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추억했지만, 아름다운 기억은 아니다.
밀리의 서재를 둘러보다가, 단순히 표지와 제목이 마음에 들어 책장에 담아뒀던 책.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거의 1년이 넘게 안 읽다가 어느 날 우연히 읽게 된 책이 바로 <힐빌리의 노래>입니다.
출판사 서평도 칭찬 일색이고, 빌게이츠 및 소설가 김훈 등등의 거장들이 추천한 책인데, 어떤 부분이 그렇게 감명 깊었던 건지는 개인적으로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가난을 미화하지도 추억하지도 않는 듯한 담담하면서도 현실적인 회상.
불우한 환경에 무너지지 않고, 끝내 성공한 실리콘밸리 사업가이자 미국 부통령 후보이기도 한 J.D밴스의 인간승리.(개천에서 용 나는 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통하는 소재인가 봅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이 에세이의 흥행 요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J.D 밴스의 인간승리 이야기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감명 깊게 다가오지 않았나 싶네요.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가난한 학창 시절을 보낸 입장에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잊었던 유년시절의 스트레스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거든요. 가난이 점철된 학창 시절은 절대 즐거울 수가 없었음을, 나는 그저 과거를 미화하고 있었음을 한 번 더 깨달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힐빌리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가난한 시골에 사는 저학력 백인육체노동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 에세이의 주인공인 J.D 밴스는 전형적인 힐빌리의 가정에서 태어난 남자였습니다.
밴스의 어머니는 방탕해서 여러 남자들과 사귀고 결혼을 하고, 밴스에게 감정적인 폭력까지 가했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주인공을 사랑하긴 했지만, 다분히 폭력적이면서도 섬세한 분들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밴스는 이 시절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무덤덤하게 사실을 서술합니다.
어떻게 이런 가정환경 속에서, 밴스가 무너지지 않고 번듯한 사회인이 되었는지 놀라울 뿐입니다.
어른이 다 된 지금에서야,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무덤덤하게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그 시절에는 굉장히 상처를 많이 받고 방황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들이 많았거든요.
에세이의 주요 핵심 내용은, 밴스가 예일대학교에 입학하기까지의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책의 약 2/3까지)
밴스의 어린 시절 여러 가지 이야기와 일화들을 보면서, 가난은 절대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폭력은 더더욱 아름다운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따금 가다 한 번씩 내게 달려드는 통계학적 가능성과 싸우고 있다. 통계상 내가 교도소에 들어가 있거나 네 번째 사생아의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어야 맞는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편하기도 하다.
불우한 환경, 가정폭력, 학교폭력 등 범죄자나 밑바닥 인생의 과거들은 항상 전형적인 패턴을 보입니다. 그 패턴은 통계로 집계되며 우리의 편견이 되기도 하죠. J.D 밴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통계적으로 그를 판단한다면, 그는 분명 예일대학교 출신의 실리콘밸리 사업가가 되진 못했을 겁니다. 건달이나, 소일거리를 하며 그저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을 부랑자가 되었을 확률이 훨씬 높죠.
하지만, 밴스는 이러한 환경을 이겨내고 멋지게 자신의 인생을 가꾸어낸 뒤에, 이렇게 힐빌리의 삶을 추억하는 책까지 출간하며 인간승리를 일궈냅니다.
스스로 굉장히 잘 풀린 케이스라 말하며, 어느 것 하나도 잘 풀리지 않았다면 자신도 여느 힐빌리들처럼 살았을지 모른다고 하지만, 책으로만 느낀 J.D밴스는 결국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잘 일궈냈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이따금씩 그 시절의 트라우마와 자신에게 내재된 폭력성 때문에 골치 아파하긴 하지만, 밴스는 스스로 잘 억제하며 삶을 잘 꾸려내고 있는 듯합니다.(최근의 그의 정치적 성향과 행보는 논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힐빌리의 노래에 적힌 내용에 한해서만 그를 판단하고 싶습니다.)
노력 부족을 능력 부족으로 착각해서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이건, 제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에 공부를 안 해서 그저 그런 지방대에 갔다가, 편입을 통해 남들이 좀 알아주는 지거국에 입학했습니다. 저는 편입을 하기 전까지, 아예 공부머리가 없는 멍청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편입이라는 조그만 성공을 통해 나름대로 공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저 공부를 하지 않았을 뿐, 하면 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걸 깨달은 덕분에, 저는 편입 후 학점은 평범했지만 주눅 들지 않고 자격증 공부에 도전하여 지금은 5개의 기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이 덕분에 저는 요즘에는 어딜 가나 똑똑한 사람 같다는 이미지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조직생활을 하고 있습니다.(그리고 3개월 만에 그 이미지는 와장창)
어쨌든,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 한 들 공부를 하지 않고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을까요?
그저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인데 내 능력밖이라고 한계를 지어버린다면, 내 인생은 그 한계의 울타리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끝까지 노력해 보고, 그래도 안 되었을 때만이 자책을 할 수 있습니다.
설렁설렁 노력한 사람은 자신을 자책할 자격도 없습니다.
자책은 노력을 끝까지 하고 난 후에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최후의 순간에만 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끝까지 노력한 사람은 알게 될 겁니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자신을 자책할 필요가 없음을.
왜냐면, 최선을 다한 나 자신이 부끄러울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가난은 그 가난이 끝나고 나서도, 지나간 과정을 미화시키진 않습니다.
아무리 현재 부유하더라도, 그 가난이 추억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닐 때는 한창 노스페이스 패딩(일명 등골브레이커)이 유행했던 때였는데, 저는 그 패딩을 당연히 가질 수 없었습니다.
저는 패딩 없이 그냥 교복만 입고 등교하는 학생이었습니다.
다행히, 워낙 열이 많은 체질이라 춥진 않았지만.. 어머니는 마음이 좀 속 쓰렸을 것 같습니다.
그냥 꾸역꾸역 값싼 패딩이라도 입고 다니는 것이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일이었을 텐데.. 그때의 제 고집이 참 아쉽고 한심합니다.
가난은 사소하게 사람의 일상에 침범하여 마음을 무너뜨립니다.
그것은 사람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서, 향기가 아니라 독기를 품게 만듭니다.
제가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계약직으로 일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저 돈을 벌고 싶은 독기 때문이었습니다. 최저시급이나 다름없지만, 내 손으로 벌어들인 월급은 정말 달콤하더군요.
그 월급으로 가장 먼저 한 것은, 필요도 없는 옷을 억지로 사 입은 것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마음에 드는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지 못했던 아픔을 해소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옷을 사 입었다 하더라도 그때의 아픔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더군요.
상처는 제때 치료해야 하는데, 이미 곪아버린 상처는 흉터로 남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저자인 J.D밴스는 작품의 제목을 힐빌리의 "노래"라고 아름답게 칭했지만, 이건 너무 아름답게 표현된 제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분명,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사업가가 되기까지 그는 엉망진창인 마음을 간신히 부여잡고,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살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이 작품은 노래라는 아름다운 제목으로 불리기보다, 저의 아픔을 헤집는 비명과도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가난은 절대로 노래처럼 흥얼거리며 견뎌낼 수 있는 추억이 아닙니다.
그것은,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절규의 과정이며, 다시 회상하고 싶지도 않은 기억입니다.
제가 만약, J.D밴스의 입장에서 그 시절에 대한 에세이를 썼다면 저는 아무리 출판사가 말려도 <힐빌리의 비명>이라고 제목을 지었을 것 같습니다.
제 힘들었던 과거를 노래로 미화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느 자기계발서처럼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흐름이나 특유의 감동적인 장면 같은 것은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사실적이고 생생한 이야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을 이겨낸 저자의 이야기를 보면서,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