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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머리 앤 Aug 29. 2024

굴곡진 인생의 리듬 속으로, 올레~!

          

처음 가는 유럽 여행지로 스페인을 선택한 이유는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 때문이었다. 곡선의 미학과 자연주의를 담은 그의 건축물을 직접 본다는 설렘에, 바르셀로나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난 가슴이 떨려왔다. 카사밀라를 시작으로 카사바트요, 구엘 공원을 거쳐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었다. 어딜 가나 몰려드는 엄청난 관광객을 보면서, '가우디 혼자 바르셀로나를 다 먹여 살리는구나!' 싶었다. 가우디가 지은 성당 안으로 들어선 순간, 나는 그만 말을 잃고 말았다. 그곳은 마치 숲속과 같았다. 웅장한 성당 내부를 받치고 있는 기둥 모두가 꽃이 핀 큰 나무였다. 높은 천정은 나뭇잎과 꽃, 그리고 그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성당 내부의 모든 벽면은 스테인드글라스로, 그 창을 통해 스며드는 다채로운 자연의 빛이 성당 안 내부를 신비롭게 만들었다. 묵묵히 내부를 둘러보던 남편이 다가오더니, 내 귓가에 대고 나직한 목소리로 "신은 있다!"라고 속삭였다. 무신론자인 남편의 입에서 그런 고백이 터질 정도로 가우디의 성당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건축물이었다.

이미 스페인의 여러 도시를 거치면서 이백여 년에 걸쳐 지었다는 엄청난 규모의 대성당들을 많이 보았었다. 그런데 그 모든 성당은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웅장했고, 성당 내부는 값비싼 형상과 벽화로 즐비했다. 중앙제단을 몇십 톤의 금으로 장식한 성당도 있었고, 그곳에서 신은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저 높은 곳에 앉아 있었다. 그나마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권력과 부를 가진 왕족만이 가능한 듯했다. 하나같이 그런 형식의 성당만을 짓던 시대에 어떻게 가우디는 그 모든 걸 무시하고 성당 내부를 숲으로 지을 수 있었을까? 평생을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살았다는 안토니오 가우디. 그가 만난 신은 자연의 숲과 닮아있었다. 숲은 어떤 사람도 밀어내지 않는다. 그렇듯 그가 지은 성당엔 모든 인간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신이 있었다. 한참을 그 신의 품에 안겨 울컥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훔치다가 난 성당을 나왔다. 나오는 통로에 가우디가 남긴 말이 쓰여있었다. 'To do things right, first you need love, then technique.' 뭔가를 제대로 하려면 먼저 사랑이 있어야 하고, 기술은 그다음이다. 그의 말을 본받아, '무엇을 하건, 사랑으로 하자!' 마음에 깊게 새기며 난 다음 여행지로 발길을 돌렸다.

“올레! 올레~!” 플라멩코 댄서들이 토해내는 격렬한 춤사위에 관객들이 환호성을 연발했다. 그러자 그 호응에 신이 난 댄서들이 더 격동적인 춤동작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무대 앞 제일 앞줄에 앉아 있던 나는 벌어지는 입을 어쩌지 못한 채 들고 있던 샹그리아 잔을 내려놨다. 그러고는 입을 벌리고 앉아 댄서들이 뛸 때마다 무대 바닥이 뿜어내는 뿌연 먼지를 샹그리아 대신 마셨다. 그렇게 입 다무는 것도 까맣게 잊을 만큼 난 그들이 이끄는 정열의 리듬 속으로 흠뻑 빠져들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댄서들의 눈빛을 보며 눈으로도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동작이 멈춘 순간에도 댄서들의 심장은 여전히 춤을 췄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으로 그 심장의 출렁임을 가늠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압권인 건 소리로도 춤을 춘다는 사실이었다. 손에 들린 캐스터네츠와 구둣발 소리로 댄서들이 다이내믹한 리듬을 펼치며 관객들의 심장을 쪼이고 펴기를 반복했다. 그건 마치 사물놀이의 휘모리장단과도 같은 리듬으로 내게 다가왔다. 한국에서 풍물패를 하던 시절 난 북을 잡았었다. 잔가락이 많은 장구와 꽹과리를 피하느라 잡았던 북인데도 휘모리장단을 몰아가기는 여전히 힘들었었다. 그런데 그토록 빠른 휘모리장단의 리듬을 플라멩코 댄서 혼자서 몰아갔다. 수년을 탭댄스도 춰봤었기에 그렇게 빠른 탭스탭이 얼마나 밟기 어려운지 잘 알고 있었다.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그 발소리를 내기 위해 몸이 떨리고 손끝이 떨리고 비 오듯 땀을 쏟았다. 그렇게 댄서들이 열정의 춤을 선보이는 동안 나의 심장은 그 빠른 스텝을 쫓아 미친듯 벌렁거렸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병원 CPR 팀에 저 댄서들을 넣으면 멈췄던 심장도 다시 뛰게 만들겠는데!'하는 거였다.

공연이 끝난 후 뜨거운 울림을 안고 나와보니, 4월인데도 극장 밖은 35도에 육박하는 온도로 엄청 뜨거웠다. 내가 헉헉거리자, 현지인이 말하길 이 정도는 봄 기온일 뿐 여름엔 45도를 훨씬 웃돈다고 했다. 왜 스페인을 '태양의 나라'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플라멩코의 본 고장인 세비야로 올 때까지 벌써 스페인의 여러 도시를 거쳐서 오는 중이었다. 그렇게 여행하며 내심 놀랐던 건 스페인이 지닌 엄청난 문화적 유산과 예술적 역량이었다. 스페인은 전역이 다 문화유산 같았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이, '이렇게 뜨거운 나라가 어떻게 이런 문명을 이룰 수 있었지?'였다. 사실 더위는 사람을 게으르게 만든다. 이 정도 더위면 신체 상태가 셧다운됐을 텐데, 어떻게 스페인은 16, 17세기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을까? 여행하며 품었던 그 의문의 답을 난 플라멩코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의 춤은 하와이에서 봤던 알로하 춤과는 달랐다. 플라멩코는 더위와 싸우는 춤이었다. 활활 타는 태양을 삼켜버리는 뜨거운 열정이 그들에겐 있었다. 그런 열정이 있었기에 저런 퀄리티의 문화유산을 남기지 않았겠나 싶었다. 과연 저런 열정으로 내가 삶을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 나도 뜨겁게 사랑하며 살아야겠다고 새삼 다짐하며 스페인을 떠나왔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라고 한 가우디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마치 직선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처럼 가우디의 건물에선 전혀 직선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문고리 하나, 층계 난간까지도 다 곡선이었다.

쉬운 직선을 놔두고, 자연의 선인 곡선을 그는 끝까지 고집했다. 과연 그의 말처럼 비행기 아래로 펼쳐진 세상은 산도 강도 모두 구불구불하게 흐르고 있었다. 딱 하나 인간이 만든 도로만이 직선이었다. 직선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인간에겐 직선 본능이 있다. 하물며 인생마저 고속도로처럼 곧게 펼쳐지길 우린 기대하곤 한다. 하지만 신의 선은 곡선이다. 그런 신이 나를 위해 직선의 인생을 계획했을 리 만무했다. 그러니 살다가 굴곡을 만나더라도 너무 피하려고 애쓰지 말자 싶었다. 험한 길이든 구부러진 길이든 적응하고 우회하며 살다 보면 그 굽이 안에 신이 심어둔 아름다운 삶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신이 만든 굴곡진 인생의 리듬 속으로, '올레~!'를 외치며 뛰어들 줄 알아야겠다 싶었다.

유럽에 가면 소매치기가 많다고 해서 여행 전 유튜브로 소매치기당하지 않는 법을 배워갔다. 소매치기가 나타날 때마다 현지 가이드가 큰소리로 외치면, "Pick pocket!"를 따라 외치며 가방을 꽉 붙들고 경계했었다. 그 결과 가방은 지켰는데, 그만 마음을 스페인에게 소매치기당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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