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산책] 교토, ‘이노다 커피’
프롤로그
인턴으로 보낸 6개월 간의 짧은 회사 생활이 끝난 후 다음 장을 넘기기 전 작은 쉼표를 달아볼까, 하고 혼자 교토로 떠났다.
일주일 전 계획해 혼자 훌쩍 떠난 이번 여행의 목표는 첫째가 커피요, 둘째가 당고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제법 미식 기행에 가까웠다. 커피의 도시로도 유명한 교토에는 특히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킨 카페들이 많았는데, 특히 커피가 만들어지는 여러 공간들을 체험하고, 서로 다른 원두의 향을 음미하는 것을 즐기는 나로서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여행을 핑계 삼아, 저장해 둔 카페 곳곳을 부지런히 방문하며 교토의 수많은 커피를 맛보았고, 이렇게 커피를 매개로 경험한 교토는 나에게 짙은 여운으로 남아있다. 이번 ‘커피 기행’에서 손수 골라 방문했던 카페와 그곳에서 맛본 커피를 자세히 소개해 보려고 한다.
교토의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 로비에 짐을 맡긴 후 또 다른 ‘교토 3대 커피전문점’ 중 하나인 이노다 커피 본점에 방문했다.
이노다 커피는 1940년 교토에 처음 문을 연 이후 80여 년 간 지역 주민에 꾸준히 사랑받아 온 교토의 대표적인 커피 전문점이다.
들어가자마자 높은 층고와 살롱 풍의 고풍스러운 홀을 중심으로 하는, 옛스럽지만 세련된 인테리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곳곳에 푸릇푸릇한 나무가 보이는 안쪽 홀에서는 넓은 통창을 통해 은은하게 들어오는 자연광이 한가롭고 싱그러운 아침의 분위기를 극대화시킨다.
이노다 커피는 단순 카페보다는 클래식한 음식점의 분위기가 강하다. 그에 맞게, 간단한 디저트뿐만 아니라 나폴리탄 파스타, 오므라이스, 그리고 여러 종류의 샌드위치와 같은 식사 메뉴를 다양하게 골라 주문할 수 있었다. 일본의 전체적인 커피 문화가 그러한지는 알 수 없으나, 교토에서는 카페가 커피와 디저트만을 판매하는 곳이기보다는 ‘커피와 함께 가벼운 식사를 함께 즐기는 곳’인 듯했다.
아침 8시에 방문했음에도 부지런히 아침 식사를 하러 방문한 손님이 많아 10분 정도를 기다려 자리를 안내받을 수 있었다. 클래식 블렌드인 아라비안 펄 원두 커피와 프렌치토스트를 주문했다. 원두의 종류가 많아 선택이 쉽지 않았지만, 차분하고 우아한 분위기에 맞추어 커피도 ‘클래식’으로 가보기로 결정했다.
이노다의 아라비안 펄은 묵직한 다크로스트 커피이다. 끝에 연한 산미가 올라왔던 스마트 커피와는 달리 일관된 무게감이 짙게 다가오는 맛이었다. 커피를 맛보는 내내 존재감을 뽐내는 응축된 진한 향에, 일반 드립 커피이지만 마치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940년대 오픈 이래로 계속해서 사용되어 온 원두라는데, 옛날 가배는 다 쓰고 떫었다더니 예전에 사용되던 원두는 전부 다크로스트였던 것이 아닐까, 하고 실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노다의 프렌치토스트는 고소하고 은은한 단맛과 바삭함이 특징이다. 소위 '겉바속촉'의 정석과도 같은 이 프렌치토스트는 촉촉하고 계란 맛이 많이 나던 스마트 커피의 것과는 또 다른 결을 가졌다. 특히 모서리 부분을 먹을 때 바삭한 식감과 함께 퍼지는 풍부한 버터의 맛이 일품이다.
스마트커피의 프렌치토스트가 시럽을 뿌려먹는 방식이었다면 이노다는 설탕을 뿌려준다. 때문에 토스트가 눅눅해질 일이 없고, 끝까지 바삭한 식감을 유지하며 식사를 마칠 수 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의 좋은 점은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현지인의 일상을, 또는 다른 관광객의 여행기를 들여다 볼 수 있어 좋다. 이 날 아침 이노다 커피에는 여행을 온 한국인 커플과 어느 노부부, 나처럼 혼자 여유로운 아침을 즐기며 책을 읽는 젊은 여자와 테이블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일을 하는 듯한 남자 둘이 앉아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아침 이노다 커피에서의 멋진 아침 식사는 마치 교토에서 보낸 시간 전체를 농축해 놓은 듯했다. 커피 한 모금에 담긴 깊은 풍미와 깊은 풍미의 프렌치토스트, 그리고 창밖으로 스며드는 부드러운 아침 햇살까지, 모든 순간이 클래식의 정수를 오롯이 느끼게 해주었다. 짧지만 진한 여운을 남긴 이노다 커피로의 방문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에 작은 위로와 영감을 더해주었다. 언젠가 또 다른 계절에, 또 다른 커피 한 잔을 위해 이곳을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으로, 나는 천천히 카페를 나섰다.
[아트인사이트 기고글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53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