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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솔 Nov 10. 2024

가진 능력에 비해 욕심이 많다는 건

무엇이든 다 잘하고 싶고, 완벽하고 싶다는 생각. 열정과 욕심 사이

나의 10대, 학창시절 돌아보기


  나는 굉장히 기복이 없는, 나름 잔잔한 학창 시절을 보낸 편이다. 물론 수포자가 될까 말까 하던 순간에 부모님 덕으로 공부를 놓지 않고 현역으로 연세대에 들어온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확실한 건, 머리는 나쁘지 않은 편이라는 점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부족한 것 없이 학업적으로 지원을 받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의 한 일반고등학교에서 내신을 잘 챙겨서 상위권 대학에 진학했다. 그렇지만 유튜브에 나오는 N수생의 다이내믹한 인생썰, 정말 지독했던 수험생활, 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언가를 냅다 파본 경험, 나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 등등 파란만장한 학창 시절을 묘사할 수 있는 다양한 수식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평범하게, 인생 전체로 따지고 봤을 때 그렇게 큰 업 앤 다운이 없는, 어떻게 보면 지루하기도 하고 잔잔하기도 한 수험 생활의 시간을 보냈다고 볼 수 있다. 


  중학교 때는 자주 어울리던 친한 친구 중에 벌써부터 고등학교 2학년 수학 선행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길래, '헉 이걸 왜 지금 하고 있어?'라고 물어보니까 자기는 외고 입시를 준비하고 있어서 이렇게 해야 된다고 말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때는 특목고, 외고, 영재고 이런 거 도대체 뭔지도 모르고 왜 다들 몇 년씩 준비해서 그 학교를 가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 자체를 몰랐다. 얼마나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되는지, 특목고에 진학하는 것이 청소년 시절의 가치관이나 인생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인지하지 못하던 시절이다. 그리고 내가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지, 내가 잘하고 못하는 건 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고, 그걸 고민해 보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참 다행인 건 그나마 내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그전보다는 약간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제대로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는 건데, 이때부터는 그나마 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던? 공부를 시작하면서 정신적으로도 좀 더 성숙해지고 지랄발광 사춘기도 조금씩 잔잔해지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씩 바뀌어 왔던 것 같다. 



어떻게 달라졌나?


 지금의 나를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의 나와 비교해 본다면, 나는 정말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성장했다. 정말이다. 단순히 공부량이 늘었다는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넓이가 굉장히 넓어졌고 생각도 정말 깊어졌으며 자기 객관화와 자기 통제력이 많이 늘었다. 이러한 생각은, 종종 대학 생활을 하면서 '과거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지..' 돌아보는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떤 날은 길거리를 지나다니면서, 지하철에 같이 탄 사람들을 보면서, 소셜 미디어와 매체에서 소식을 접하면서 등등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럴 때마다 타인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되는 것 같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자기 객관화가 잘 되는 편이다. 자기 객관화를 어떻게 잘하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현재까지도 계속 고민 중이지만, 이러한 판단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자아성찰'을 굉장히 자주 하기 때문인 듯하다. 생각이 지독하게 많고 복잡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된 건 아니다) '자아성찰'이라는 것은 별개 아니다. 그러니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받아들이면서 '나'라는 사람은 어떠한 경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어떠한 성격이고,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며, 어떨 때 기분이 상하고, 무엇이 부족하며 더 나아지고 싶은지 등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쌓이다 보면 그게 바로 자아성찰이 되는 것이다. 생각이 누적되면서 점차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더욱 선명해지고, 이는 곧 삶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critical 한 요인이 된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나는 '욕심 많은 완벽주의자'


   그 결과, 나는 깨닫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언제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나는 정말 정말 욕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내 안에 욕망이 드글드글해. 그런데 같은 욕심, 욕망이라도 무엇을 바라고 소망하는지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면, 나같은 경우에는 또래 20대들이 직접 돈을 모아서 명품이 투자하는 경향성을 이해를 못한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물론 존중하고, 이해도 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내가 이러한 것을 추구하지는 않는 것 같다. 심지어 20대 여자 대학생의 주된 관심사인 '옷'...에도 내가 신경을 많이 안 써서 (지금은 그나마 괜찮아진 편이다) 어머니께서 대신 골라주신 옷으로 1학년 생활하고 그랬다. 그런데 이렇게 되니까 독립성이 부족해지는 것 같아서 (자꾸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좀 스스로 예산을 확실히 잡고 어느 정도는 옷에 투자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인싸'에도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사실 학창시절 동안 친구가 그렇게 많았던 편도 아니고, 주변에 항상 같이 다니는 사람이 많다고 그게 꼭 좋은 건지도 잘 모르곘어서 (그리고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매우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없으면 절대 안 되는. 혼자 생각하고 혼자 밥 먹고 혼자 노는 그 모든 시간이 소중하다. 스스로를 재정비할 수 있게 해준다.) 그냥 혼자 다녀도 상관없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좋긴 한데, 내 옆에 많은 사람을 두려고 이것에 노력을 기울이는 편은 아니다. (좀 재수 없을 수도 있지만, 그냥 내 할 거하고 주변에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고,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게 대화하려고 노력하다보니 '너 인싸다', '주변에 친구 진짜 많다'라는 소리를 대학 와서 종종 듣곤 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과 친해지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인간관계에 있어 기대를 줄이고, 초점을 밖이 아닌 안으로 가져오니 인간관계는 저절로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자신의 전공, 흥미와 관심사에 몰두하고 거기서 끝을 보는 사람들을 보면 굉장히 큰 부러움을 느끼고, 개인적으로 그런 사람들을 정말 존경스럽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내 우선 순위와 가치가 이런 쪽이라서 그럴까? 대학 동기들 중에 동아리나 행사 이런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정말 정직하고 열정적으로 학문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중에 정말 크게 될 것 같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인간적으로 멋있다.' 등의 생각이 든다. 물론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 노력 중이긴 하다. (그렇지만 이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ㅠㅠ)


그리고 현명한 사람, 똑똑한 경제관념을 가진 사람, 명확한 근거와 신념이 있는 사람, 아는 것이 많은 사람 등을 보면 정말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렇듯 사람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른 것 같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하나를 고르지 못하겠어


진지하고 무거운 고민을 하지 않고 아무거나 막 정하는 것도 아닌데, 이루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다르게 말하면 욕심이 너무 많아서) 어느 것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겠다. 나같은 사람에게 '선택과 집중'을 하라는 말은 정말 하나의 숙제처럼 느껴진다. 때로는 우선순위를 깔끔하게 딱 정하지 못할 때도 있고, 현실적으로 내 능력으로는 전부 책임지지 못할 일들을 놓고 어느것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할 때도 있다. 지금은 교육학과에 재학 중이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잠깐이나마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꿈들, 현실적으로 당연히 어려울 거라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 놔버리지 못하고 계속 가지고 있는 꿈들이 많다. '내가 지금은 이것에 집중하고 있지만, 인생을 길게 봤을 때 이것도 할 거고, 몇 년 뒤에는 이것도 할 거고 하는 꿈들..' 


'하고 싶은 게 없어요','꿈이 없어요'하는 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이해는 정말 되었는데, 내 자신의 상황과 같다고 공감해본 적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순간에 항상 하고 싶었던 게 한 가지 이상은 꼭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 이것저것 찾아보는 것도 잘한다. 대학생이 된 지금은 전공과 주변 환경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아 어느 정도 조금씩은 길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새싹 수준이다) 이것도 몇 년 뒤에 완전히 변해버릴 지도 모른다. 일관성이 하나도 없어 한 치 앞도 예상이 되지 않았던 나의 꿈들은 이미 지나버렸거나 놓아준 꿈이더라도 모두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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