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소설가들의 고뇌, 좌절, 희망, 생각 등을 읽고 싶다면..
세상에는 정말 수많은 소설들이 있지만, 우리는 그 소설들을 다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독서가 취미인 저도, 일을 하고 개인 공부나 다른 활동을 하고 나면 일주일에 1~2권 읽기도 벅찹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설을 고를 때도 신중하게 고릅니다. 보통, 다른 사람들이 많이 읽었거나 시대를 불문하고 계속해서 사람 입에 오르내리는 책들을 선택하여 읽게 됩니다.
사실, 세상에 나온 수많은 소설들은 몇 년의 세월도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사람들의 기억에 잊힙니다. 하지만, 몇몇 소설들은 잊히지 않고 시대의 풍파 속에서도 굳건히 남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명작"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입니다.
<작가란 무엇인가>는 이 명작을 남긴,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한 책입니다.
책은 총 3편으로 되어 있는데, 1편부터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들었을 법한 작가들이 나옵니다.
<노인과 바다>로 유명한 어니스트 헤밍웨이,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무라카미 하루키부터 해서, <백년동안의 고독>을 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장미의 이름>을 쓴 움베르트 에코 등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아니 소설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작가들이 나옵니다.
이 작가들이 어떻게 작업을 하고, 소설의 주요 장면이나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구상했는지, 자신만의 작업루틴 같은 것은 무엇인지 등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일반적인 인터뷰식 책이지만, 생각보다 질문이 구체적이고 작가의 대답도 상세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은 개인적인 꿈이 있기에,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인상 깊은 구절들이 꽤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저에게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간단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 소설가란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말하겠다.
2. 소설가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소설을 쓴다.
3. 평생에 걸친 글쓰기라는 헌신만이 나를 소설가로 만든다
책의 도입부에 김연수 작가님의 추천사가 먼저 등장하는데, 감명 깊은 구절들이 좀 있었습니다.
조금 의문이었던 것은, 소설을 쓰는 행위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소설가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하는 것일까요? 그 내용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알 거 같았습니다.
세계, 인물, 사건 등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소설가는 자신의 내면에 끊임없이 접속하여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입니다.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만나는 여정이기 때문에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설가는 결국, 자신이 써 내려가는 작품에 자신을 어느 정도 담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문장을 수정하고, 사건과 플롯, 인물까지 수정하거나 어쩌면 소설 전체를 다시 뒤집어엎는 퇴고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소설가들에게 자기 자신을 뒤집는 행위와 같을지도 모릅니다.
그 인고의 과정 속에서 소설가가 마주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쓴 소설 속의 인물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그렇기에,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을 쓰면서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인 것이죠.
그 과정은 집필을 그만두지 않는 한, 평생에 걸친 헌신적 행위가 될 것이며, 그 헌신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만이 소설가가 될 것입니다.
책을 쓰는 데 있어서 좋은 점은 깨어있으면서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
저는 아직 제대로 된 소설 한 편 써본 적은 없지만, 습작을 쓰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다.
내가 설정한 등장인물들이 내 손을 따라서 사건을 마주하고 감정의 변화를 겪는 것.
그 감정의 변화들은 내가 손으로 창조하는 순간이기에,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꿈에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건들이 나에게 다가오지만, 소설은 반대로 내가 사건을 만들어서 나의 등장인물들이 겪게 합니다. 꿈과 소설은 언뜻 보면 상반되는 듯 하지만, 결국은 맥락이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둘 모두 내 의식이 사건을 겪고 이야기를 경험해 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세상과 등장인물을 창조하여, 그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과정은 꿈을 꾸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것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즐거운 창조과정이자 유희이기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렇게 말한 게 아닌가 싶네요.
1. 저는 이야기의 궤적에 대한 감을 갖고 있어서, 책을 시작하기도 전에 첫 문장뿐만 아니라 마지막 문장을 미리 구상해놓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대개는 소설이 진행되면서 이야기가 계속 바뀌어 바뀌어 가지요. 출판된 제 책 중 어떤 것도 구상한 대로 만들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2. 미리 모든 것이 계획된다면 그것은 그리 흥미롭지 않을 겁니다. - 폴 오스터 -
소설을 직접 써보게 되면, 생각보다 막히는 순간이 많이 오고 막막합니다.
처음에 구상한 이야기의 주제, 등장인물의 성격, 사건들이 뒤바뀌기도 합니다.
저는 이것이 소설 쓰기에 있어서 별로 좋지 않은 습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설 쓰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늘어나기도 하고, 계속해서 뒤집다 보면 작품 하나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폴 오스터 같은 거장도 소설을 쓰면서 계속해서 수정을 하고 처음 구상과 달라진다고 하니 묘하게 위안이 되었습니다.
작가가 기법에 관심을 가진다면 그는 수술이나 벽돌 쌓기를 해야겠지요. 글을 완성하는 데에는 어떤 기계적인 방법도 없으며 지름길도 없습니다. 이론을 좇아 글을 쓰는 젊은 작가는 바보라고 해야겠지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통해 스스로 배우도록 하세요. 사람들은 실수로만 배웁니다. 훌륭한 예술가는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충고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하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는 최고의 허영심을 갖고 있지요. - 포크너 -
포크너의 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소설 쓰기에는 어떤 지름길도 없다. 요행을 바라지 말고, 그저 묵묵하게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이 정론이다."
소설을 쓰면서 이것저것 헤매는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스스로 배워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렇기에, 소설가들은 습작들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습작들은 모두 소설가들의 "실수"인 것이죠.
소설은 결국, 소설가 본인이 써 내려갈 수밖에 없는 작품이기에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들을 수도 있지만, 그 충고는 그저 참고용일 뿐입니다. 소설 쓰기는 생각보다 더 고독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기에,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중요합니다. 스스로 최고의 작품을 쓸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자만심, 거만함, 오만함 등으로 표현될 수도 있는 허영심을 통해서, 소설가는 자신만의 자신감을 잃지 않고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거 같습니다.
일어난 일로부터,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알고 있거나 알 수 없는 모든 것으로부터, 재현이 아니라 창작을 통해 살아 있는 어떤 것보다 더 진실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지요. 당신은 그것을 살아 있게 할 수도 있고, 만일 당신이 충분히 잘할 수 있다면 그것에 영원성을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글을 쓰는 이유이고,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
헤밍웨이를 인터뷰한 조지 플림턴이 질문합니다.
"창조적인 작가로서 예술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왜 사실 그 자체보다는 사실의 재현을 선택하셨나요?"라고 말이죠.
위 인용구는 헤밍웨이의 대답입니다.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는 사실보다 더 새롭고 현실적으로 창조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1년을 영화는 1분 만에 나타낼 수도 있으며, 소설은 한 페이지만으로 함축할 수 있습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상의 연속을 생략해 버리고, 중요한 사건들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면서도 생경하게 나타낼 수 있는 것이죠.
그렇게, 기록으로 남기는 순간에, 그 순간은 영원성을 띄게 됩니다.
그 기록이 영원성을 띄는 순간은 단지 물질적으로 남아있기 때문은 아닌 거 같습니다. 헤밍웨이가 말하는 영원성은 내가 쓴 소설, 영화가 세상에서 전부 사라지게 되더라도, 내 기억 속에는 그 순간이 뇌리에 박혀 내가 살아있는 순간엔 영원히 남아있음을 뜻하는 듯합니다.
자신의 일상을 기록해 본 사람들은, 그저 음식 사진을 찍어본 사람들도 알 겁니다.
그 기록이, 스쳐 지나갈 현실을 조금 더 의미 있고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을.
소설을 쓴다는 것은 이것보다 훨씬 더, 자신에게 각인을 새기는 작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 자신의 일부를 담아서, 새로운 세상과 인물들을 창조해 내는 것은 분명, 나 자신에게 있어서는 영원성을 띌 겁니다. 내가 써 내려간 내 작품은 나의 내면을 조금이나마 바꿀 것이고, 그 변화는 그 순간을 넘어서 내 생에 전체에 걸쳐 영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많지만,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리고, 결심하기로 한 사람 중에서도 실제로 작품 하나를 써낸 사람은 더욱더 적습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고되고, 많은 시간을 요구하면서도 외롭고 고독한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그 외로움의 여정을 견뎌내고 불후의 명작 작품들을 써낸 소설가들의 소설가들.
그들도 분명, 힘든 시절이 있었을 것이며, 작품을 많이 냈어도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 일 것입니다.
그들이 소설을 쓰기 위해 겪은 고난과, 생생한 투쟁 및 작품의 해석과 자신의 철학까지 담아낸 인터뷰집 <작가란 무엇인가>는 작가를 꿈꾸는, 정확히 말하면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은 책입니다.