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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니가 어떻게 예쁘다는 거야?

한 반에 겨우 20명을 꽉 채운 시골 중학교를 다녔다. 영어선생님이 한문도 가르쳐야 할 정도로 학생수가 적은 학교였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한문 숙제가 나왔다. 자신의 이름 석자에 해당하는 한자와 뜻풀이를 알아오라는 것.


집에 있는 책이라곤 뒷 표지가 찢어진 '그리스로마 신화'와 한자 옥편사전이 전부였다. 다행히 한문 숙제를 혼자서 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이름에 해당하는 한자 의미를 발표시켰다. 내 차례가 되었다.


"제 이름의 의미는 보배 '진'에 예쁠 '아'입니다."

예쁘다는 말을 하자마자 반 친구들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개구쟁이 남학생이 소리쳤다.


야! 못생긴 니가 어떻게 예쁘다는 거야?

아이들은 이 소리를 듣고 더 꺄르륵 해댔다.


이 순간이었던 것 같다. 내 이름에 대한 일말의 미운 감정, 고운 감정 및 모든 감정이 사라졌다. 내 이름이 싫은 것도 아니었다. 내 이름을 들을 때마다 난 차가운 무감각만 느껴질 뿐이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하듯, 난 내 이름조차 사랑할 수 없었다.


가끔씩 너무 우울할 때는 엄마를 탓한다. 나를 지우려고 논둑을 굴렀을 때 나는 어떤 충격을 받았을까? 엄마가 내가 딸이란 것을 확신하고 아부지와 주변 마을 사람들로부터 받을 치욕을 감당해야 한다는 조바심과 두려움을 열 달 동안 품고 살 때 나는 어떤 충격을 받았을까?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을 부러워하는 이 떨칠 수 없는 마음은 그때 내가 받았던 충격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닐까?


어느 날 엄마한테 전화가 걸려오기 전까지, 38년 동안 난 내 이름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조차 못했다.


"네 이름 좀 바꾸자. 이름 잘 짓는 사람한테 가봐서 물어봤는디, 네 이름이 안 좋단다. 결혼을 해도 남편도 일찍 죽고 아이들도 일찍 죽는 이름이다네."


30살 문턱을 넘으면서 엄마는 항상 사귀는 남자는 없는지, 언제 결혼할 건지 만날 때마다 전화할 때마다 넌지시 물어본다. 8년을 기다린 끝에 결국은 내 이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작명소에 가서 물어본 것이다.


그때 알았다. 내가 내 이름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흔쾌히 동의했다. 물론 새로운 이름을 만들고 개명에 필요한 모든 돈은 엄마가 지불한다는 조건으로.


하지만, 미국 유학과 시기가 맞물려 결국 공식적으로 이름을 바꾸지 못했다. 이미 유학 서류와 비자가 나의 공식이름으로 나왔기에 짧은 기간 동안 개명된 새로운 이름으로 그 모든 서류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다. 작명가에게 연락을 해 개인 사정상 개명을 취소해야 한다고 알렸다.


"공식이름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새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해. 새 이름을 녹음해서 계속 듣고 다니고, 그러면 얼굴도 진짜 예뻐져. 알았지? 꼭 그렇게 해라!"


작명가는 엄마 쪽으로 먼 친척뻘이라 나에게 반말로 충고했다. 처음엔 다짜고짜 만나보지도 않은 사람에게 반말하는 사람에 허겁했지만, 예뻐진다는 말에 작명가의 충고를 따랐다. 새 이름을 불러주면서 '너 정말 예뻐'라는 말을 1분 정도 녹음했다. 출근하러 갈 때와 퇴근할 때 항상 듣고 다녔다. 처음에는 사족이 오그라들어서 듣기가 많이 거북했지만, 참고 계속 들었다.


미국 대학원 첫 학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교수님은 본인 이름에 숨은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난 내 이름 한자 뜻풀이로 시작했다.


"하지만 전 제 이름이 싫어요. 중학교 때 친구들이 예쁘지 않은 네가 어떻게 예쁘냐고 놀리면서 싫어하게 됐어요."


나의 이야기가 끝나자 교수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나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씀하신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던 넌 예뻐. 네 이름도 예쁘고. 절대로 다른 사람이 너를 평가하지 못하게 해, 알았지?"


생전 처음 보는 미국인 여교수에게 얼떨결에 받은 이 말 한마디가 너무 낯설었다. "감사합니다"라는 대답으로 상황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교수님의 진지한 얼굴과 목소리는 아직도 생생하다. 나보다 나란 존재를 더 귀중하게 여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놀라울 뿐이었다. 나를 낳고 키워준 엄마도 나를 예쁘다고 말해준 적도 없고, 세 살 위 언니는 내가 아귀를 닮았다고 놀리기만 할 뿐이었다.


대학생때 언니는 나의 외모는 한국에서는 먹히지 않고 오히려 외국인들에게 먹히는 외모니 외국인과 결혼하는게 더 쉬울것이라는 말을 해 주었다. 그 시기 한국 외모지상주의를 경멸하면서도 예쁨측에 끼지도 못하는 나의 외모를 경멸하며 살았다. 그래서 언니의 충고가 귀에 확 박혔다. 미국인 남편과 결혼하게 되면서 언니의 충고가 정확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남편은 달랐다. 내 이름의 의미가 뭐냐고 물어봤을 때 난 무신경하게 내 이름 한자 뜻을 알려줬다. 그 후, 남편은 날 자기 보물이라고 불렀다. 갑자기 어느 날 새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했을 때 남편은 약간 주저했지만 나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난 네 예전 이름도 좋아. 하지만, 네가 더 좋아하는 이름으로 불러줄게."


시어머님은 날 항상 예쁘다고 불러준다. 시어머님의 친적들도 모두다 내가 예쁘다고 생각한다며 자신만의 편견이 아니라고 한다.


남편은 계란형으로 판박이 같은 성형수술을 한 한국 가수나 연예인들을 보면 역겨워 한다. 여자들이지만 얼굴형이 외국 남자 얼굴형이랑 똑같기 때문이라고. 내 얼굴은 크고 사각이라 싫다고 하면, 네 얼굴은 몇백년 전 한국에서는 미인형이었다며 오히려 화를 낸다.


"넌 귀엽고 예쁘지만, 그래서 내가 널 사랑하는 게 아니야. 여기에 있는 것이 나에겐 가장 중요해"

남편은 나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만지며 사랑을 고백한다.


못생겼어도 예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아니, 못생겼어도 내 얼굴에 주눅들지 않는 자신감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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