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켓과 월남쌈 사이의 거리

by 사이에 선 사람

퇴근길이었다.
하루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에 조금은 축 늘어진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아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종이호일이랑 월남쌈 좀 사 올 수 있어?”

단순한 부탁이었다.
하지만 거기엔 오늘 하루를 부지런히 살아낸 누군가의 체력 소진과, 식탁 위에서 작게나마 성취를 이루려는 의지가 함께 들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알겠어”라고 답했다.

고구마를 삶았단다.
많이 남아서 고로케를 만들고, 남은 걸로 월남쌈을 해 먹겠다고 했다.
두 가지 버전으로 음식을 준비하겠다는 건, 요리에 마음을 쏟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마트에 가는 건 귀찮다고 했다.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사실 나도 귀찮았다.
퇴근 후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같이 산다는 건, 그런 귀찮음을 조금씩 나누는 일이기도 하다.
집에 가서 가방 던져두고 다시 나올 수도 있었지만, 그냥 가기로 했다.

첫 번째 미션은 종이호일.
다이소에 있다고 했다.
지금 쓰는 제품의 사진을 보내줬다.
가는 길에 머릿속으로 이미지는 떠올렸지만, 막상 가보니 똑같은 건 없었다.
비슷한 걸로 골랐다.
비슷하다는 말에는,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믿음과 “혹시 틀렸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섞여 있다.

두 번째는 라이스페이퍼, 그러니까 월남쌈.
마트 2층이라고 했다.
예전엔 장 보며 위치를 확인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망설이다가 점원에게 물었고, 매진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이럴 땐 두 갈래 길이 있다.
그냥 포기하거나, 더 가보거나.
500미터 떨어진 GS후레쉬에 가보아야 한다.
와이프에게 전화를 해보았더니 그냥 오라고 한다.

“그냥 오세요.”
“그냥”이라는 말에는, 생각보다 많은 배려가 담겨 있을 때가 있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국수나무 옆 슈퍼에서 월남쌈을 찾았다.
사진을 찍어 보내 확인받고, “맞다”는 말을 들은 후에야 결제했다.
그렇게 오늘의 미션은 마무리되었다.

들어오면서 생각했다.
같이 산다는 건 결국, 계속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내가 생각한 '그것'이 맞는지 묻고, 상대가 원한 '그것'이 맞는지 되물으며 살아가는 일.
아내는 남편에게 뭘 부탁할 때 늘 사진을 요구한다.
나도 가끔 헷갈리면 영상통화를 걸어 확인받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더 정확해지고, 조금 더 다정해진다.

의사소통은 관계의 골조다.
부부 사이도 이럴진대, 낯선 사람과 일하는 사이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누군가에게 시킨 일이었지만, 결국은 내가 한 일이니까.
확실히 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것.
그게 함께 사는 사람의 태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