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크로드 Aug 20. 2024

향기와 씨앗을 보내지

그것은 바람이 하는 일이야 -헤세-


시월의 어느 청명한 날이었다.

가볍고 햇빛 가득한 대기는

가끔씩 변덕스러운 바람

불어올 때마다

움찔거리고 있었다.


들판과 정원 쪽으로부터는

가을 벌판의 모닥불에서

피어오른 푸르스름한 연기가

가느다란 선을 그리며

머뭇머뭇 다가오면서,


주변을 잡초와 어린 나무가 타는

매우 향긋한 냄새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을 정원에는

진한 빛깔의 과꽃 덤불,

때늦은 창백한 장미와

달리아가 피어 있었고,


울타리 이곳저곳에서는

이미 하얗게 빛바랜

잡초들 사이에서

새빨간 자작나무버섯

벌써부터 활활 타오르듯 돋아 있었다.


<헤르만 헤세> 크눌프 中









물이 물고기를 감싸듯이

그의 시선은

술패랭이꽃과 빨간 꽃 주변에 머물렀으며,


정확한 셈을 하는 것처럼

부지런한 기록자가

그의 머릿속에서

형식, 리듬, 운동 등을 기록했다.


<헤르만 헤세>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中









모든 사람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영혼을

다른 사람의 것과 섞을 수는 없어.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갈 수도 있고

함께 이야기할 수도 있고

가까이 함께 서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각자 자기 자리에

뿌리내리고 있는 꽃과도 같아서

다른 영혼에게로 갈 수가 없어.


만일 가고자 한다면 자신의 뿌리를

떠나야 하는데

그것 역시 불가능하지.


꽃들은 

다른 꽃들에게 가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향기와 씨앗을 보내지.


하지만 씨앗이 적당한 자리에 떨어지도록

꽃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그것은 바람이 하는 일이야.

바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이곳저곳으로

불어댈 뿐이지.


<헤르만 헤세> 크눌프 中














나는 콜로라도 덴버에서


야생화와 동물들과 함께 보낸


6월의 어느 날을 떠올려보았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 하는 프레리도그,


한국인을 처음 본 듯 놀란 토끼.


그리고 여름이 오는 듯한 소리.



관찰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선명하고 독특한 선인장 꽃잎.


딱딱하고 가시 박힌 외관 뒤에


감춰진 아름다움과 생명의 시작점.


척박한 땅에서도 꽃을 피울 줄 아는 생명의 기적.


시간이 흐를수록 더 불가사의한 형태.


생명력이 넘치는 삶의 은총과 아름다움에 대한


탐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자연을 통한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