 보다”힘듦을 싵토한다.
그래도 “아직은 젊잖아” 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백세시대의 70대라면 아직 인생의 황금기 아닌가.
그 잠깐의 위안에 웃음도 새어 나온다.
이곳, 우연히 찾아온 브런치 스토리에 문을 두드린지 벌써 넉 달이 지났다.
작가님들과의 대화 속에서 새로운 배움과 기쁨을 얻으며 마음을 채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늙음은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자만하지 않고, 나이 듦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려 한다.
그 속에서 나이에 걸맞은 일상을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지혜롭고 현명하게 익어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나이 들어 간다는 것’ 무엇을 잃어버리는 일이 아니라 삶의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리라.
하루하루가 저물수록, 내 안의 빛은 더 단단해 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