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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아블라 Apr 18. 2024

금요일에 우리는 항상 위스키를 마신다.

연인 사이에 데이트 신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썸을 타던 시절, 우리는 매일 만났다. 서로가 보고 싶어서 그런 것도 있고, 그냥 그때는 시간이 둘 다 많기도 했다. 남자 친구는 졸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생이었고, 나는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운영하던 쇼핑몰은 일주일에 한 2~3일 정도 촬영하고 업데이트만 하는 정도의 일만 하면 됐었기 때문에, 나는 나름 시간이 자유로운 편이었다. 더군다나 집도 멀지 않고, 둘 다 자차가 있던 우리는 매일 맛있는 것을 먹고 함께 시간을 보냈었다. 좋은 시절이었다. 


사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자 친구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준생 모드에 돌입했다. 문과 취준생답게 토익 시험을 보고, 자소서를 열심히 쓰고, 되는대로 여기저기 모든 회사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무렵 나는 크게 사기를 당했다. 일명 '삼촌'이라고 불리는 동대문 택배 아저씨가 내 돈과 물건까지 들고 중국으로 튀어버린 것이다. 알고 보니 도박 중독자로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고 한다. 지인 소개를 받아 함께 3년간 일했는데, 배신감과 무력감이 상당했다. 그 와중에 내가 돈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더 빨리 눈치를 챘더라면, 더 신경을 썼더라면, 아니 애초에 이렇게 한 사람을 믿지 않았더라면, 하는 자책감이 늘어났다.


고소도 하고, 고소도 당하고, 돈뿐만이 아니라 고객에게 배송할 물건도 들고 날랐기 때문에 화난 고객들까지 떠맡은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사비를 털어 상황을 수습한 뒤에 나는 그달 치 사무실 월세를 낼 돈이 없어 사장님께는 쪽지를 남긴 채 몰래 짐을 싸서 야반도주했다. 사장님에게 따로 연락은 없었다. 우리의 상황을 잘 알고 계신 상태였고, 사장님도 피해자 중 한 명이라 그냥 1달 치 월세 정도 안내는 걸 이해해 주기로 한 모양이다. 그렇게 첫 창업은 쌉쌀하게 마무리했다. 


남자 친구는 나에게 취업 준비를 함께 하자고 했다. 취업할 생각이 없고 영어 학원이나 해볼까 하고 고민하던 차에, 취업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수출 제의가 몇 번 들어왔었는데, 제대로 대비를 못 해 계약을 못했던 기억이 있어서 포지션은 해외 영업 쪽으로 잡았다. 준비하다 보니 해외 영업은 애초에 TO가 많은 자리가 아니었고, 대부분 남성을 선호하고 현직자 구성도 남성의 비율이 월등하게 높았다. 그래서 일부러 대기업에는 지원하지 않았다. 신입 지원자치고 나이도 많은 편이었고, 창업 경험도 있고, 오히려 연봉과 경쟁력이 조금 덜한 중견 기업에 지원하면 티오가 적어도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6개월 만에 둘 다 중견기업 취업에 성공했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는 항상 카페 데이트만 했다. 같이 가서 공부하고, 자격증 시험을 보고, 자소서를 쓰고, 서로 첨삭을 해주면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래도 중간중간 벚꽃도 보러 가고, 편의점에서 과자와 소시지를 안주로 소주를 먹으면서 낄낄거리기도 하고, 놀이터 그네에 앉아 밤새 모의 면접을 보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입사하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데이트 빈도가 많이 줄어들었다. 서로가 회사에 적응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예전처럼 매일 만나기에는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싸우는 날들도 많아졌다. 일방적으로 서운해하는 쪽은 내 쪽이었고, 남자 친구는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쩌다가 "어떻게 처음처럼 매일 만나겠어?"라는 말이라도 꺼내는 날이면 나는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남자 친구는 약속을 잡는 방식이 나와 다르다. 나는 보통 만나고 싶으면 데이트 신청을 미리 하는 타입이다. 예를 들어 남자 친구에게 "우리 다음 주 주말에 드라이브 갈래?"라고 데이트 신청을 해야 그날 만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 남자 친구의 경우 따로 만날 약속을 하지 않고 암묵적으로 모든 금요일과 주말에는 당연하게 연인과 보낸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다. 


이렇게 다른 성향 때문에 우리는 종종 문제가 발생하곤 했는데, 주로 목요일에 그 문제가 터진다.  

남자 친구는 내일 뭐 할래? 라고 물어보고, 나는 내일 친구랑 약속있는데? 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다. 그럼 주말에는 뭐할래? 라고 물어보면 나는 이미 주말에도 친구 혹은 가족이랑 약속이 잡혀있는 경우가 있었다. 남자 친구는 황당해하고, 나는 당황했다. 아니 만나고 싶으면 왜 미리 데이트 신청을 안 해? 라고 물어보면 당연히 금요일이랑 주말은 데이트하는 거 아니야? 라는 이상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다 보니 사귀고 나서 데이트 신청은 나만 하는 기분이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나는 사실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하는 것을 더 선호해서 크게 이 문제로 싸운 적은 없지만, 그래도 항상 일방적으로 데이트 신청을 하는 것은 내 마음을 서운해지게 만들었다. 


서로의 방식에 각자가 익숙해지기까지는 6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나는 마침내 주말은 암묵적으로 연인과 보내는 날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되도록 금요일에는 약속을 잡지 않는다.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날도 주말밖에는 없는지라 종종 주말 약속을 잡고는 하지만, 이제 말없이 약속을 잡지는 않고 약속 일정을 공유한다. 먼저 말해주면 남자 친구도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혼자 놀거나 한다. 남자친구도 이제는 이번 주말에 이거 먹으러 갈래? 여기 가볼래? 라며 가끔 데이트 신청을 한다. 술을 즐겨하는 우리는 일주일의 업무가 모두 끝나는 금요일에는 이제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항상 위스키 한 병을 마신다.


사실 우리의 다름은 시간이 해결해 준 것이 반 정도, 그리고 30대 중반이 되면서 놀 친구들이 줄어든 점이 반 정도인 것 같다. 예전처럼 약속 빈도가 높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주말을 서로와 보내게 된달까. 나는 그랬다. 돌이켜보면 이 성향의 차이로 서로 서운했던 기간들이 적어도 5년은 되는데, 둘 다 화를 내지 않아서 이 문제로 또 막상 싸운 적은 없는 것도 이 차이가 자연스럽게 풀리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성향이 달라서 생기는 문제라면, 싸워서 맞춰가는 것도 좋지만 시간에 맡기고 그냥 받아들여 보는 것도 하나의 답인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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