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멍하니 책장을 바라보다 보면,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책이 불쑥 손을 들어 보일 때가 있다. 그날은 『인생 처음 세계사 수업』이 눈에 들어온다.
최초의 현생인류로 시작하며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나는 뜻밖에도 이집트 문명 앞에서 눈길이 멈춘다.. 피라미드, 미이라, 람세스 2세… 이름은 익숙했지만 제대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 뒤로 며칠 동안 나는 마치 시간여행자라도 된 듯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다. 유튜브, 역사 프로그램, 『벌거벗은 세계사』까지 닥치는 대로 찾아보며 알고자 하는 묘한 갈증을 느낀다. 그러다 결국 『고대 이집트 해부도감』이라는 책을 주문했고, 나는 뜻하지 않게 이집트의 문명 속으로 빠져 들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이것이었다.
95%가 사막인 이집트가 “어떻게 3,000년이라는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을까!”
조선 500년, 로마 800년을 생각하면 놀라운 숫자다. 그런데 그 비밀이 ‘나일강의 범람이 축복’이었다는 사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다른 나라들에게 홍수가 재앙이었다면, 이집트에게는 매년 찾아오는 흑색 비옥토가 밀려오고, 그 흙이 생명을 잉태하고 또 문명을 키워냈다.
피라미드 이야기에 이르면 더더욱 경이롭다.
특히 매머드의 멸종시기보다 1000년 이전에 지어졌고,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와 같은 시기라니!
또 로마제국시대 이전에 이미 세워졌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는 230만 개의 돌을 쌓아 올려 만들었다는 사실, 돌 하나가 2.5톤이나 된다는 사실. 인간의 손이 이런 걸 해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건 ‘죽은 뒤에도 영원히 산다’는 믿음, 고대 이집트인들의 영생 사상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새롭게 알게 된 단어 ‘마아트Ma’at’ 정말 생소하다.
질서와 조화 정의를 상징하는 이 여신은 파라오에게 나라를 다스릴 책임을 묻는 존재였다.
문명이 오래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강력한 왕이나 거대한 건축물보다,
어쩌면 이렇게 보이지 않는 ‘가치’ 였는지도 모른다.
고대 문명이 혼란과 전쟁 속에서 번영할 수 있었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미이라의 제작 과정은 거의 충격에 가까웠다.
심장을 제외한 뇌와 장기를 제거한 자리에 나무수액을 채워 굳히고 나트론(소금)으로 바르고 40일 건조하고, 붕대로 감아 보관하는 과정이 영원히 계속될 삶을 믿은 마음에서 나왔다는 점이 정말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러다 나의 관심은 결국 한 인물 앞에서 멈춰 섰다.
세기의 미인, 클레오파트라 7세.
카이사르, 안토니우스와의 관계는 너무도 유명하지만, 나는 문득 엉뚱한 질문이 생겼다.
만약 그녀가 옥타비아누스를 선택했다면 이집트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역사는 이미 지나갔지만, 그녀의 선택에 얽힌 감정과 야망, 나라의 운명을 쥔 여성 파라오의 무게를 사유하게 한다.
책을 읽고, 영상을 보고, 또 글을 쓰며 깨달았다.
문명의 흔적을 따라가며 ‘왜 인간은 이런 것을 만들고 남기려 하는가!”
수박 겉핥기 식으로 흘려 듣던 이름들이 하나 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나는 그 이야기를 글 속에 남기고 싶어한다.
이렇듯 글쓰기는 나에게 지적 욕구를 일으키고 무엇이든지 제대로 깊이 있게 알아가고 싶은 마음을 선물한다.
이집트문명과의 동행은 이렇게 마무리해야 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아마도 역사가 끊임없이 흐르듯, 나의 궁금증과 호기심 또한 이어질 것이다..
오늘의 나는 분명 어제의 나보다 더 깊고 진지하게 바라 볼 것이다.
오늘은 이쯤에서 멈추지만, 나의 나일 강 여행은 아직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